국군의 주력전차, K-1 전차
출처 : 국방부 블로그 '동고동락' august의 군사세계 : https://m.blog.naver.com/mnd9090/221738761209
자주국방에 대한 염원
1971년 단행된 미 제7사단의 전격적인 철수는 엄청난 충격을 안겨주었다. 1968년부터 1.21 사태, 푸에블로호 사건, 울진삼척 무장공비 사건, EC-121 격추 사건이 연이어 벌어지면서 북한의 재침 가능성이 최고조에 달한 시점이었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당시 우리나라는 주한미군의 철군을 막기 위해 베트남에 대규모 병력을 파견한 상태였다.
철수를 막기 위한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15억 달러의 차관을 제공해 국군의 현대화를 지원하겠다는 답변과 함께 빠른 시일 내에 나머지 미 제2사단도 철수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하지만 차관이라고 해도 어차피 빚이고 미국이 지정한 무기만 살 수 있어서 자주적으로 전력을 증강하는 데 문제가 많았다.
이에 정부는 1974년부터 율곡사업으로 명명된 전력 증강 계획을 수립하고 실행에 나섰다. 하지만 모든 것이 난관이었다. 아직 경제적으로 곤궁했던 시기였고 아는 것도 많지 않은 데다 기술력도 부족해서 스스로 만들 만한 것이 없다시피 했다. 가장 기본적 무기라 할 수 있는 소총도 M16의 면허 생산을 통해 노하우를 습득했을 정도였다.
그렇게 백지상태에서부터 어렵게 시작되었고 갖은 어려움을 거치면서 하나둘씩 서서히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물론 그런 과정에서 실패가 있었고 좌절도 겪었지만 어느덧 오늘날에 와서는 국산 전투기 개발에도 나설 정도가 되었다. 현재 무기 국산화의 대표적인 결과물이자 국군의 주력을 담당하고 있는 K-1 전차도 그렇게 해서 탄생했다.
전화위복의 기회
국군은 6.25전쟁 발발직후 북한군이 남침 전면에 내세운 T-34 전차에 혹독한 경험을 겪었다. 대전차전 훈련이 없다시피 했던 점도 어려움을 겪었던 이유 중 하나였지만 일단 전력 격차가 너무 컸다. 그런데 전쟁 전체로 본다면 공산군이 기갑 전력에서 우세했던 시기는 7월 말까지 불과 한 달간 정도였고 오히려 전쟁이 끝날 때까지 UN군이 월등히 앞섰다.
하지만 전쟁 발발 당시에 당한 고통이 너무 커서 이후 엄청난 트라우마로 남았다. 더구나 북한도 불과 3일 만에 서울을 점령했을 만큼 상당한 전과를 올렸기에 휴전 후에도 기갑 전력 확충에 매진했다. 때문에 197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가 상당히 열세였다. 이에 기존에 보유한 M48 전차를 개량하는 것과 별개로 M60 전차의 면허 생산을 추진했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미국이 요청을 거부했다. 당시 미국은 M1 전차의 배치를 앞둔 시점이어서 특별히 M60의 대외 판매에 제한을 둘 필요가 없던 상태였다. 하지만 이는 결과적으로 이는 K-1의 탄생을 이끄는 전화위복이 되었다. 실망한 정부가 서독과 접촉에 나서 레오파르트 1 전차의 면허 생산을 추진하자 태도가 완전히 바뀐 것이었다.
그러자 정부는 기존 전차의 면허 생산 대신에 이를 기술 습득과 국산 전차 개발의 좋은 기회로 삼기로 결심했다. 1976년 미국의 동의를 얻어 M1을 제작한 크라이슬러 디펜스사(社)에서 한국형 전차의 설계와 개발이 시작되었다. 자연스럽게 M1에 적용된 최신 기술들이 사용되었고 현지에 파견된 국내 기술진들은 이를 스펀지처럼 습득했다.
육군의 중추가 되다
이런 탄생 과정 때문에 K-1은 외형상으로 M1과 상당히 유사하다. 하지만 한국 지형에 적합하도록 차이가 나는 부분도 많다. 관측이나 교전 시 피탄을 회피하기 위해 마치 동구권 전차처럼 상당히 전고가 낮고 이 때문에 주포의 부앙각도 좁은 편이다. 실전에서 어느 정도 통할지 확인되지는 않았으나 북한의 주력 전차를 충분히 앞선다는 것이 중론이다.
1984년 개발이 완료되었고 1987년부터 배치가 시작되었다. 덕분에 우리나라는 여타 군사 강국들과 같은 시기에 제3세대 전차 시대를 개막할 수 있었다. 일부 자료에서는 105mm 주포 때문에 2.5세대 전차로 보기도 하지만 M1도 처음에는 같은 주포를 사용했고 이후 120mm 주포를 탑재한 K-1A1이 등장했기 때문에 3세대 전차로 봐도 문제는 없다.
어느덧 최신 전차에게는 보편적 성능이 되었지만 고속 기동 중 정확히 사격을 가할 수 있고 차체를 지형에 맞게 변화시킬 수 있는 성능 등은 배치 당시에 커다란 인상을 안겨주었다. 이후 순조롭게 양산이 이루어져 주력 전차의 지위를 차지했고 창군 이후 계속해 북한에 열세였던 기갑전력의 격차를 일거에 역전시켰다.
그리고 설계부터 순수하게 국내에서 이루어진 차세대 K-2 전차의 개발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어느덧 K-1은 일선에 배치된 지 30년 가까이 되었지만 2013년부터 순차적으로 성능을 대폭 향상시킨 K-1E1으로 개수가 시작되어 앞으로도 상당기간 주력 전차로 계속 활약할 예정이다. 우리나라의 무기사에 있어 가히 기념작이라 할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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