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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나긴 인류의 역사는 전쟁과 질병이 함께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 '천연두'라는 단어는 일제강점기 때 유입된 일본식 한자어이며, 원래는 시두, 두창, 포창이라고 부르며, 속칭 '마마(媽媽)'라고도 한다.

옛 말중에 '호환마마보다 무섭다'라는 말이 있는데, 여기서 말하는 마마가 천연두를 일컫는 것이다.(마마는 '상감마마, 중전마마, 대비마마' 등 왕실의 가족에 대한 존칭어이다.)

당시 천연두는 걸리면 치료할 방법이 없어서 무조건 죽음으로 이어졌기 때문에 민간에선 천연두를 높여부르면 병을 피할 수 있을까 싶어서 마마라는 존칭으로 불렀다고 한다.

그리고 호환은 호랑이에게 피해를 입다, 정도로 보면 될 것 같으며, 한마디로 호환마마보다 무섭다는 말은 죽는 것보다 무섭다는 뜻이 된다고 볼 수 있다.

 

 

어쨌든 천연두는 호흡기를 통해 감염되는데, 타액, 접촉, 공기(기침, 재채기) 등을 통해 전염되며, 일반적으로 치사율은 30% 정도라고 하지만 면역력이 약할 경우에는 90%까지 올라가는 무서운 병이다.

 

 

천연두는 감염되면 무시무시한 고열과 전신에 특유의 발진이 생기는데, 보기만 해도 혐오감이 들 정도로 심하게 발진이 생기며, 이 과정에서 고열로 사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만약 살아남는다 하더라도 발진으로 인한 곰보자국, 흉 자국이 그대로 남아버려서 환자의 평생을 힘들게 한다.

고열로 인한 후유증도 무시할 수 없으며, 무엇보다 전염성이 매우 강해서 위험한 질병이었다.

 

 

이처럼 위험하고 강력한 질병인 천연두는 인류 최초의 전염병으로 알려져 있는데, 천연두가 발생했던 시기를 추정하자면 기원전으로 올라간다.

 

 

천연두의 흔적은 기원전 1157년에 사망한 람세스 5세 파라오의 미라 피부에서 발진 흔적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이 사실을 볼 때 람세스 5세가 통치하던 시기 이집트에도 천연두가 유행했던 걸로 추측할 수 있다.

 

 

사실 이집트의 람세스 5세 이전에도 인도에는 천연두의 신을 모시는 사원이 있었던 걸로 미루어 훨씬 더 전부터 존재하던 병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 강력한 전염병은 귀족이나 평민, 천민이나 왕을 가리지 않았다.

 

 

앞서 언급한 람세스 5세 뿐 아니라 프랑스의 루이 15세, 스페인의 루이스 1세, 러시아의 페트리아 1세 등 한 나라의 통치자들도 천연두 앞에서는 나약한 인간일 뿐이었다.

 

 

이 강력하고 잔혹한 질병은 스페인과 아즈텍 문명의 전쟁에도 큰 영향을 미친 바가 있는데,

 

 

당시 스페인의 식민주의자였던 코르테스는 약 600명 정도의 병력으로 아즈텍의 수도 테노치트란에 도착하는데, 아즈텍 인구가 코르테스 병력의 30배가 넘었다.

상식적으로 이길 수 없는 이 전쟁에서 아즈텍 문명을 멸망시키는데 가장 큰 공헌을 한 것은 바로 천연두였다.

스페인 병사가 데려온 노예 한 명이 천연두에 감염됐는데, 이 사람 때문에 천연두가 아즈텍 원주민들 사이에도 전염되었던 것이다.

 

 

문제는 아즈텍 원주민들은 그동안 천연두를 앓아본 적이 없어서 면역력이 없었으며, 순식간에 사람들이 천연두에 감염돼 죽어갔고, 방어능력이 상실된 아즈텍을 코르테스가 손쉽게 정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천연두는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전쟁에도 영향을 미친 기록이 있는데, 한국전쟁이 한참이던 1951년 당시에는 1만 명 이상이 천연두로 사망했다.

물론 한국전쟁 이전에도 천연두는 우리나라에 존재해왔다.

 

 

신라의 처용가에 나오는 '역신'이 천연두와 관련됐다는 설도 있고, 이미 삼국시대 때부터 존재했다고 추측하고 있다.

 

 

천연두에 대한 본격적인 기록은 조선 태종 때부터 나타난다.

 

 

'제중원 일차년도 보고서'에 따르면 4세 이전의 영아 40~50%가 천연두로 인해 사망했다고도 한다.

 

 

이처럼 천연두는 우리나라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고갔으나, 오랜 기간 사람들을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던 천연두도 결국 예방접종법이 개발되었다.

 

 

영국의 의사 에드워드 제너가 창시한 종두법이 보급되면서 천연두로 인한 사망자는 급감하기 시작한다.

에드워드 제너 덕분에 많은 이들이 천연두 앞에 무사할 수 있었고, 이런 업적을 기려 그는 '면역학의 아버지'라고 불리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흔히들 지석영이 에드워드 제너의 '우두법'을 최초로 도입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건 사실이 아니다.

 

 

1790년 정약용과 박제가 등이 협력해 지은 '종두방서'에 이미 제너의 우두법이 기재되어 있었으며, 아마 우두법의 존재 자체는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사용되진 않았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을 지석영이 본격적으로 보급시킨 것이다.

 

 

문제는 우두법을 일반 백성들이 잘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우두법은 소의 천연두라고 할 수 있는 우두 고름을 사람에게 접종해 천연두에 대한 면역을 얻도록 하는 접종법이다.

하지만 당시 무속 신앙이 만연했으며, 무지하던 일반 백성들은 '우두를 맞으면 소처럼 둔해진다', '왜놈들이 우리에게 우두를 맞혀서 부려먹으려 한다' 등의 소문이 나돌아 접종에 큰 애를 먹었다고 했다.

 

 

하지만, 결국 천연두는 우두법과 인두법(천연두를 앓은 이로부터 시료를 얻어 사람에게 접종해 면역력을 얻게 하는 치료법) 이 2가지 방법으로 예방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유명한 허준도 광해군의 천연두를 치료하면서 선조의 총애를 받아 '동의보감'을 쓴 명의로 기록되는 영광을 얻었다.

 

 

인류 최초의 전염병인 천연두는 에드워드 제너의 예방접종법이 개발되기 전까지 전 세계적으로 3억 명 이상의 사망자를 만들어 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1960년대 초까지만 해도 전 세계 31개 국가에서 풍토병으로 남아있었지만 예방접종을 실시하면서 세계보건기구(WHO)는 1980년 마침내 천연두의 완전한 박멸을 선언했다.

우리나라도 그 이후 천연두 예방접종을 권고하지 않았고 1993년 이후에는 완전히 사라졌음을 발표했다.

 

 

현재 천연두 바이러스는 모두 박멸된 상태지만 전문가들은 되려 지금이 천연두에 가장 취약한 시기라고 말한다.

천연두 자체가 완전 박멸되면서 예방 접종을 더 이상 하고있지 않으니 현재는 세계 인구 대부분이 천연두에 대한 면역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천연두가 생물학 병기로 재조명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탄저균 테러 사건 이후에는 세계 각국이 천연두 백신을 재생산하는 등 천연두에 대비하고 있다.

특히 북한이 천연두 바이러스를 비공식적으로 보유하고 있다는 증거들이 발견되면서 우리나라도 지난 2001년 천연두를 법정전염병으로 지정했다.

 

 

아직 생화학 무기로써의 위험성은 남아있지만 질병으로써의 천연두는 현재 완전히 박멸된 상태이다.

인간들의 이기심 때문에 생화학 무기로 개발되지만 않는다면 천연두는 더 이상 인류에게 해가 되지 못하는 사라진 질병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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