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의 장작, 모신나강 소총
출처 : 국방부 블로그 '동고동락' august의 군사세계 : https://m.blog.naver.com/mnd9090/221687491343
생각보다 오래 사용되는 무기
탄생한지 100년이 지났지만 현재도 생산되고 사용 중인 M2 중기관총이나 M1911 권총의 예에서 보듯이 총은 단지 오래 전에 개발되었다고 구닥다리로 치부할 수 없는 무기다. 총으로 교전을 벌일 수 있는 여건이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바뀐 것이 없기 때문이다. SF영화 속에 등장하는 차원이 다른 무기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마찬가지라 할 수 있다.
따라서 한 번 주력으로 선정된 총기는 어지간해서 변화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미군을 예로 들면 지난 20세기 이후 M1903 스프링필드, M1 개런드, M14, M16, M4 카빈으로 보병의 제식 소총이 바뀌어 왔다. 이중 M14와 M4카빈이 각각 M1 개런드와 M16의 개량형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100여 년이 넘은 세월 동안 크게 3번의 변화만 겪었다는 뜻이다.
이것도 전장 환경과 이에 대응하는 전투 방법이 바뀌면서 불가피하게 이루어졌다. 다시 말해 이전 소총들의 성능이나 위력이 나빠져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앞에 언급한 M1903 스프링필드도 주력 소총의 지위는 오래 전에 내려놓았지만 강력한 화력과 정확도 때문에 기뢰 제거용처럼 보조 화기로 여전히 일선에서 애용 중이다.
커다란 흐름에서 고찰하면 각국의 주력 소총은 크게 단발식 볼트액션소총에서 연사가 가능한 자동소총으로 변화했다. 미국처럼 중간에 반자동소총이 존재했던 경우도 있지만 제2차 대전을 정점으로 이전의 100년은 볼트액션소총의 시대였고, 이후 100년 가까이 된 현재까지는 자동소총의 시대라고 정의할 수 있다.
패배의 기억을 간직하고
이런 이유로 머나 먼 과거의 무기로 취급받지만 볼트액션소총은 인류사에서 가장 참혹했던 전쟁에서의 주인공이었다. 19세기 중반의 남북전쟁을 시작으로 보불전쟁, 러일전쟁, 발칸전쟁, 제1, 2차 세계대전을 거쳐 1950년대 초반의 6.25전쟁까지 100년이 넘게 꾸준히 사용되었다. 한마디로 세계사에 영향을 준 커다란 사건에 빠짐없이 등장했다.
강국들은 물론 스위스, 덴마크처럼 약소국이어도 기술력이 어지간한 나라면 자체 개발해서 사용했을 만큼 볼트액션소총은 기본적인 무기였다. 제정러시아는 나폴레옹전쟁에서 상당한 역할을 담당하며 승자가 된 이후 스스로 강국임을 자부했지만 정작 기술력이 떨어진 전형적인 농업국이어서 보유하고 있는 소총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결국 1877년 벌어진 6차 크림전쟁에서 패하고 나서야 제대로 된 국산 소총의 개발에 착수했다. 이때 육군의 모신(Sergei Mosin) 대위는 벨기에 출신의 총기 엔지니어인 나강(Leon Nagant)의 도움을 받아 새로운 소총 제작에 나섰다. 이렇게 와신상담 끝에 탄생한 소총이 1950년대까지 소련(러시아)의 주력으로 활약한 모신나강(Mosin-Nagant)이다.
30구경 탄을 탄창이나 클립을 이용하여 장탄하는 방식으로 연사력을 높이고 정확도가 향상된 모신나강은 각종 실험에서 대단한 호평을 받아 1891년 주력 소총으로 선정되었고 최초 양산형인 M1891의 공급이 시작되었다. 러시아군은 독일, 프랑스, 영국 못지않은 좋은 소총을 보유하게 되었다고 자부했으나 정작 주변의 평판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우리와의 복잡한 인연
러시아는 1905년 발발한 러일전쟁에서 모두의 예상을 깨고 일본에 패했고 약 10년 후 벌어진 제1차 세계대전에서도 대군을 동원하고도 독일에게 곤혹을 치렀다. 일부 전투에서 선전하기도 했지만 전쟁 전체를 놓고 본다면 결과가 좋지 않았기에 당연히 러시아군이 사용한 무기들에 대한 외부의 평가도 박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꾸준히 성능을 향상시켰지만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도 그런 편견은 마찬가지였다. 특히 초반에 연전연승을 거듭한 독일은 소련의 무기를 폄하했다. 그런데 이는 착각이었다. 무기의 성능이 나빠서가 아니라 소련군 지휘부의 무능 때문에 벌어진 결과였다. 모신나강도 예상을 벗어난 성능을 발휘하며 독일군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러시아 평원의 겨울 혹한에 독일군의 소총은 얼어붙어 작동되지 않았으나 모신나강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쉼 없이 불을 뿜었다. 더불어 사거리가 길고 파괴력이 좋은 장점을 발판으로 저격용으로 많이 사용되었다. 결론적으로 4년 간 이어진 사상 최대의 독소전쟁을 승리로 이끈 소총이라는 사실로 모든 것이 설명된다.
전후 AK-47이 등장하면서 주력에서 물러났지만 1965년까지 3,700만 여정이 만들어졌다. 한마디로 100년 가까이 일선에서 활약한 대단한 소총이라 할 수 있다. 청산리 대첩 당시에 북로군정서가 사용하기도 했으나 6.25전쟁에서는 남침에 나선 북한군의 주력 화기여서 우리에게는 상당히 복잡한 감정을 안겨주는 소총이라고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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