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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윤발이 주유의 후손이기도 하고, 삼국지 소설에서는 "하늘은 왜 주유를 세상에 탄생케 하고, 제갈량도 세상에 냈는가" 하고 부르짖으며 절명한 걸로도 유명하다.

그렇지만 삼국지연의와 달리, 정사에서는 주유가 대범하고 활발한 사람이었다고 전한다.

주유는 175년, 중국 양주 여강에서 출생했다. 주유는 여기서 태어나서 후일 적벽대전에서도 시상에서 군단을 조련한다.

오나라의 기틀을 다진 손책과는 의형제로써, 손책이 원술에게 옥새를 주고 병력을 빌려 올 때, 주유 또한 병력을 이끌고 와 같이 거병하여 손책을 돕게 된다.

손책이 모든 게 궁핍하고 물자가 부족해 힘들어할 때, 주유는 하비의 부자였던 노숙을 찾아가 군량을 빌려달라고 부탁한다.

노숙은 흔쾌히 집 안의 곳간 두 개 중 한 개의 곳간을 열어줄테니 마음껏 가져다 쓰라고 했다.

주유는 여기서 노숙의 대범함을 알아보고 교분을 맺고 후일 노숙을 손권에 천거한다.

주유는 손책을 도와 장강 이남 반동분자들을 하나하나 평정해갔다.

그러나 손책은 반대 세력에 의해 부상당하게 되고 그 상처가 덧나 결국 사망한다.

손책이 죽을 때 동생이었던 손권에게 유언을 하는데,

"나라 안 일(내정)은 장소에게, 나라 밖 일(군무)는 주유에 맡겨라" 라고 했는데, 이건 삼국지연의 내용이다.

아무튼 손권은 손책의 뒤를 이어 즉위하는데, 10대에 불과했던 손권에게 산전수전 다 겪은 손책의 장수들이 고분고분할 리가 없었다.

이 때 주유가 손권을 손책 섬기듯 지극 정성으로 모시자, 부하 장수들도 주유를 따라 손권을 주군으로 모시게 된다.

206년경, 주유는 시상에서 군단을 조련하면서, 유표의 부하들을 평정하며 오나라의 기틀을 다진다.

이 때 주유는 도독에 임명되는데, 손책의 아버지 손견 때부터 오나라에 충성하던 노장 정보와 다툼이 생긴다.  

그런 와중에, 208년 조조가 유표 사후 형주를 복속시키고 오나라에 항복을 하라고 문서를 보내 온다. 이 때, 강하(시상과 가까운 곳)에 몸을 의탁하고 있던 유비는 제갈량을 보내 손권을 설득하여 결국 조조와의 결전이 벌어지게 된다.

여기서 주유가 대도독, 정보가 부도독으로 봉해지는데, 정보는 크게 불만을 터뜨리면서 말한다.

주유 같은 애송이 밑에서 정보는 일할 수 없다고 크게 화를 내었는데, 이 때 주유는 정보에게 일체 명령을 하지 않고 정보의 군대는 정보에게 전권을 주어 정보가 지휘하도록 했으며, 또한 정보에게 자신의 막사로 와, 자신의 군대를 조련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주유는 정보에게 지금은 전시 중이니 불만이 있더라도 후일 바로잡도록 하고 지금은 참아달라고 부탁을 했다. 정보는 이에 크게 반성하고 주유에게 복종하게 된다.

주유는 각종 계략으로 적벽에서 조조를 크게 완파하고, 기세를 몰아 형주를 점령하려 출진하는데 강릉성을 수비하던 조인의 화살에 맞아 큰 부상을 입고 주유는 후일을 기약하며 다시 전투를 준비하게 되는데, 제갈량의 계략으로 형주는 이미 관우, 장비, 조운에 의해 모두 점령되어 있었다.

주유는 이 때 분을 이기지 못했으나, 결국 적벽 대전에서 승리한 보람도 없이 다시 시상으로 돌아가게 된다.

적벽 전투가 끝난 후에, 주유는 유비를 견제하게 된다. 연의에서는 주유가 제갈량을 미워하고 싫어했다고 하는데, 그게 아니고 실제로는 유비를 견제했다고 한다.(정사 기록에 따르면 유비는 뛰어난 장군었음을 알 수 있다.)

병상에서 주유는, 유장이 다스리던 서촉(익주)를 평정하고 서북으로는 마초와 연합하여 조조의 위나라와 손권의 오나라로 대적하려는 계획을 꿈꾸는데, 이를 이루지 못하고 210년 결국 화살을 맞은 자리가 덧나 주유는 36의 나이로 요절하게 된다. 후임으로는 노숙이 주유의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다

주유는 이렇게 허무하게 죽었지만, 그 일생에는 재밌는 일화가 많다.

주유는 키가 크고(현재 180cm이상) 얼굴이 잘생겨 '미주랑(아름다운 주씨 청년)'이라 불릴만큼 인기가 많았고 음악에도 정통해 술이 몇번 오고간 후에도 음악의 음이 하나라도 틀리면 뒤돌아보며 악가에게 '음이 잘못됐다' 라고 하여 '음이 틀리면 미주랑이 뒤돌아본다.'란 얘기가 있다.

또한 노숙이 외교에 대해 너무 신중한 나머지 손권에게 질타를 받으며 꾸중을 듣자 그를 안쓰러이 여긴 주유가 노숙을 감싸며 노숙을 보호해 주었다는 일화도 있다.

연의에서는 동작대부에 관한 시로, 손책과 주유의 부인인 대교, 소교 얘기가 나오는데, 그건 그냥 허구이다. 청동까치가 발견된(동작) 해는 주유가 죽은 이듬해였다.

주유는 제갈량을 미워한 게 아니라 유비를 견제했다고 하고, 후일 주유-노숙의 뒤를 이은 여몽 또한 주유와 생각을 같이 하여 관우를 평정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주유는 유비를 두려워했고, 유비 또한 주유를 두려워하여 '주유는 대단한 사람이다. 주유가 있는 한 오나라는 쇠할 수 없다'라고 평했다고 한다.

앞서 언급했듯 주유와 정보가 다투는 동안, 정보는 주유의 모습을 하나하나 보아가면서 주유의 재략에 탄복해 주유에 마음으로 복종했다는 것도 유명한 일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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