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전사]태평양 전쟁의 판도를 뒤바꾼 운명의 5분, 미드웨이 해전
출처 : https://mnd9090.tistory.com/1983(모닥불로 뛰어든 불나방들 -1- "전설의 시작")
https://mnd9090.tistory.com/1982(모닥불로 뛰어든 불나방들 -2- "일본 항공모함을 격침하라")
https://mnd9090.tistory.com/1981(모닥불로 뛰어든 불나방들 -3- "결정적이었던 우연들")
https://mnd9090.tistory.com/2406(모닥불로 뛰어든 불나방들 -끝- "400년 만의 패배")
※ 본 글은 국방부 블로그 "동거동락"의 "국방기고/august의 군사세계"의 기고문입니다.
6기로 구성된 TBF 뇌격기와 4기의 B-26 폭격기가 호위하는 전투기도 없이 저고도로 일본 항공모함들을 향해 접근하고 있었다. 함교에서 이를 지켜보던 항공모함 히류(飛龍)의 함장 야마구치 다몽(山口多聞) 제독은 이들의 공격을 어떻게 막아야 하는지를 걱정하지 않고 기가 차다는 듯 혼잣말을 했다.
“호위기도 없이? 죽을 줄도 모르고 모닥불로 뛰어드는 불나방들 같군.”
미군 공격 비행대는 용감하게 일본 함대를 향해 뛰어들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몽 제독의 말처럼 대공포의 무자비한 포격과 제로전투기의 집요한 요격으로 말미암아 장렬히 최후를 맞이했다. 단지 1기의 TBF와 2기의 B-26만이 만신창이가 된 상태로 지옥을 간신히 빠져 나올 수 있었을 뿐이었다. 이렇게 미드웨이 해전에서 미군이 벌인 최초의 공격은 무참하게 막을 내렸다.
그러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감한 불나방들의 끝없는 도전은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었다. 비록 전사에는 단 한 발의 어뢰도 명중시키지 못하고 전멸한 것으로 나와 있지만, 이렇게 시작된 뇌격기들의 희생은 결국 인류사 최대의 해전이었던 미드웨이 해전을 미국의 승리로 이끄는 원동력이 되었다. 앞으로 소개할 내용은 이처럼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지만 승리의 밑거름이 되었던 뇌격기 비행대의 분투에 관한 이야기다.
적함을 침몰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갑판 상부를 타격하는 것보다 배의 흘수선(吃水線) 아래에 구멍을 내는 것이다. 군함은 갑판 위의 무장이 타격을 입어도 선체만 온전하다면 수리해서 재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무장 상태가 양호하더라도 침몰하면 그것으로 만사가 끝나버리기 때문이다. 특별히 이런 목적에 사용하기에 가장 최적화 된 필살의 무기는 어뢰다.
어뢰는 선박이나 잠수함의 어뢰관을 통해 발사할 수도 있지만 비행기에 장착하여 투하하는 방식으로 사용할 수도 있는데, 어뢰를 장착하여 적함을 공격하는 전투기를 뇌격기(雷擊機, Torpedo Bomber)라고 한다. 1940년 11월 영국해군이 소드피쉬(Swordfish) 뇌격기로 타란토 항을 공습한 것이나 1941년 12월 일본이 나카지마(中島) B5N 뇌격기로 진주만을 급습한 것은 뇌격기의 효용성을 널리 알린 예다.
하지만 뇌격기는 어뢰 투사를 위해서 적함 가까이 최대한 고도를 낮추어 비행해야 하므로 기습이 아니면 침투 자체가 상당히 어렵다. 일단 공격에 들어가면 방향을 변경할 수 없고 특히 수면 바로 위를 비행하기 때문에 속도가 느려 대공포나 상대 요격기의 손쉬운 먹잇감이 될 가능성이 높은 것도 간과할 수 없는 결점이다. 그러나 명중시켰을 경우 그 효과는 다른 어떤 무기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미드웨이를 침공하려던 일본의 전력은 항공모함 4척과 전함 11척으로 구성된 대 함대였고 여기에 탑재된 각종 함재기들은 동종의 미군기에 비해 뛰어난 성능을 지니고 있었다. 반면 미군의 항공 전력은 3척의 항공모함과 미드웨이 섬에 긴급 전개한 비행대로 구성되었는데 이는 당시 태평양지역에 전개한 육해군 항공대를 총망라하여 긴급 편성한 전력이었다. 일방적이라 할 수 없지만 객관적으로 열세인 상황이었다.
그런데 에피소드의 주인공인 미군의 뇌격기인 TBD는 1935년 제작된 구형 모델로 일본의 B5N에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성능이 떨어졌다. 당시 미 해군의 조종사들은 온갖 나쁜 형용사를 붙여 자신들의 TBD를 비웃었을 정도였는데, 항공모함 호넷(Hornet)에 탑재된 제8뇌격비행대대(VT-8) 승무원은 자신들을 Coffin Squadron, 즉 나르는 관을 탄 비행대라고 자조할 정도였다.
자국 조종사들로부터도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할 만큼 성능이 열악한 TBD를 대체하기 위해 신형 뇌격기인 TBF가 막 생산에 들어간 상태였지만 미드웨이 해전에는 단 6기만이 긴급 배치되어 전투에 참가할 수 있었다. 이 6기의 TBF도 원래는 항공모함 호넷에 배치될 예정이었으나 이들이 진주만에 도착했을 때 호넷이 이미 전투 공역으로 출항하여 미드웨이 기지로 배치 장소가 바뀐 상태였다.
하지만 신형 뇌격기의 숫자가 모자란 것은 둘째 치고 더 큰 문제는 뇌격기의 주먹이라 할 수 있는 Mk-13 공중 투하 어뢰의 신뢰성에 커다란 결격사유가 있었다는 점이다. 미드웨이 해전 바로 직전에 있었던 1942년 5월의 산호해 해전에서 목숨 걸고 적진을 돌파하여 어뢰 발사에 성공하였으나 목표물에 명중하고도 그중 과반수가 폭발하지 않았다고 뇌격기 조종사들이 격분했을 정도였다.
결론적으로 미드웨이에서 일본과 건곤일척의 대결을 펼칠 시점까지 미군은 성능 좋은 뇌격기도 신뢰성 있는 어뢰도 갖출 시간이 없었다. 그러나 비록 성능이 모자라고 믿을 수 없는 뇌격기와 어뢰밖에 없었지만 그들은 주저하지 않고 전선으로 날아갔다. 아래는 이런 열악한 환경을 탓하지 않고 망설임 없이 모닥불로 뛰어들어 산화한 미드웨이 해전 당시 미 해군 뇌격기 비행대대의 일람이다.
미드웨이 섬: TBF 6기 (원래 VT-8 배속 예정)
항모 호넷: 제8뇌격비행대대(VT-8) TBD 15기
항모 엔터프라이즈: 제6뇌격비행대대(VT-6) TBD 14기
항모 요크타운: 제3뇌격비행대대(VT-3) TBD 12기
1942년 6월 4일 05시 20분, 밤새 태평양을 수색하던 정찰기 카타리나 58호로부터 일본 항공모함을 발견했다는 급보가 타전되었다. 보고를 받자마자 미드웨이 기지에 배치된 SBD 급강하폭격기 16기를 선두로 구형 SB2U 급강하폭격기 11기, TBF 뇌격기 6기, 그리고 육군항공대의 B-26 경폭격기 4기, 마지막으로 B-17 중폭격기 19기가 차례로 서북쪽 하늘을 향해 날아갔다. 이들에게 내려진 명령은 간단명료했다. “일본 항공모함을 격침하라!”
그러나 이들은 전투기의 호위를 받지 못했다. 함께 주둔하던 F4F와 F2A 전투기들은 내습하는 일본 공격기들을 공격으로부터 미드웨이 기지를 지키기 위해 상공에 머물러야 했기 때문이었다. 공격비행대들은 전투기의 호위 없이 일본함대 상공으로 돌입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스스로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모닥불로 뛰어 들어가는 것을 결코 주저하지 않았다.
07시 정각이 되자 바다 위에 있던 항공모함 호넷와 엔터프라이즈(Enterprise)의 비행갑판에서 SBD 급강하폭격기 72기, TBD 뇌격기 29기, 그리고 이들을 호위하는 F4F 전투기 20기로 이루어진 공격비행대가 차례로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약간의 시차를 두고 08시 30분이 되자 항공모함 요크타운(Yorktown)에서도 SBD 17기, TBD 12기, F4F 6기가 발진을 시작했다. 이들에게 주어진 명령도 간단했다. “일본 항공모함을 격침하라!”
이들 중 일본함대와 제일 먼저 결전을 벌인 것은 첫 편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미드웨이 섬에서 발진한 6기의 TBF와 4기의 B-26으로 구성된 뇌격기 비행대였다. 07시 15분, 이들은 호위기의 보호도 받지 못한 상황에서 어뢰 공격을 위해 초 저공으로 일본 항공모함들에 접근했으나 대공포의 무자비한 포격과 제로 전투기의 요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면서 차례차례 불타 사라져버렸다.
미드웨이 해전에서 미국이 승리한 것은 여러 우연이 결정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이었는데, 그중 하나가 미군 공격비행대가 축차적으로 따로따로 공격에 나선 것이었다. 원래는 함대 상공에서 대 편대를 이룬 후 집단 공격에 나서기로 되어 있었으나 일본 정찰기에게 미 함대가 발견되자 먼저 이함 한 비행대부터 지체 없이 공격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결론적으로 이것이 긍정적인 결과로 나타나게 되었다.
최초의 불나방들이 모닥불로 뛰어들어 스스로를 태운 지 얼마 자나지 않은 07시 48분, 미드웨이 섬에서 출동한 VMSB-241(미 해병 241공격비행대) 소속 SBD 급강하폭격기 16기가 항모 소류(蒼龍)에 접근했다. 그러나 이들은 대부분 신참 파일럿들이어서 SBD의 급강하공격 기동 전술을 숙달하지 못한 상태였다. 대대장 헨더슨(Lofton R. Henderson) 소령은 어쩔 수 없이 낮은 각도로 강하해 함대를 공격하라고 대원들에게 명령했다.
조종이 미숙한 신참 조종사들은 아군 호위기들의 보호도 없이 내려진 돌격명령에 따라 제로기와 대공포 탄막이 가득 찬 모닥불 속으로 겁 없이 뛰어 들어갔다. 하지만 급강하폭격을 포기하고 속도를 낮추어 수평 비행으로 적함에 접근하자 폭탄을 투하하기도 전에 선두에서 비행하던 대대장 헨더슨의 기체를 포함한 8기의 SBD가 차례로 격추되었고, 나머지 SBD도 대공포의 탄막으로 인해 명중탄을 투하할 수 없었다.
피격 당하지 않고 모닥불을 빠져나온 8기의 SBD를 제로 전투기들이 추격해왔지만, 마침 2만 피트 고공에서 19기의 B-17 중폭격기 편대가 나타나 일본 항모들을 향해 600파운드 폭탄을 마구 쏟아 부어 간신히 탈출에 성공했다. B-17의 고공폭격을 지켜보던 일본함대의 사령관 나구모(南雲忠一) 제독은 “아니 저렇게 높은 데서 저런 방법으로 우리를 맞출 것으로 생각한단 말인가?”라고 했을 정도로 무의미한 시도였다.
고공에서 수평폭격으로 움직이는 함선을 맞춘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했는데, 이것은 그만큼 미국이 앞뒤 가리지 못하고 동원할 수 있는 모든 무기를 동원하여 미드웨이 해전에 임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쨌든 때마침 등장한 이들의 존재로 인하여 피격 위기에 빠졌던 SDB 8기는 구사일생으로 탈출할 수 있었고 일본함대의 회피기동 시간만큼 일본 함재기의 이함을 잡아놓았다.
08시 20분, 미드웨이 섬에서 출격한 마지막 공격비행대인 11기의 구닥다리 SB2U 급강하폭격기들이 일본함대 상공에 나타나 공격을 시작했다. 그리고 이들 또한 불나방 꼴을 면치 못하고 차례차례 불붙어 바다 위로 사라져갔다. 호위기도 없이 무모하게 일본함대를 향해 뛰어든 일련의 공격은 처참하게 실패했고, 코앞에서 미군기가 격추되는 모습을 지켜본 일본군의 사기는 충천했다.
그러나 이때까지도 일본함대는 미국의 항공모함들에서 발진한 후속 공격부대가 그들 가까이 다가오고 있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일본함대를 지휘하던 나구모 제독도 미국 항모의 존재 여부에 상당한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지만, 미군 정찰기가 일본함대를 발견한 후 즉시 대응태세를 갖춘 데 반해 일본군 정찰기는 약간의 문제를 일으키면서 출격부터 늦었고 막상 미국 항공모함을 발견했을 때는 무전기가 고장이 발생하였다.
이처럼 발견도 미군보다 늦었고 함대에 연락을 취하지도 못한 결과는 미드웨이 해전에서 미국을 승리하게 만든 중대한 우연들 중 하나가 되었다. 이런 모든 것이 사실 지극히 짧은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만일 일본에게 이런 연이은 불운이 없었고 조금 더 빨리 공격적으로 행동을 개시하였다면 미국이 참패할 가능성도 충분히 있었다. 결론적으로 미드웨이 해전에서 신은 일본 편이 아니었던 것이다.
09시 20분, 월드론(John C. Waldron)이 지휘하는 VT-8 소속의 TBD 15기가 일본함대의 상공에 나타났고 주저 없이 항공모함 아카기(赤城)를 향해 돌진하였다. 그러자 대기하고 있던 제로 전투기들이 이들을 향해 벌떼처럼 몰려들었다. 느리고 둔한 TBD는 날렵한 제로의 손쉬운 먹잇감이었다. 결국 15기의 TBD가 모두 격추되었는데 가이(George Gay) 소위가 조종하던 TBD가 유일하게 어뢰를 투사했으나 이마저 빗나가버렸다.
09시 58분, 이번에는 린지(Euegne E. Lindsey)가 이끄는 VT-6 소속 TBD 14기가 일본함대 상공에 나타나 공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역시 순식간에 절반인 7기의 TBD가 격추되고 말았고 나머지 7기는 저공 돌진하여 야마구치 다몬 제독이 승선해 있던 항모 히류를 향해 어뢰를 투사했으나 명중탄은 없었다. 대신 5기의 TBD가 더 격추되고 2기만이 구사일생으로 귀환에 성공했다.
뇌격기를 중심으로 한 미국의 집요한 공격을 연이어 완벽하게 물리치면서 자신감이 하늘을 찌를 만큼 충만해진 일본함대는 미국함대를 공격하기 위한 대규모 출격 준비에 박차를 가했다. 나구모가 지휘하는 4척의 항공모함 갑판은 그야말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바로 이때 10시 15분, 항공모함 요크타운으로부터 날아온 미국의 마지막 뇌격기 편대가 일본함대 상공에 나타났다.
매시(Lance E. Massey)가 지휘하는 VT-3 소속 12기의 TBD였다. 하지만 이들도 어뢰를 투하하기도 전에 사정없이 날아오는 대공포에 순식간에 7기가 불덩이가 되어 추락했다. 남은 5기의 TBD가 발사한 어뢰는 모두 빗나갔고 그중 3기가 더 격추되었다. 살아서 귀환한 TBD는 불과 2기뿐이었다. 결론적으로 07시 20분에 시작되어 10시 20분까지 펼쳐진 총 8회에 걸친 미군의 공격은 단 한 발의 어뢰나 폭탄도 일본함대에 명중시키지 못했다.
작전에 나선 41기의 TBD 뇌격기 중 37기, 6기의 TBF 뇌격기 중 4기, 4기의 B-26 폭격기 중 2기, 16기의 SDB 폭격기 중 8기, 11기의 SB2U 폭격기 중 8기가 피격당하고 승무원들이 몰살당하였다. 그러나 이들의 희생은 결코 헛된 것이 아니었다. 미군의 공격을 회피하느라 일본 공격기들의 발진이 지연되었다. 저공 침투하는 뇌격기들을 요격하려고 제로기들은 수면 위까지 내려와 있었고 함대의 방공포 및 감시망도 수평선을 바라보고 있었다.
미국의 마지막 뇌격기가 불타 사라지던 바로 그 순간, 맥클러스키(C. Wade McClusky)기 이끄는 SDB 급강하폭격기 35기가 고고도에 나타났다. 분노에 찬 SDB들은 날카로운 매가 되어 일본 항모의 갑판 위로 번개같이 폭탄을 내리꽂았다. 이 순간 이들을 막을 방법이 일본에게는 아무것도 없었다. 제로기들은 너무 저고도로 내려와 있었고, 함대의 방공을 책임지던 대공포를 고고도로 조준할 틈이 없었다.
폭탄을 가득 매단 함재기가 가득 차 있던 일본 항공모함들은 가가를 선두로 아카기, 소류가 차례대로 공격을 받아 유폭을 일으키면서 회복할 수 없는 엄청난 타격을 입었고 그것으로 생을 마감하였다. 항공모함 히류가 이 엄청난 재난을 겨우 벗어났지만 수명을 잠시 연장했을 뿐이었고, 오래지 않아 함께 출동하였던 여타 항공모함들의 비참한 최후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미드웨이 해전은 순식간에 승패가 갈렸다.
태평양전쟁의 전환점이 되어버린 미드웨이 해전은 이처럼 1942년 6월 4일 동트는 새벽부터 정오까지의 4시간에 모든 것이 결정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건곤일척의 대결에서 승리의 초석을 놓은 이들은 죽음을 두려워 않고 스스로 불나방이 되어 아낌없이 제 몸을 태운 뇌격기 비행대였다. 아무리 거대한 전투라도 희생이 없이 승리하기는 힘들다. 어쩌면 미드웨이 해전에서 미 해군 뇌격기들의 활약이 바로 그런 증거가 아닐까 한다.
'5분 재미있는 역사 상식 > 5분 재미있는 세계사 상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유럽사]로마황제 칼리굴라 (0) | 2020.02.25 |
---|---|
[동양사]부처 이마의 점? 표식?에 대해 (0) | 2020.02.24 |
[해전사]2차 대전 일본 최고의 수훈함, 쇼카쿠급 항공모함 쇼카쿠와 즈이카쿠 (0) | 2020.01.18 |
[해전사]허무하게 침몰한 일본의 희망, 항공모함 시나노 (0) | 2020.01.17 |
[해전사]패권 유지의 열망, 아크로열 항공모함 (1) | 2020.01.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