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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s://m.blog.naver.com/mnd9090/221280551437(국방부 블로그)

갈 때는 순서가 없다
  
  국방비는 국가 재정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므로 효율적으로 집행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래서 무기들은 환경이 완전히 바뀌어 쓸모없어지거나 망가져서 더 이상 쓸 수 없는 경우가 아니라면 내구연한까지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오래된 무기가 전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낮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낫기 때문이다.

부품 조달 용도로 AMARG에 보관 중인 퇴역 군용기의 모습.

 물론 전시에는 상황이 다르다. 이기기 위해 최대한 좋은 무기를 많이 확보하고 적시에 전선에 투입해야 한다. 그렇다고 소수의 적을 제거하기 위해 무조건 공군이나 포병을 동원할 수 없는 것처럼, 전쟁 중이라도 효율성을 따져 작전을 벌인다. 자칫 무기를 마구 사용하다가 반드시 필요할 때 없어서 낭패를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전차, 대포, 전투기, 군함 같은 중장비는 비싼데다 제작 시간도 오래 걸리므로 더욱 사용하는 데 신경을 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모를 막을 수는 없다. 일단 너무 많이 사용해서 기능이 사라질수도 있지만 상대로부터 공격을 받기 때문이다. 특히 중요하고 강력한 무기일수록 최우선 공격 목표가 된다.

걸프전쟁 당시 격파된 이라크의 전차. 중장비일수록 우선 공격 목표가 된다.

 전쟁 전에 만들어져 끝날 때까지 사용하는 무기도 있지만 이제 막 전선에 투입되자마자 파괴되는 일도 흔하다. 혹은 공장에서 나와 전선으로 운반하는 도중에 사라지기도 한다. 한마디로 갈 때는 순서가 없다. 아래에 소개할 에피소드는 야심차게 만들었지만 정작 사용도 못해보고 사라진 항공모함에 관한 이야기다.
  
  
미드웨이 해전의 결과
  
  일본은 1942년 6월에 벌어진 미드웨이 해전에서 4척의 항공모함을 순식간 잃자 전력을 하루빨리 복구시키기 위해 동분서주할 수밖에 없었다. 이미 전쟁 전에 수립되어 있던 건함 계획에 의거해서 차기 항공모함의 건조가 예정되어는 있었으나 이런 순식간의 공백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그만큼 일본에게 치명타였다.

미드웨이 해전에서 불타는 일본 항공모함 히류. 순식간 4척의 항공모함을 잃은 일본은 엄청난 전력 공백이 생겼다.

  전쟁 발발 당시에 태평양만 놓고 본다면 일본의 해군력이 우세했지만 시간이 흐른다면 전시 경제 체제로 돌입한 미국의 산업 생산력을 따라가기에 역부족이어서 결국 전력이 뒤쳐질 수 밖에 없었다. 특히 군함은 여타 군수품처럼 쉽게 뚝딱하고 만들 수 있는 성질의 물건이 아니어서 일본의 조바심은 클 수밖에 없었다.

  이에 일본 해군은 진행 중이던 건조 계획 외에도 기존 함정들을 개조 할 생각을 하게 되었다. 바로 그때 건조가 잠시 보류된 한 척의 거함이 시야에 들어왔다. 지난 1940년 5월 4일, 요코스카 해군 조선소에서 착공에 들어갔으나 야마토와 무사시의 완공 후 일시적으로 제작을 중단한 야마토급 전함 3번함 시나노(信濃)였다.

사상 최대의 전함인 야마토의 건조 모습. 제작이 중단된 동급 3번 함 시나노를 항공모함으로 개조하기로 결정했다.

  사상 최대의 전함으로 유명한 야마토의 자매함답게 선체를 항공모함으로 개조하면 전력을 신속히 회복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던 것이다. 거기에다가 시나노는 원래 중장갑의 전함으로 예정되었으므로 미드웨이 해전에서 빈약한 방어력으로 일격에 침몰된 이전 항모들의 단점도 보완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허무한 최후
  
  시나노는 배수량이 1955년에 취역한 최초의 수퍼캐리어인 CV-59 포레스탈과 맞먹는 72,000톤으로, 당시 활약한 주력 항공모함들의 2배 규모였다. 일본이 전세를 반전시켜 줄 비밀무기가 되리라 굳게 믿었을 만큼 당대를 초월한 괴물이었다. 드디어 1944년 11월 19일, 고대하던 취역이 이루어졌다.

취역 후 처녀항해에 나선 시나노. 워낙 생애가 짧아 사진이 많이 남아 있지 않다.

  마무리 공정을 위해 세토 내해 건너의 구레 기지로 가기 위해 11월 28일, 시나노는 구축함 네 척의 호위를 받으며 처녀항해에 나섰다. 각종 시험을 거쳐 이상이 없으면 70여기의 함재기를 싣고 1945년 1월에 태평양으로 나갈 예정이었다. 그런데 은밀히 부근에 침투해 있던 미국 잠수함 SS-311 아처피쉬(Archerfish)가 항해 중인 시나노를 발견했다.

  아처피쉬가 발사한 4발의 어뢰가 시나노의 측면을 강타했다. 강도가 충분하지 않았던 선체에 쉽게 구멍이 뚫렸고 부실하게 공사한 방수 격벽이 무너져 내렸다. 더불어 배수펌프도 작동하지 않으면서 당대 최고의 거함이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취역한지 열흘 만에 그리고 처음 항해에 나선 지 17시간 만에 일본의 희망은 처절하게 침몰했다.

대어를 낚은 아처피쉬. 하지만 어뢰 발사 후 도주하기 바빠 나중에 전과를 알았다.

 그리고 지금까지 시나노는 잠수함에 의해 격침당한 최대 규모의 군함 그리고 가장 빨리 생을 마감한 항공모함이라는 불명예를 간직하고 있다. 하지만 설령 시나노가 예정대로 작전에 투입되었어도 전쟁의 향방을 바꿀 수 없는 상태였다. 그래서 시나노는 전쟁사 한구석에 일제의 허무했던 마지막 발악 정도로만 기록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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