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전사]거함거포주의 시대의 상징, 아이오와급 전함
거함 거포 시대의 상징

1905년에 러시아와 일본이 벌인 쓰시마 해전은 상당히 의미심장한 교훈을 남겼다. 상대보다 빠른 속도로 좋은 위치를 선점하여 원거리에서 강력한 주포로 정확히 가격하여야 하며, 만일 피치 못해 상대의 포 사정권 내에 들어서더라도 충분한 장갑으로 적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다면 결국 승리한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전과를 바탕으로 당시 세계 해군을 선도하던 영국은 1906년 무기사에 커다란 전환점이 되는 전함 드레드노트(HMS Dreadnought)를 선보였다. 이때부터 드레드노트는 하나의 기준이 되었고 새로 건조되는 전함은 적어도 이 정도의 성능을 갖추어야 했다. 20세기 전반의 해군 역사를 상징하는 거함 거포(巨艦巨砲) 시대가 이렇게 개막되었다.
하지만 영원히 계속될 것 같았던 전함의 시대는 20세기 중반에 함포 사정권 밖의 먼 거리에서 무력을 투사할 수 있는 항공모함이 바다의 주역이 되면서 막을 내렸다. 미 해군이 운용한 아이오와 급(Iowa Class) 전함은 이렇게 50여 년간 이어진 역사적인 거함 거포 시대의 마지막을 장식한 바다 위의 거인이었다.

아이오와 급 3번 함인 전함 미주리는 일본의 항복 조인식이 열려 제2차 대전의 마지막을 장식한 역사적인 장소가 되기도 하였다.
날렵한 거인
1937년 군축 조약을 파기한 일본이 배수량 64,000톤의 야마토 급 전함의 건조에 나서자 태평양을 놓고 경쟁하던 미국은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이에 대항하기 위해 1940년부터 초도함이 아이오와로 명명된 미 해군 역사상 최강의 신예 전함 건조에 착수하였고 전쟁이 발발한 이후인 1943년부터 순차적으로 전선에 투입되었다.
최초 6척이 계획되었으나 BB-61 아이오와(Iowa), BB-62 뉴저지(New Jersey), BB-63 미주리(Missouri), BB-64 위스콘신(Wisconsin)의 4척이 완공된 후 종전이 되면서 나머지 2척은 건조가 취소되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아이오와 급 4번 함인 위스콘신은 미국의 마지막 전함이라는 타이틀을 얻게 되었다.

한국전쟁 당시 16인치 주포를 발사하는 전함 위스콘신. 미국이 건조한 마지막 전함이다.
당시 미국의 건조 능력으로는 야마토를 능가하는 전함의 제작도 가능하였지만 태평양과 대서양 모두에서 전쟁을 벌어야 했기에 선체가 파나마운하를 통과할 수 있도록 제한받았다. 때문에 아이오와 급은 폭이 좁지만 선체는 긴 날렵한 형태로 제작되었다. 덕분에 거함 임에도 현대의 최신예 함에 뒤지지 않는 최대 33노트의 쾌속 순항이 가능하였다.
전함에게 있어 첫 번째 능력 기준은 공격력이다. 아이오와 급에 장착된 16인치 주포는 경쟁자인 야마토 급의 18.1인치 주포에 비해 구경이 작았으나 발사 속도 및 정확도가 우세하였다. 하지만 아이오와 급이 데뷔하였을 때 함대 간의 포격전은 과거의 유물이 되어가고 있었다. 1941년 12월, 진주만 급습 이후 항공모함이 바다의 주인공이 되었던 것이었다.
항공모함과 경쟁을 벌인 전함조차도 제공권의 확보 없이 활약하기 힘들게 해전의 환경이 바뀌었다. 결국 전쟁 중 아이오와 급은 상륙작전 시 화력 지원을 하거나 백 여문의 대공화기를 이용하여 함대의 우산 역할을 담당하였다. 물론 이런 임무도 중요한 것이지만 원래 아이오와 급에게 기대하였던 역할을 고려한다면 아쉬운 점이 많았다.

1984년 상징인 16인치 주포를 발사 연습을 하는 전함 아이오와
한 시대를 상징하다.
전쟁이 끝나자 미주리를 제외하고 모두 퇴역하였으나 불과 5년 만인 1950년에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차례차례 현역으로 복귀하여 한반도 인근 해역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제일 먼저 참전 한 뉴저지는 흥남 철수작전 당시에 10만의 전투부대와 10만 피난민이 철수하는 동안 엄청난 포격을 날려 중공군의 추격을 저지하는 괴력을 선보였다.
한국전쟁이 끝난 후 아이오와 급 전함들은 두 번째 퇴역에 들어갔으나 10여 년 후 미국이 베트남전쟁에 뛰어들면서 또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이들은 근해에서 육상의 목표를 타격하는 임무를 수행하였는데 1968년 뉴저지는 100여 일 동안 5,600여 발의 16인치 포탄과 15,000발의 5인치 포탄을 발사하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한국전쟁 종전 후인 1954년 버지니아 인근 해역에 집결한 아이오와 급 전함들. 4척 모두가 한 곳에 모인 보기 드문 사진이다.
그리고 1973년 철군과 함께 또다시 모습을 감추었지만 이것도 이들의 마지막이 아니었다. 1980년, 집권한 레이건 정부가 대소 압박 전략의 일환으로 600척의 군함 보유 계획을 발표하고 아이오와 급들을 대대적으로 개량하여 재 취역을 결정한 것이었다. 상징인 주포는 살렸지만 각종 미사일을 비롯하여 대대적인 현대화 개수가 이루어졌다.
곧이어 1984년 레바논 사태에 투입된 뉴저지가 게릴라 진지 초토화 작전에서 엄청난 포격 작전을 실시하여 구세대 전함의 복귀가 단지 전시용이거나 시위용이 아니었음을 알려 주었다. 1990년에 있었던 걸프전에 미주리가 참전하여 100여 발의 16인치 포탄과 24발의 순항미사일을 발사하였고 냉전의 종식과 더불어 마침내 1991년 그 임무를 다하였다.
거함 거포 시대에 태어난 아이오와 급은 같은 시기에 활약한 대부분의 경쟁자들이 완전히 모습을 감추고 나서도 수십 년간 활약을 펼쳤고 현재는 미국 각지에 흩어져 해상 박물관으로 여전히 웅자를 자랑하고 있다. 이렇게 현재 진행형인 역사 자체만으로도 아이오와 급 전함은 가히 대단한 의의가 있는 무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걸프전 당시 토마호크 미사일을 날리는 위스콘신. 거인이 마지막으로 활약하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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