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출처 : https://m.blog.naver.com/mnd9090/221519822746(국방부 블로그)

패권 유지에 대한 열망

21세기에 들어와서 효용성에 대해 많은 갑론을박이 나오고는 있지만 전력 증강에 한창인 중국이나 도입을 고려 중인 일본의 사례에서 보듯이 항공모함은 열강이라면 반드시 갖추고 싶어 하는 군함이라 할 수 있다. 특히 미국은 지난 제2차 세계대전 이후로 해당 분야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고 있을 정도다. 한마디로 압도적이다.

일본이 F-35B를 탑재해서 항공모함으로 운용을 고려 중인 호위함 이즈모

한때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이라는 소리를 들었고 세계의 바다를 400여 년 간 지배했던 영국도 항공모함과 관련해서 결코 빼 놓을 수 없는 나라다. 초기 항공모함의 역사를 선도했고 제2차 대전 발발 직후 타란토항 공습, 비스마르크 사냥 같은 전과를 남겼다. 그러나 항공모함 함대로 연이어 격전을 벌인 미국과 일본에 비해 분명히 부족한 점이 있었다.

당시 영국의 항공모함은 전함 중심으로 구성된 함대를 지원하는 용도로 개발되고 운용되었기에 크기가 작았고 그만큼 능력도 부족했다. 변화를 실감한 영국은 1942년 당시 미국의 주력인 에섹스 급보다 10,000여 톤이 더 나가는 만재배수량 43,000톤 규모의 신형 항공모함 제작에 착수 했다. 한마디로 패권 유지에 대한 열망이었다.

오디셔스급 1번 함인 이글. 1972년까지 활약 했다.

1943년부터 건조가 시작된 오디셔스급 2번 함 아크로열(R09)도 그중 하나였다. 애초 영국은 4척의 동급 함 획득을 고려했지만 여러 사정으로 2척으로 축소되었다. 그런데 당시 벌어지던 전과를 분석해 이를 제작에 응용하다 보니 설계 변경이 수시로 벌어졌고 이로 인해 건조 기간이 늘어났다. 그러다 1945년 종전이 되자 제작이 무기한 중단되었다.

시대를 선도하다

만일 20세기 초였다면 해상 패권 유지를 위해 건조를 계속했겠지만 전후 복구가 시급했기에 어쩔 수 없었다. 노후함 대체 등을 고려해서 프로젝트가 폐기된 것은 아니었지만 앞날을 기할 수 없던 상황이었다. 겉으로는 여전히 대영제국의 위상을 유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영국의 국력은 제2차 대전 종전과 함께 서서히 몰락하고 있었다.

1941년 격침 중인 전함 프린스 오브 웨일즈. 영국 해군의 몰락을 상징하는 장면이다.

반면 제2차 대전을 통해 초강대국의 위치에 오른 미국은 이 시기에 비슷한 크기의 미드웨이급 건조를 계속 진행했고 차세대 초대형 항공모함의 건조도 계획 중이었다. 이때를 기점으로 바다의 패권은 완전히 미국으로 넘어갔다. 이처럼 불분명 했던 아크로열의 미래는 냉전의 시작과 한국전쟁의 발발로 극적으로 재개되었다.

결국 건조에 들어간 지 무려 12년이 지난 1955년이 되어서 일선에 배치되었다. 제트시대의 도래처럼, 이 기간에 있었던 엄청난 기술적, 환경적 변화로 말미암아 최초 설계되었던 당시와 상당히 다른 모습으로 탄생했다. 이때 적용된 여러 기술들은 아크로열이 현대 항공모함의 기원으로 여겨지는 기념작이 되도록 만들었다.

취역 초기인 1957년에 촬영된 아크로열. 당대 최고 수준의 항공모함이었다.

우선 전후 항공모함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경사갑판이 설치되어 이착함 효율을 높였다. 함재기가 제트화되자 이함용 사출기가 장착되었고 반사경처럼 안전하게 착함을 돕는 여러 시스템도 탑재되었다. 당연히 작전 능력이 획기적으로 향상되었고 이를 눈여겨 본 미국도 같은 방식으로 신조함을 설계했고 기존 항공모함들도 개조했다.

여전히 아쉬워하다

이처럼 냉전으로 인해 극적으로 부활한 아크로열은 동급 함 이글과 더불어 북해와 대서양에서 소련의 진출을 막는 역할을 담당했다. 항공모함의 위력은 함 자체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탑재한 항공기의 성능에 좌우가 된다. 1960년대 함재기로 운용한 F-4K 전투기와 핵폭탄까지 운용할 수 있는 버캐니어 공격기는 가히 당대 최고의 전력이라 할 만 했다.

갑판에 F-4K 전투기와 버캐니어 공격기가 주기된 아크로열

적어도 현역 활동 당시에 미국의 초대형 항공모함을 제외하고 아크로열보다 크고 작전 능력이 뛰어난 항공모함은 없었다. 그때는 패전국 일본에게 항공모함은 언감생심이었고 죽의 장막에 갇힌 중국에게는 꿈에서나 가능한 이야기였다. 제일 주적이라 할 수 있는 소련도 1975년 이전까지 이착함이 가능한 고정익 항공기를 운용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1970년대가 되어 IMF로부터 구제 금융을 받아야 할 만큼 영국의 경제가 몰락하자 영국 해군은 수직이착륙기를 탑재한 경항공모함 체제로 전력을 완전히 재편하기로 결정하고 1979년 2월 아크로열을 퇴역시켰다. 1978년부터 건조에 들어간 경항공모함 3번함에 아크로열(R07)의 이름을 승계시켰을 만큼 아쉬움이 많았다.

아크로열에서 사출기를 이용해 이함 준비 중인 F-4K

최신 퀸엘리자베스는 효율성이 뒤진 스키점프대 방식으로 이함시킨다

비록 1982년 포클랜드 전쟁에서 승리했지만 경항공모함의 능력에 부족함을 느낀 영국은 2014년 이들을 완전히 퇴역시키고 2017년 퀸엘리자베스를 취역시키며 40여 년 만에 중항공모함 시대로 복귀했다. 그럼에도 많은 영국인들은 사출기로 함재기를 운용했던 아크로열에 비해 아쉽다고 토로한다. 그만큼 아크로열은 당대를 선도했다.

반응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