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전쟁사]블랙 호크 다운(Black Hawk Down), 소말리아 모가디슈 전투
영국, 프랑스 등 유럽의 제국주의 열강들은 아시아, 아프리카등 약소국을 침략해 식민지를 건설했다.
유럽 열강들은 산업혁명을 통해 성장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식민지를 확장하고, 자원 공급처 및 상품판매 시장으로 식민지를 수탈했다.
유럽의 침략자들은 기존 원주민 부족의 영역구분을 무시하고, 자신들끼리 협의하여 국경선을 마음대로 그어버린다.
그러한 국경선 때문에 어떤한 부족은 분단되고, 어떤한 부족들끼리는 원하지 않는 합병을 하기도 했다.
영역의 구분와 그곳에 사는 인간(원주민 왕국 혹은 부족)의 불일치로 아프리카는 식민지 독립 후에 부족들 간의 분쟁에 따른 내전과 인간청소(학살) 등 문제에 빠지게 된다.
※ 참고
* 우리 눈에는 다같은 흑인으로 보여도, 흑인도 여러 계통으로 나누어 진다.
* 부족 의식이 강해서 아직도 부족기반으로 정치를 하며, 내전도 부족간 세력다툼이다.
* 애초에 인권개념이 적고, 다른 종자로 보기 때문에 거부감없이 사람을 죽일 수 있다.
소말리아는 아프리카 동부 해안에 위치한 국가(지역)이다.
지리적으로는 서쪽으로는 광할한 아프리카 대륙, 동쪽 바다 건너에는 아라비아 반도가 있고, 해운산업의 요충지 수에즈 운하의 길목에 위치한 지리적 요충지이다.
소말리아는 중요한 위치한 특성때문에 아프리카의 뿔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패권과 통상경로 확보에 엄청난 요지이다.
그래서 현대 소말리아에서 해적질은 유망한 국가 기반산업이다.
자연적으로는 영토의 많은 부분이 건조한 사막성 지역이라 물이 귀하고 농업이 어려워 목축업에 의존한다.
소말리아도 다른 아프리카 국가들처럼 유럽의 식민지 통치를 경험했다.
이탈리아와 영국의 통치를 받던 소말리아는 1960년에 완전 독립, 공화국을 수립한다.
하지만 혼돈의 도가니인 아프리카 대륙의 특성상, 대통령이 경호원에게 암살 당하고 군사 쿠데타가 일어나는 등 정치적 혼란이 끊이지 않았다.
대통령이 암살당한 이후, 육군 소장이었던 시아드 바레가 쿠데타로 집권한다.
당시 세계는 미국이 이끄는 자유주의 세력과 소련이 이끄는 공산주의 세력이 대립하던 냉전시대였고, 바레는 친소련 인사였기에 소말리아는 공산주의를 표방했다.
위에서 언급했지만, 유럽 식민지 통치의 결과로 아프리카 국가들의 영토경계와 그곳에 사는 인간들의 구분은 일치하지 않았다.
소말리아의 주요 부족인 소말리족은 소말리아 뿐만 아니라, 이웃나라 에티오피아의 오가덴 지역에도 살고 있었다.
소말리아 바레 정권은 소말리 부족을 해방하고 통합 국가를 건설한다는 명목으로 1977년, 에티오피아를 침공하여 오가덴 전쟁을 일으킨다.
에티오피아는 소말리아와 마찬가지로 친소련 공산주의 표방 국가였기 때문에, 소련이 두 국가를 중재하려 했지만 실패한다.
전쟁초기 소말리아군은 오가덴 지역 대부분을 점령했지만, 소련이 소말리아를 버리고 에티오피아를 지원했기 때문에 결국 소말리아군은 오가덴 점령에 실패, 전쟁에서 패배한다.
냉전시대의 미국과 소련은 서로 견제하기 위해 '적의 적'에게 무기나 자금, 훈련지원을 위한 고문단을 파견하였다.
소련에게 배신당한 소말리아 바레정권은 소련과 단교하고, 친서방(미국)국가로 전환한다.
미국은 아프리카에서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소말리아 바레 정권을 후원했다.
하지만 미국이 아무리 지원을 해주어도, 나라를 운영하는 정권이 무능했기에 소말리아는 점점 망해갔다.
오가덴 전쟁의 후유증으로 에티오피아에서 유입된 소말리 부족 난민 문제, 무리한 전쟁비용 지출 등으로 경제는 망해갔고, 대부분의 아프리카 국가들처럼 바레 정권도 특정 유력부족을 기반으로 정권을 독점하였기 때문에 차별받는 군소 부족들의 불만이 고조되어 갔다.
수차례의 반정부 시위와 폭동이 발생했고 바레 정권은 이를 무력으로 강경 진압했다.
그러던 와중, 1990년여러 반정부 부족들이 연합하여 USC(United Somali Congress, 통일 소말리아 회의)를 결성, 대규모 반정부 투쟁을 이어나간다.
그 무렵 냉전이 끝나가면서, 소련 견제를 위해 소말리아를 후원하던 미국의 지원도 중단됐기 때문에 바레 정권은 더욱 어려워져 갔고, 1991년 USC가 소말리아 수도 모가디슈를 함락시키면서 바레 정권은 끝장난다.
바레 정권의 독재는 끝장났지만 불행한 소말리아에 평화는 오지 않았다.
바레정권을 몰아내기 위해 결집했던 USC 내 부족(군벌)들이 소말리아의 새 주인이 되기 위해 서로 싸우기 시작했다.
소말리아 내전이 발생한 것이다.
소말리아의 새 대통령은 마흐디 무하메드라는 자였는데, 그는 USC 내 최대 부족의 대표였다.
그런데 바레 정권과의 전투에 가장 많이 기여한 세력은 파라 아이디드가 이끄는 중소 부족이었다.
파라 아이디드는 정권교체에 가장 공이 큰 자신이 아니라 마흐디가 대통령이 된 것에 반발해 정부와 대립한다.
소말리아는 정부군과 아이디드의 반군으로 갈라져 내전에 빠지기 시작한다.
이탈리아 식민지 시절 이탈리아 본토에서 교육을 받고 소말리아 경찰이 되었다.
소말리아 독립 후에는 소련에서 군사교육까지 받은 엘리트였으며, 오가덴 전쟁에서 전투 경험을 쌓았다. 수많은 사람들을 학살한 악마이기도 하다.
한 국가 내에서 일어났기 때문에 표면적으로는 내전이었지만, 실상 부족들 간의 전쟁이었기 때문에 상대편 민간인에 대한 무차별 학살이 벌어졌고, 그 와중에 역대급 가뭄까지 겹치면서 수많은 아사자까지 발생했다.
수백만명 단위로 사람이 죽어나갔고, 소말리아는 국가기능을 완전히 상실, 완전한 무정부 지옥으로 변한다.
굶어죽는 소말리아인 이미지는 이때 만들어진 것이며, 우리나라에서도 소말리아 돕기위해 사랑의 빵 모금행사를 했다.
소말리아가 지옥으로 변하자 UN은 소말리아에 식량지원을 시작했고, 1992년 내전을 종식시키기 위해 평화유지군을 파병한다.
UNOSOM(United Nations Operation in Somalia)라는 작전명으로 파키스탄, 호주, 케나다 등 15개국에서 소말리아 내전을 중단시키고, 안정적인 식량보급을 보장하기위해 약 500명의 병력을 파병한다.
작전 참가국으로는 호주, 오스트리아. 벨기에, 케나다, 체코, 이집트, 피지, 핀란드, 인도네시아, 요르단, 모로코, 뉴질랜드, 노르웨이, 파키스탄, 짐바브웨였다.
소말리아 면적은 대한민국 영토의 6배가 넘는다. 작전지역은 한정되어 있다고 해도, 그 넓은 땅은 500명으로 감당이 되지 않았다.
UN에서도 작전 수행의 어려움을 인정하고 3,000명을 추가 파병하려 했지만 흐지부지 되어버린다.
그러나 소말리아 군벌들은 평화유지군을 무시하며, UN에서 지원한 식량을 탈취해 자신들 마음대로 사용했고, 내전도 이어나갔다.
아이디드는 교활한 자였다. 전 국민이 굶어 죽는 상황에서 식량 보급을 독점해 소말리아를 차지하여 한 것이다. 사탄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만큼 악랄함으로 수많은 사람들 굶겨죽인 것이다.
특히, 내전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던 아이디드 세력은 어차피 자신들이 이겨 소말리아를 차지할 것이 뻔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전투를 이어나갔고, 방해물인 UN 평화유지군의 소말리아 철수를 요구하며 UN군을 공격하기까지 했다.
결국 자잘한 국가들의 병력으로 이루어진 소규모 평화유지군의 효과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한 UN은 아직 병력을 파병하지 않았던 미국의 참여를 요청했다.
미국 입장에서 소말리아는 나름 중요한 요충지였어.
아프리카의 뿔이라고 불리는 소말리아지역은 산유국의 아라비아 반도, 핵심 교역로인 홍해와 인도양(수에즈 운하) 등에 인접해 있었기 때문에 미국이 이지역을 확실히 통제할 수 있다면 중동, 서남 아시아, 남태평양 지역에서의 패권을 더욱 강화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1992년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조지 부시는 소말리아에 미군 25,000명 파병을 결정한다.
작전명은 Operation Restore Hope 희망 회복 작전이었으며, 여담으로 이 결정 당시 부시 대통령은 재선에 실패한 상태였다.
하지만, 분명히 국익에 도움이 되는 결정이고, 세계 경찰을 자처하는 미국의 이미지와도 부합하며 어차피 며칠있다 그만두니 책임의 부담도 적었을 것이다.
걸프전에서 이라크군을 박살내고 절정의 힘을 과시하던 미군이 소말리아에 전개되자 소말리아는 안정을 되찾기 시작한다.
소말리아 군벌들도 걸프전을 통해 미군을 건들면 어떻게 되는지 잘 알고 있었기에 전투를 자제했고, 미군이 가져온 전차, 공격헬기 등 중장비가 식량보급소에 배치되자 반군의 식량 약탈도 어려웠기 때문이다.
미군의 활약으로 소말리아는 평화를 되찾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소말리아 파병을 결정했던 조지 부시의 후임으로 빌 클린턴이 대통령이 되자 상황은 급변한다.
클린턴 정권은 소말리아의 중요성을 낮게 평가했기 때문이다.
미국의 중동, 아시아 지역 영향력 유지를 위해 아프리카의 뿔(소말리아)이 중요한 것은 사실이나, 이미 걸프전을 통해 중동은 미국이 확실히 접수했고, 인도양 한복판 디에고 가르시아섬에 위치한 미군기지를 통해 미국은 이미 지역 기반을 가지고 있었다고 봤기 때문이다.
인도양에 있는 차베스 제도(모여있는 섬) 중에서 가장 큰 섬이다.
원래 무인도인데 대항해시대 때, 발견되어 포르투칼, 프랑스, 영국 순으로 섬을 차지했다.
영국이 해외 기지 운영할 능력이 없어지자 미국이 섬을 임대했다.
B-52 전략폭격기가 배치된 섬으로 이 섬의 존재로 미국은 인도양, 중동 지역에 엄청난 파워를 행사할 수 있다.
그래서 클린턴은 비싼 비용을 들여 소말리아에 대규모 병력을 유지하고 싶어하지 않았고, 결국, 소말리아에서 철군하기 시작했다.
소말리아 내 미군병력은 25,000명에서 1,000명으로 감축되었고, 남겨진 병력도 주요 분쟁지역에서 이격된 후방으로 물러난다.
이후 UN은 UNOSOM-II(United Nations Operation in Somalia-2)라는 작전명으로 독일, 프랑스, 파키스탄 등 35개 국의 28,000명 병력을 동원한다.
철수하는 미국의 작전지역을 넘겨받아 평화유지작전을 이어나간다.
호주, 오스트리아, 방글라데시, 벨기에, 보츠와나, 캐나다, 이집트, 피지, 핀란드, 프랑스, 독일, 그리스, 인도, 인도네시아, 아일랜드, 이탈리아, 쿠웨이트, 요르단, 말레이시아, 모로코, 뉴질랜드, 나이지리아, 노르웨이, 파키스탄, 스페인, 대한민국, 루마니아, 사우디아라비아, 스웨덴, 튀니지, 터키, 아랍에미리트, 영국, 미국, 짐바브웨가 파병에 참여했다.
약 250명 규모의 공병부대로 파병기간 동안 도로 정비 등을 수행했으며, 다행히 반군과 교전은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미군이 철수하자 그동안 잠잠하던 소말리아 반군이 다시 활동하기 시작했다.
반군은 미군이 빠진 만만한 UN군을 상대로 적극적으로 전투를 벌였어.
UN 평화유지군의 사상자는 점차 늘어났고, UN의 군사활동도 지역의 안정화, 평화유지가 아니라 반군에 대한 전투작전으로 성격이 변했다.
안전한 평화유지작전이 아니라, 전투활동으로 사상자가 다수 발생하자 병력 제공국들은 부담을 느끼며 소말리아에서 철군하기 시작했다.
전투병력은 빼고 지원병력은 남겨두는 국가도 있었고, 모조리 다 빼버린 국가도 있었다.
안 그래도 만만한, 미군없는 UN군이 하나둘씩 철수하기 시작하자 아이디드의 반군은 더욱 더 기세등등해졌다.
적대 반군을 박살내고 흡수하며 더욱 더 강해져 날뛰기 시작한거다.
아직까지 소말리아에 잔류한 UN군은 지속적으로 아이디드의 반군을 격멸하기 위해 전투를 이어갔다.
UN군은 아이디드 반군을 제거하기 위해 공격헬기를 동원했는데 헬기 공습 과정에서 다수의 민간인이 휘말려 사상당하는 부수적 피해가 발생했다.
라디오 수신기는 싸고 가볍다. 전파를 공중으로 쏘기만 하면되기 때문에 방송도 쉽다. 그래서 낙후된 소말리아같은 곳에서 라디오는 강력한 매스미디어였다.
독재를 위해서는 미디어를 장악, 선전방송을 통해 여론을 장악해야 한다.
아이디드는 수십명이 죽고 수백명이 다친 이 사건을 이용해 미군이 소말리아인들을 학살하고 있다고 거짓 선전을 했다
아이디드는 자신이 권력을 위해 벌이는 더러운 내전과 학살을 서구 침략자들에 대항한 해방전쟁이라는 식으로 포장했다.
선전의 효과로 아이디드 세력은 더욱 더 늘어났고 침략자라는 오명을 쓴 UN군의 작전은 더욱 더 어려워졌다.
아이디드의 선전에 현혹된 소말리아인들은 자신들이 겪고있는 이 지옥이 서양 침략자들 때문이라 믿었고, 미국을 증오하며 아이디드를 적극 지지하기 시작했다.
교육수준이 낮았고 비참한 삶을 살던 소말리아인들은 쉽게 선동당했다. 강간, 학살, 아사 등 끔찍한 현실에서 얻은 그들의 분노는 미군을 향했다.
무섭고 야만적인 아이디드보다, 신사적인 미군에게 화내는 것이 더 쉬웠을 것이다.
또한, 선동된 소말리아인들에 의해 서방 기자 4명이 살해되는 사건도 있었고, 군사작전 뿐 아니라, 민간 봉사자들의 활동도 어려워졌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자 미국 대통령 빌 클런턴은 곤경에 빠졌다.
부시(공화당)가 파병한 병력 덕분에 소말리아는 잠시나마 안정을 찾았는데, 클린턴(민주당)이 그 병력을 빼서 소말리아가 다시 지옥으로 변했다는 것과 미국은 원래 인권 문제에 엄청나게 민감한 나라였다.
지지도에 심각한 타격을 입게된 클린턴 정권은 상황을 뒤집어 이미지를 회복할 작전을 구상한다.
소규모 정예 병력을 파견하여, 단기간에 반군 지도부를 모조리 소탕하자는 것이었는데, 이를 위해 미국은 개리슨 소장이 지휘하는 특수임무부대인 Task Force RANGER(이하 TF RANGER)를 파병한다.
게리슨 장군의 TF RANGER는 레인저, 델타포스 등 최정예병력 450명, 특수작전 헬기 16대로 구성되었으며, TF RANGER를 지원하기 위해 항공모함 1대가 소말리아로 파견되었다.
본부는 모가디슈 공항에 위치했다.
지난 걸프전에서 이라크를 박살낸 미국은 마음만 먹으면 반군정도는 콩가루로 만들 수 있다는 과도한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지휘부는 3주안에 작전을 완수하고 철수할 수 있다고 자신만만했다.
대형 수송기를 통해 병력과 장비를 신속하게 전개할 수 있고, 격납고 등 각종 활용할 건물이 있다는 점에서 미군의 해외 기지는 공항에 많이 위치한다.
TF-RANGER의 목표는 아이디드를 포함한 반군 지휘부를 생포하는 것이었다.
이후 지도부를 잃은 잔당 처리 및 안정화 작전은 기존에 소말리에 잔류했던 미군 1000명이 수행한다는 것이다.
미국 지도부는 아이디드 패거리의 사살이 아닌 생포를 고집했다. 놈들을 잡아 국제전범재판에 세우기를 바랐기 때문에 사살은 후순위였다. 죽여버리는 것보다는 재판하는게 정치적 효과가 더 크기 때문이었겠지?
미군 지휘부가 예상했던 TF-RANGER의 작전소요 기간은 3주였다.
- 1주차에는 병력 전개 및 작전준비
- 2주차에는 특수작전을 통한 아이디드 체포
- 3주차에는 잔여 반군 지도부 제거 및 철수
최근 있었던 아프간에서의 전쟁에서도, 수년간 쌓은 정보망이 있는데도 탈레반을 소탕하는데 애를 먹었다. 그런데 당시 소말리아 내 미국의 정보망은 빈약했다. 지난 걸프전에서 너무 압승했기 때문에 과도한 자신감을 가졌던 것일까.
TF-RANGER는 요인납치작전을 정석적으로 수행했다. CIA와 정보부대를 통해 입수한 정보를 바탕으로 표적을 추적, 야간에 헬기를 이용해 은밀히 침투한 후, 신속하게 표적을 포획해서 기지로 귀환하는 것이었다.
병력이 열세한 특수부대가 성공적으로 작전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적의 감시, 경계 능력이 제한되는 야간을 이용해야 한다.
TF에 배치된 160특수작전항공연대는 야간침투작전에 특화된 헬기부대였으며, 예나 지금이나 비싼 야시경을 대량으로 운영할 수 있는 군대는 미군밖에 없으므로, 밤시간은 미군에게 압도적으로 유리했다.
드론, 공작원 등을 통해 입수한 정보를 바탕으로 특수부대가 야간에 인간을 사냥하는 작전은 최근에도 아프간 등에서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작전운영은 정석적이었지만 부정확한 정보판단 때문에 허탕을 치거나, 엉뚱한 사람들을 납치하기도 했다.
결국 별다른 성과도 없이 목표했던 3주가 흘러가 버린다.
야간 침투를 통해 9명의 반군 지도부를 체포했으나, 국제구호단체 직원을 오인한 것이어서 망신을 톡톡히 당한다.
대통령이 직접 신경쓰는 상황에서 성과를 못내자 미군 지휘부는 애가 타기 시작했고, 적대지역 내 특수작전을 대낮에 운영하는 무리수까지 두기 시작했다.
결국 한 달 만에 아이디드의 측근 한명을 체포하는데 성공한다.
표적은 오사만 알리 아토. 유력한 군벌로 과거 아이디드의 경쟁자였지만 아이디드에게 합류, 한참 나중에 미국이 풀어줘서 소말리아로 복귀했으며, 아이디드가 대통령을 자처하자 암살시도 등으로 아이디드의 뒷통수를 친다.
미군이 자기를 잡으려고 여기저기 헤집고 다니자 위기감과 분노를 느낀 아이디드는 반군에게 미군에 대한 보복 공격을 지시했다.
측근 체포 4일째 되던 날, 일상 비행 중이던 미군의 MH-60 블랙호크 한대가 반군의 기관포와 RPG-7 기습공격에 추락, 승무원 전원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미군은 반군들이 감히 헬기를 공격할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고속으로 이동하는 헬기를 무유도 로케트로 맞추는 것은 엄청나게 어렵다. 격추당한 블랙호크는 반군의 기관포 기습에 당해 조종능력을 상실한 상태에서 RPG-7에 맞았던 것이며, 승무원 3명 전원 사망한다.
아이디드는 라디오를 통해 미군헬기 격추를 대대적으로 선전하기 시작했다.
안그래도 성과가 안나오는 상황에서 대규모 손실까지 발생한 미군은 더욱 더 조급해졌다.
아이디드는 라디오를 통해 자신이 블랙호크를 직접 격추했다고 허풍을 쳤다.
블랙호크 추락 후 며칠이 지났을 무렵, CIA가 통신감청을 통해 아이디드의 핵심 측근 2명이 모가디슈 시내에서 만남을 가진다는 첩보를 입수했다. 미군은 즉시 체포할 작전을 구상한다.
작전 지역이 인구(반군)밀집 시가지이고, 작전 시간이 주간이었기 때문에 위험도가 높은 환경이었다.
지휘관 게리슨 장군은 작전환경을 고려해 국방부에 지휘통제기, 공격헬기, 전차, 장갑차 등 중화기 지원을 요청했지만, 대규모 작전수행에 부담을 느낀 국방부는 이를 거절했다.
아마 지난 헬기공습 과정에서 민간인 피해가 발생한 것 때문에 중장비 동원을 승인하지 않았을 것이며, 반군 오합지졸 정도는 미군 특수부대가 가볍게 상대할 수 있다고 방심 역시 했을 것이다.
결국 TF-RANGER가 보유한 전력만 동원한 아이디드 측근 체포작전 고딕 서펀트(Gothic Serpent)가 수립된다.
※ 작전명 고딕 서펀트(작전개시와 목표물(반군 참모)은 아이린(IRENE)이라는 음어로 표현한다.)
1. 차량 12대에 탑승한 호송대가 목표건물 근처 거점 확보 후 대기
* 9/험비, 3/트럭. 체포조의 퇴출을 지원. 레인저 및 소수 델타포스 및 DEVGRU
2. AH-6 무장헬기 4대가 공중에서 경계 및 유사시 화력지원
* 호출부호는 스타 41~44. 소형 경무장 헬기. (기관포, 로켓으로 무장)
3. MH-60 헬기 4대에 탑승한 레인저 4개 팀이 목표건물 차단 후 방어
MH-60 헬기 3대로 델타 저격수, 항공구조사 등 지원팀이 체공 대기
* 레인저팀 호출부호 초크 1~4
* MH-60 블랙호크 8대 중
- 7대는 호출부호 슈퍼 61~68(63은 결번). 레인저팀, 지원팀(델타 저격수, 항공구조사 등)
- 1대는 호출부호 로미오 64 혹은 C-2 ('C'는 지휘통제 의미). 지휘통제기
4. MH-6 헬기 4대에 탑승한 체포조가 목표건물 진입 후 목표물 확보
* MH-6 호출부호 바버 51~54, 델타포스 4개 팀(16명) 호출부로 킬로 11~14
5. 델타포스(+포로), 레인저 건물에서 퇴출 후 호송대와 합류
6. 전병력(+ 포로)이 차량 12대에 나눠타고 작전지역을 이탈해 복귀
※ 작전은 30분 내에 완료한다.
미군은 무척이나 자신만만했고, 소말리아 민병대를 과소평가했다. 대낮에 처들어가는 것도 모자라, 장비도 가볍게만 챙겨갔다고 한다. 영화에서 묘사되듯, 진짜로 30분안에 끝난다고 확신하고 야시경, 식량도 안챙기고, 방탄조끼 방탄판도 무겁다고 빼고 갔다.
미군은 목표건물 인근을 BLACK SEA라고 불렀다. 미군본부인 모가디슈 공항에서 BLACK SEA지역까지는 약 5Km 거리이다.
목표건물에 특색이 없어 구별이 어려웠으므로 근처 올림픽 호텔을 참조물로 삼았다. 비행시 공식, 비공식 절차에 저명한 지형물을 참고하는 경우가 많다.
미군은 첩보를 바탕으로 현지 첩보원을 투입 후 표적을 추적, 그들이 목표건물에 위치한 것을 확인했다.
첩보원은 차가 고장난 것처럼 목표건물 앞에 주차한 후 차 본네트를 열어서 미군에게 확인 신호를 보냈다.
공중에서 P-3 초계기가 첩보원의 신호를 확인하고 TF-RANGER 지휘소에 전송했다.
P-3는 해상 감시하고 잠수함 탐지하는 대잠초계기이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광학(EO)카메라 같은게 달려서 영상촬영도 가능할 것이다.
그 기능을 이용해서 고고도에서 영상촬영을 통한 감시정찰, 지휘통제(보조)를 수행했으며, 그냥 조기경보기를 한 대 보내주면 될 걸 임무에 맞지도 않는 비행기를 보내서 고생을 했다고 생각한다.
TF-RANGER의 지휘관 게리슨 장군은 마침내 작전 개시를 선언한다.
아이린은 작전 개시를 뜻하는 음어이자, 체포해야할 목표물(아이디드 참모)을 뜻한다.
가장먼저 지휘통제 헬기인 C-2가 상황파악 및 위치 선정을 위해 네셔널 거리로 출발했고(C-1은 게리슨 장군 지상지휘소, C-2는 중령급 공중지휘소), 이어서 지상 호송대 트럭이 올림픽 호텔로 출발했다.
몇 분 후, 레인저와 델타포스를 싣은 헬기가 작전지역으로 향하기 위해 이륙했다.
그런데 앞서 이야기했듯, 아이디드의 선동으로 인해 소말리아인들은 미군을 학살자라며 증오했다.
모가디슈 주민 전체가 아이디드의 편이었던 것이다.
대낮에 대규모 병력이 이동하니, 미군들이 기지를 떠나 시내쪽으로 이동한다는 것은 금방 알려졌고, 아이디드의 반군은 전투를 준비했다.
아이디드의 반군은 확성기를 들고 나와 주민들을 선동했다.
"학살자들이 온다. 무기를 들고 나와 너희 집을 지켜라."
반군과 선동당한 무장 민간인들이 쏟아져 나온 모가디슈는 마치 벌집의 벌들을 연상케 했다.
반군은 미군의 시가지 진입을 막기 위해 쓰레기로 바리케이트를 설치해 차량진입을 막고, 타이어를 태워 만든 검은 연기로 헬기의 비행을 방해했다.
타이어에 불이 붙으면 검은 연기가 엄청나게 많이 나온다고 한다. 저고도 비행 시 도로, 전깃줄 등을 참고하는 경우가 많다. 길 찾는 좋은 방법이기 때문이다. 저고도에서 시계불량은 조종사에게 엄청난 스트레스이다. 장애물을 못보고 박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반군이 미군의 체포작전을 어디까지 파악하고 길을 막았는지는 불명이지만, 반군의 쓰레기 바리케이트로 미군 지상호송대(차량)는 원래 경로인 네셔널 거리를 이용하지 못했고, P-3초계기가 알려준 대체경로인 암드포스 거리로 이동했다.
시간 낭비가 심했다.
반군이 길목을 차단했기 때문에 지상 호송대는 네셔널 거리로 못가고 대체경로인 암드포스 거리로 이동했다.
어지간한 길은 다막혔기 때문에 헬기들이 저고도로 내려와 겨우겨우 대체경로를 찾아 호송대를 유도했다.
연기때문에 지상관측이 어려웠기 때문에 헬기들이 위험을 무릎쓰고 저고도로 내려왔으며, 저고도에서는 적의 화기 발사를 식별한 시간적 여유가 부족해 대응이 어렵다.
반군의 방해로 지상호송대는 원래 도착시각보다 한참 후에야 목적지인 올림픽 호텔 근처에 도착할 수 있었다.
레인저와 델타를 수송하는 헬기들도 이동에 장애를 겪고 있었다.
반군들이 태우는 타이어 연기 때문에 시계가 불량했기 때문에 헬기들은 어쩔 수 없이 저고도로 내려와 그나마 맑은 지점을 통해 비행했지만, 그곳에는 반군들이 RPG-7을 난사해대고 있었다.
헬기들 역시 반군의 방해 때문에 어렵사리 목표물이 있는 BLACK SEA 지역에 도착했다.
하지만 반군의 RPG-7 사격은 끝이 없었지. 블랙호크 4대에 탑승한 레인저 4개팀이 목표건물 주변 장악을 위해 하강을 시작했지만, 그 중 한대(레인저팀 초크-4)는 적의 화력이 너무 강해 어쩔 수 없이 목표지점보다 한참 북쪽에 내릴 수 밖에 없었다.
4개 레인저팀(초크1~4)이 패스트 로프로강하, 건물을 차단해야 했는데, 초크4는 적의 화력이 너무 강해 원래지점보다 먼 곳에 내려야 했다.
그런데 강하지점을 북쪽으로 변경했던 초크-4에서 레인저 대원 한명이 로프를 놓쳐 낙상하는 사고가 일어난다.
영화에서는 적 공격때문에 기체가 흔들려 추락한 것으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단순히 줄을 놓쳐 추락한 것이라 한다.
레인저 초크-4는 낙상한 대원을 수습했고, 나머지 레인저팀(초크 1~3)이 건물을 차단했다.
이어서 바로 델타포스가 헬기를 타고 목표건물로 진입했다.
MH-60 블랙호크는 중형헬기라 이착륙이 비교적 느리며, 넓은 착륙공간이 필요했지만, MH-6 리틀버드는 소형이라 금방 뜨고 내리며, 좁은 곳에도 내릴 수 있었다.
헬기에서 내린 델타포스는 건물에 진입해 수색을 시작했다.
그런데 외부에서 건물을 차단하고 있던 레인저가 건물을 수색하던 델타포스를 적으로 오인하고 사격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사상자는 없었지만 작전은 지체되었으며, 총소리를 들은 소말리아인들은 드디어 미군들이 우리를 죽이고 있구나라고 생각하며 몰려들었다.
아군 오인사격(Friendly Fire)는 실제로도 자주 일어난다고 한다. 위장한 상태로 육안식별이 어렵고, 인원들이 긴장한 상태라 그렇다고 한다.
건물 수색작전이 진행되는 동안 지휘헬기 C-2는 낙상한 레인저 대원을 호송하기 위해 초크-4를 목표건물 방향으로 이동시켰고, 호송대에서 험비 3대를 차출해 환자호송을 위해 목표건물로 먼저 출발시킨다.
한편, 험비 3대가 먼저 출발하고 올림픽 호텔 근처에서 델타와 레인저를 기다리던 지상호송대가 반군의 RPG-7 공격을 받았고 대규모 부상자가 발생한다.
트럭 한 대가 폭발하고 20명이 넘는 부상자가 발생한것이다.
철수시 다수 인원을 수용해야 하는 트럭이 폭발한 것은 큰 문제였다.
건물을 완전 제압한 델타포스 체포조는 목표물인 아이디드의 측근들을 체포했다.
이제 목표건물에서 임무를 완수한 델타 체포조(+포로), 레인저 차단조는 호송대를 기다렸다.
시나리오에 따라 트럭을 타고 복귀만 하면 되는 거였다.
그런데 반군의 방해 때문에 환자 호송을 위한 험비 3대만 겨우 도착했고, 나머지 트럭을 포함한 호송대 본대는 도착이 늦어졌다.
결국 낙상환자를 호송할 험비 3대가 먼저 본부를 향해 출발했다. 하지만 반군이 길을 막아 복귀는 제한되었고 반군의 사격으로 전사자까지 발생했다.
뒤늦게 호송대 본대가 목표건물에 도착하자 델타포스와 레인저, 포로들이 차량에 탑승했다.
그런데 이전에 트럭 1대를 잃어 모든 차량이 정원초과였다.
그런데 갑자기 반군이 호송대를 공격하기 시작했고, 지휘부는 대원들에게 일단 목표였던 건물로 다시 돌아가라고 지시한다.
전투과정에서 그 천하의 미군도 전장감시와 지휘통제에 큰 어려움을 겪는다.
당시 미군의 주요 지휘통제 전력은 P-3(초계기, 고고도, 전장감시), C-2(헬기, 중고도, 중령급 중간지휘), C-1(지상, 총사령관 게리슨 장군)이었는데, 상황이 실시간으로 동시 전파되지 못하고 P-3 - C-2 - C-1 순으로 보고 및 명령하달이 이루어져서 작전템포가 엄청나게 느려졌다.
지상에서는 급해 죽겠는데 지휘계통이 느려서 다음 지시가 너무 늦거나 소용없어지는 경우가 많았다고 했다.
작전지역 상공에서는 헬기들이 저고도로 내려와 지상군을 위해 화력지원과 막히지 않은 길을 찾고 있었다.
그런데 델타포스 저격수를 태우고 비행하던 블랙호크 슈퍼-61이 반군의 사격을 맞고 불시착했고, 헬기조종사들은 추락하는 와중에도 아군병력과 최대한 가까운 지점까지 헬기를 끌고 갔다.
그 편이 생존에 유리했다.(슈퍼-61 추락지점과 올림픽 호텔은 약 500m 거리)
지난번에도 얘기했지만 무유도 로켓인 RPG로 헬기를 잡는 것은 엄청 어려운 일이다.
명중률이 엄청나게 낮으니까 소말리아 반군은 엄청난 난사를 해대었을 것이며, 타이어를 태워 연기를 피워 시야를 좁게만든 다음에 RPG를 수십발 난사해 화망을 형성한 것이다.
맞든 안맞든 미군헬기의 접근을 거부할 수는 있으니 좋은 방법이었다. 운이 좋아 헬기에 격추시키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그 하루동안 반군은 약 500발의 RPG을 난사했다고 하는데, 하도 많이 쏴서 아이디드 반군은 이후 경쟁 반군과의 전투에서 무기부족 현상까지 겪었다고 한다.
기본적으로 하늘을 나는 기계는 무게 제한 때문에 방어력이 좋을 수가 없다. 총알을 뜅겨 내려고 철판으로 도배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특수섬유 같은걸 기체 안쪽에 넣어서 외피가 뚫리더라도 섬유가 총알을 어느정도 잡아서 기관이나 승객을 보호한다고 한다. 그러나 대전차 로켓인 RPG를 막을 순 없었다.
꼬리에 RPG를 맞아 비행능력을 상실한 블랙호크 슈퍼-61은 추락했다.
그나마 아군 근처까지 갈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추락한 아군 헬기를 구하기 위해 미군은 이동을 시작했다.
건물 안에서 대기하던 델타포스, 레인저는 정원초과로 전원이 차량에 탈 수 없자 도보로 추락지점으로 이동했다.
한편, 근처에서 작전 중이던 미군 헬기들도 추락기체를 지원하기 위해 이동했다. 또 다른 블랙호크인 슈퍼-64가 가장 먼저 도착하여 추락지점을 차단했고 델타포스 2명의 생존을 확인했다.
슈퍼-61의 조종사 2명 사망, 델타포스 2명은 경상. 그 외 중상자 다수였으며, 부상당한 델타포스 2명은 접근 중인 소말리아 반군을 상대로 교전 중이었다.
이어 도보로 이동한 레인저 병력이 도착하여 접근중인 반군을 차단했고, 화력지원헬기 스타-41(AH-6)도
추락지점에 도착해 조종사 1명이 직접 내려 생존자인 델타포스 2명을 스타-61에 태웠다.
다시 이륙한 스타-41은 남은 탄약으로 화력지원을 실시한 후 모가디슈 공항으로 복귀했다.
왜 중상자는 두고 경상인 델타포스만 싣고갈까 하겠지만, AH-6는 기본적으로 2인승 헬기이다.
나머지 인원들은 헬기 옆에 임시로 설치한 발판 같은데 걸터앉아 구조로, 중상자는 도저히 탈 수가 없는 상태였다.
이어서 또 다른 블랙호크 슈퍼-68이 현장에 도착했다.
탑승하고 있던 항공구조사들이 내려 부상자들을 치료했는데, 현장에서 체공 중이던 슈퍼-68도 반군의 RPG-7 공격을 받는다.
다행히 직격탄은 아니라서 추락하지는 않았지만, 슈퍼-68은 더 이상 임무수행이 불가능했다.
미군 병력들은 슈퍼-61의 추락지점으로 집결하고 있었다.
그러나 반군이 길을 다 막아버려서 이동에 차질이 있었으며, 미군 헬기들은 모가디슈공항으로 돌아가 탄약과 장비, 병력들을 싣어나르거나 부지런히 화력지원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추락지점을 지원하던 블랙호크 슈퍼-64가 반군의 RPG-7에 맞아 추락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두번째 블랙호크 다운이었다.
고딕서펀트 작전 이전에 격추된 블랙호크까지 포함하면 3번째지만, 슈퍼-64의 추락지점은 첫번째 블랙호크 추락지점에서 대략 1Km떨어진 지점이었다.
성난 소말리아인들이 슈퍼-64의 추락지점으로 몰려들었고, 대부분의 병력이 첫번째 추락지점에 묶여있던터라 미군 지휘부는 슈퍼-64에 대한 구조를 포기한다.
영상을 통해 슈퍼-64는 이미 완파되어 생존자 존재 확률이 낮고, 성난 소말리아인들이 떼로 몰라가는 와중에 길까지 막혀 미군병력이 제시간에 도착할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추가 사상자가 발생하는 것에 대한 부담이 있었을 것이다.
이때 근처에 있던 블랙호크 슈퍼-62에 타고있던 델타포스 대원 2명이 자원해서 슈퍼-64 구조작전 투입을 요청한다.
들어가면 반드시 죽는 지역이었기 때문에 지휘부는 거부했지만 델타포스 대원들이 직접 게리슨 장군에게 요청해 투입승인을 받아낸다.
전우를 구하기 위해 자원했던 두명의 델타포스 대원.
누가 시킨것도 아니고, 오히려 말리는데도 타인을 위해 목숨을 바친 진짜 영웅들이었다.
델타포스 2명은 안전지역에 착륙한 후 도보로 슈퍼-64 추락지점으로 이동했고, 조종사 1명의 생존을 확인한다.
두 델타포스이 접근하자, 헬기조종사가 물었다.
"구조대는 어디 있습니까?"
델타포스가 대답했다.
"우리입니다."
그들은 100명 이상의 적군을 상대로 1시간 이상 분투했다고 한다.
주변이 건물로 둘러쌓인 상태라 방어하는 미국입장에선 불리하고, 공격하는 소말리안 입장에선 유리한 상태이다.
2인의 델타포스와 생존 조종사는 밀려오는 소말리아인들에게 필사적으로 저항했지만 결국 델타포스 대원들은 전사했고,조종사는 반군에게 포로로 끌려갔다.
성난 소말리아인들은 두 영웅의 시신을 모독했다.
이슬람 예법 상 적이라도 시신을 모독해서는 안된다고 한다.
그러나 성난 소말리아인들은 그렇지 않았다.
두 영웅의 시신은 전투 종료 후, 다국적군(사우디)이 수습했다.
두 영웅은 사후 미국 최고 훈장인 명예훈장(Medal of honor)를 수여받았다.
듀란트 준위는 소말리아 반군이 미군과의 협상용으로 생포해 갔다. 다행히 그는 곧 풀려났다.
두명의 델타포스 대원들이 시간을 번 덕분에 듀란트 준위는 생존할 수 있었다. 광기에 빠진 군중 대신 그나마 이성이 있는 반군이 접근할 시간이 생겼기 때문이다.
최초 작전에 투입되었던 델타포스와 레인저, 호송대는 아직도 모가디슈 시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길이란 길은 다 막혀 있었고, 사방에서 날아오는 반군의 공격때문에 사상자만 늘어나고 있었다.
일부 병력이 모가디슈 공항에 위치한 본부로 귀환하기 했지만 아직도 약 100명의 미군 병력들이 올림픽 호텔 주변에 남아 있었다.(최초 추락한 슈퍼-61 근처)
이들을 지원하기 위해 미군 헬기들이 부지런히 탄약과 식량, 물, 약품 등을 싣어 날랐고 어느새 밤이 찾아왔다.
전쟁통이 되버린 모가디슈 시내엔 전깃불도 없었고 완전한 암흑 속이었다. 원래 야시경을 가진 미군이라면 야간에 압도적으로 적을 쓸어버릴 수 있었겠지만, 30분안에 작전을 완료한다고 자신만만했던 미군 대부분이 야시경을 가지고 오지 않았다.
보이는 게 없었기 때문에 반군의 소화기(총) 사격은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반군의 로켓포, 무반동총이 미군이 은거한 건물을 때렸다.
무장헬기 AH-6가 무리하며 반군을 요격해줬기 때문에 미군은 겨우 버틸 수 있었다.
미군 병력의 자력탈출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미군지휘부는 결국 파키스탄 등 다른 UN 평화유지군 지원을 요청했고, 기존에 소말리아에 잔류했던 미군부대의 공격헬기까지 동원하여 구출작전을 수행하기로 했다.
심야 시간에 작전을 시작한 다국적군은 전차, 장갑차를 앞세워 시내로 진입했고, 반군의 공격에 피해를 입어가며 꾸역꾸역 작전지역으로 이동했다.
전차, 장갑차 등이 투입되었지만, 반군 RPG에 터져 나갔다. 애초에 중장비 없이 작전을 시작한 미군이 얼마나 무모했는지 알 수 있다.
다국적군은 고립된 미군들을 구조했고, 추락한 헬기 등에서 전사자들을 수습했다.
기밀유출 방지를 위해 추락한 헬기 잔해까지 폭파한 다국적군은 아직 실종자를 다 찾지는 못했지만, 해가 떠오르고 있었으므로 재정비를 위해 파키스탄 군이 주둔한 모가디슈 운동장으로 이동한다.
철수 과정에서도 소말리아 반군은 지속적으로 다국적군을 공격했다.
안전을 위해 차량을 이용해 탈출해야 했으나 이미 차량은 만석이었기 때문에 대다수 대원들은 떠오르는 해를 보며 도보로 이동했다.
다국적군 차량승무원들은 빨리 철수하기 위해 미군들에게 장갑차 위에 올라타라고 했지만, 다층건물 위에서 총알이 날아오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미군들은 거절하고, 구보로 이동했다.
모가디슈 운동장까지 거리가 약 1마일 정도인데, 이에 그 날의 퇴각과정을 모가디슈 마일이라 부른다고 한다.
현재 미군부대에서는 그 날을 추모하는 의미에서 훈련 프로그램 이름으로 사용 중이라고 한다.
미군 병력이 모가디슈 시내에서 철수함으로써 모가디슈 전투는 마무리 되었다.
이후 다국적군이 시내에 진입해 실종자 수색 및 전사자 수습을 진행했다.
전투 종료 며칠 후, 반군에게 포로로 잡혔던 블랙호크 파일럿 마이클 듀란트 준위도 무사히 석방되었다.
작전 중 사상자 규모는
- 미국 : 전사 18명, 부상 73명
- 다국적군 : 전사 2명(말레이시아, 파키스탄 각 1명), 부상 9명
- 소말리아 : 1,500 ~ 3,000명 사상(아이디드 주장 : 사망 315명, 부상 812명)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쳤다.
고딕 서펀트 작전 및 모가디슈 전투는 미군의 완전한 실패로 끝났다.
아무런 성과도 없이 수많은 사상자만 남기고 전투가 실패하자 수많은 비난이 쏟아졌고, 결국 부담을 느낀 미국 정부는 아프리카에서 완전히 손을 떼게 된다.
이후 소말리아는 계속 내전에 시달렸고, 지금도 무정부 상태로 각종 군벌들이 군웅할거하는 전국시대이다.
육지에서는 내전, 바다에서는 해적...(해적은 다국적군 개입으로 세력이 약화되었지만.)
소말리아는 여전히 육지에서는 북두의권, 바다에서는 원피스 실사판을 보여주는 막장 국가인 채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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