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조선 말기, 백성들을 괴롭게 한 만동묘
만동묘라는 이름의 유래는 경기도 가평군에 있는 조종암(朝宗巖)에 새겨진 선조의 어필인 ‘만절필동(萬折必東)을 모본하여 화양리 바위에 새겨놓은 것을 그 첫 글자와 끝 글자에서 취해 지은 것이다.
만동묘 설립은 노론의 영수인 송시열로부터 거슬러 올라간다. 송시열은 명나라 황제들 어필을 수집하기를 좋아했고 사신으로 자신의 제자들이 중국에 가면 황제의 어필을 구해오라고 상당한 부담을 주었다고 한다.
그렇게 수집한 중국 황제들의 어필을 비석에다가 새겨놓고 모시며 명나라 황제들에게 제사를 지내게 된다.
권상하는 1703년(숙종 29년) 인근 유생들의 협력을 얻어 화양서원 내 만동묘를 창건하고 만력제와 숭정제의 신위를 봉안하여 제사를 지내기 시작했다. 이후의 임금들도 융성하게 만동묘를 대접했다.
1726년(영조 2년)에 나라에서 만동묘에 노비를 내려주었고, 그 후에도 예조에서 90명이 돌아가며 묘우를 지키게 하는 등 여러 가지로 지원했다. 이 90명이 훗날 날강도 비스무리하게 되는 만동묘지기가 됨.
국가로부터 많은 혜택을 받은 만동묘는 이후 서원이 변질된 요인 중 하나가 된다.
만동묘가 백성들에게 고역이었던 이유는,
지역의 백성들에게 역을 빼주겠다고 강요하여 돈을 받아내고 서원의 제사 비용을 부담시켰으며, 할당된 비용을 내지 못한 백성들을 함부로 붙잡아서 폭행하거나 고문하는 등 만행이 심했다. 당시 이 일대에 "원님 위에 감사, 감사 위에 참판, 참판 위에 판서, 판서 위에 삼상(삼정승), 삼상 위에 승지, 승지 위에 임금, 임금 위에 만동묘지기~"라는 노래가 퍼졌을 정도였으니 말 다한 셈이다.
심지어 젊은 시절 흥선군이 이곳을 참배하려다가 만동묘지기(혹은 지역 유생)에게 얻어 맞는 등 고초를 당했다는 야사도 있다.
옛날 집권하기전 남루한 차림의 흥선군이 하인들의 부축을 받으며, 만동묘의 계단을 올라가자 위에 있었던 만동묘지기가 달려와 흥선군을 발로 걷어차서 계단 아래로 떨어뜨렸다.
그러면서 하는말이 "만동묘는 대명황제를 모신 곳이다. 지금의 임금이 행차하여도 부액(부축)하지 못하거늘 누가 감히 황제폐하 앞에서 부액할 수 있는가!"라고 일갈했다.
그러나 명나라가 사라진지 수백년이 흘렀고 청나라마저 쇠락의 길을 걷고 있었는데, 현실성이라고는 전혀 없는 말을 들은 흥선군은 기가 찼다.
흥선군은 화가 났지만 하인을 시켜 만동묘의 사제인 변장의라는 사람에게 자신이 봉변당했음을 알리고 그 묘지기를 처벌해달라고 하였다.
그런데 변장의라는 사람이 하는 말이 "묘지기의 행위가 과하긴 하지만, 당연한 처사라 죄를 논하기는 어렵습니다."라고 답했다.
이 일로 격노한 흥선군은 만동묘를 서원 철폐의 첫 순위로 철폐해 버린다.
결국 1865년(고종 2년) 흥선대원군이 서원 철폐 당시 만동묘를 철폐하고, 대보단으로 신주와 편액을 옮겼다가, 1873년(고종 10년) 재차 부활했으나, 고종은 만동묘만 복구해주곤 나머지 서원의 복구 요구는 무시해버렸다.
그나마 만동묘 복구도 제사를 국가가 주관하게 하여, 예전과 달리 만동묘 좨주들에게 권력을 주지 않았다. 이후 1907년에는 의병을 토벌하기 위하여 일본군이 환장암과 운한각을 불태웠으며, 이듬해에는 만동묘를 폐철하는 동시에 만동묘에 소속된 재산을 국가와 지방 관청에 귀속시켰다.
이후 일제시대 1937년까지 지방 유림들이 일본 몰래 제사를 지냈으나, 발각되어 1940년에 완전히 제사의 맥이 끊겼고 일본은 1942년엔 명나라에 대한 보은 명목으로 세워진 만동묘정비의 글자를 모조리 쪼아 없애고 만동묘 건물을 불태웠으며 비석은 묻어 버렸다.
이 비석은 1983년 홍수로 인해 다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만, 당시 일본인들이 글자를 모두 쪼아 없애버렸기에 해석은 불가능하다고 한다.
현재의 만동묘와 화양 서원은 2001년부터 2004년까지 만동묘와 승삼문, 송자사 등 일부 건물을 복원했고, 남은 건물들도 복원하려 노력하고 있지만 친중화적이다하여 복원에 대한 비난도 있어서 복원 가능성은 별로 없는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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