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조선시대의 재미있는 이야기 5선
1. 조선 시대 인생 역전
1728년(영조 4), 영조에 대항하여 이인좌가 청주성에서 반란을 일으켰는데, 이인좌의 난은 사전에 호남 · 영남 · 호서(충청) · 관서(평안)에서 거병하기로 계획되었을 만큼, 조선 후기 나름 큰 규모의 반란이었다.
그래서 영조는 중앙군 7천 명을 동원할 정도였으니, 영조가 얼마나 이 반란을 진압하고자 열의를 보였는지 알 수 있다. 그러나 전황이 불리해지고, 관군과 맞붙는 즉시 이인좌의 군대가 패주하자, 결국 이인좌는 도주한다.
산골짜기에 매복하고 있었던 신길만이라는 죽산 농민이 이인좌를 붙잡아 관군에게 신고하였고, 이로 인해 신길만에게 은 1천 냥이라는 어마어마한 상금이 내려졌고, 게다가 2품의 관직이 제수되었으며, 심지어 영조가 신길만을 직접 만나는 영광의 자리까지 마련할 정도였다.
조선 후기 한양의 물가 기준으로, 은 1냥은 4~5냥의 가치였는데, 1721년 1품 관료의 연봉은 292냥이다.
조선 시대 5인 가족이 최소한 생계를 유지할려면 1년 동안 50냥이 필요한데, 은 1천 냥(4000~5000냥)은 조선 시대 5인 가족이 최소 80년 동안 먹고 살 수 있는 양이다.
2. 조선 시대 부루마블
조선 시대 부루 마블인 승경도 놀이는, 말판 위에서 말을 움직여 누가 최고 관직에 오르는 지를 겨루는 놀이이다. 말판에는 관직의 이름이 빽빽이 적혀 있고, 귀퉁이에는 놀이 방법이 기록이 되어 있다.
승경도의 가장 큰 특징은, 출발점에서 이동하는 길과 목적지가 각각 서로 다르다는 점이다.
우선 본격적인 시작에 앞서, 참가자는 윤목을 2번 굴려 자기가 어떤 말을 사용할 것인지 결정한다.
그리하여 첫 번째 굴린 수에 따라 문과와 무과, 벼슬하지 못한 선비(은일과 남행), 그리고 군졸(병사)이 결정된다.
그리고 두 번째 굴린 수에 따라 작은 구분이 생기는데, 문과와 무과의 경우는 과거의 종류에 따라, 군졸(병사)의 경우는 의무에 의한 것인지, 직업에 의한 것인지 구분한다.
그리하여 경기가 시작되면, 차례대로 윤목을 굴려 점차 올라가는데, 때에 따라서 좌천되거나 낙향, 귀향가는 경우도 있고, 특별한 지위에 오르면 상대방의 말을 제한하거나 상대방이 나온 수를 자신이 취할 수 있다.
한편 승정원의 관직을 얻으면, 이후 1턴 동안 모든 참여자들이 굴려서 나온 수만큼 앞으로 나아가기도(은대법) 한다. 이러한 승경도 놀이는 조선 태종 시대의 명재상이었던 하륜이 처음으로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그 유래가 어떻게 되었든, 당시 과거를 통해 관직 생활을 하는 것이 유일한 출세로 생각되던 조선 시대에, 조선 시대 아이들은 이 종이판 위에서 영의정도 되보고, 도원수도 될 수 있었으며, 물론 운이 안 좋으면 사약을 받거나 좌천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놀이를 통해 관직 생활의 꿈도 꿔보고 했던 것 같다.
이순신 장군도 진영에서 큰 비가 내리는 심심한 날에, 지휘관들을 모아 이 놀이를 즐겼다고 했다.
3. 조선 시대 동방 불패
홍콩 영화의 명작이자, 무협지 좋아하는 사람들은 다 알고 있을 법한 동방 불패 영화는 명나라 시대가 배경인데, 여기서 동방 불패가 바늘을 던지며 싸우는 모습이 압권이다.
때는 임진왜란.
명나라 장수 마귀가 충청도 직산 소사(素沙) 지역으로 진군해 왜군과 대치하고 있었다. 이때 명군과 왜군의 양군이 서로 포진하고 있었는데, 한 왜병이 검을 휘두르며 기세등등하게 돌진하였다.
그리하여 긴 창을 쥔 중국 절강 출신의 병사가 대적했으나, 검에 찔려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이를 지켜보던 중국 병사의 아들 4명이 분을 이기지 못하고 나가 싸웠으나, 연달아 왜군의 검에 모두 죽고 말았다.
검을 잡은 왜병 한놈이 살기에 찬 모습으로 앞으로 다가오자 조명 연합군은 모두 두려움에 떨었고, 마귀가 저 왜병을 잡으면 상금을 내리겠노라고 하였지만, 아무도 나서는 자가 없었다.
이때 무명옷을 입은 조선 병사가 소매를 걷어붙이고 나와서 마귀에게 절을 하고는 말하기를,
"소인이 맨손으로 그 왜병을 잡겠습니다."
당연히 조선군과 명나라군은 모두 미친 짓이라고 비웃었지만, 마귀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으니 일단 나가서 싸우라고 했다.
근데 그 무명옷 입은 조선 병사가 양손에 아무런 무기도 없이, 그 왜병에게 나아가 맨손으로 춤을 추기만 하니, 왜병도 대수롭지 않게 여겨 휘두르던 검을 멈추고 웃곤 하였는데,
그런데 갑자기 왜병이 털썩 쓰러졌고, 무명옷 입은 병사는 쓰러진 왜병의 검을 얼른 주워 왜병의 목을 베어버렸다.
도대체 어찌된 것인가?
명나라 장수 마귀가 왜병을 잡은 무명옷 입은 조선 병사에게 이르기를,
"그대 조선 병사는 검술을 아느냐?"
무명옷 입은 조선 병사가 말하기를,
"모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왜병의 목을 벨 수 있었느냐?"
"저는 어려서 앉은뱅이가 되어 혼자 방에만 있다 보니, 마음을 붙일 곳이 없어 바늘 한 쌍을 창문에 던지는 연습을 하면서 날마다 동이 틀 무렵에 시작하여 날이 어두워져서야 그만두었습니다. 처음에는 던지는 족족 바늘이 빗나가 떨어지더니, 오랫동안 연습하자 바늘이 그대로 구멍에 들어가 8~9척 안의 거리는 던지는 대로 명중하였습니다. 3년이 지나자 먼 데 있는 것이 가깝게 보이고, 가는 구멍이 크게 보여, 바늘을 던졌다 하면 손가락이 마음과 일치되어 백발백중하게 되었습니다. 이리하여 기술이 완성되었으나 써먹을 데가 없었는데, 전쟁이 일어나면서 마침 저의 앉은뱅이 다리도 퍼져 오늘에야 적에게 쓸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맨손으로 미친 듯이 춤을 추니, 왜병은 저를 비웃고 무시하여 검으로 베지 않았습니다. 저의 바늘이 자신의 눈알을 노릴 줄을 어찌 알았겠습니까?"
마귀가 이 조선 병사의 말을 듣고 왜병의 머리를 살펴보니, 과연 왜병의 두 눈알에는 각각 바늘이 한 치쯤 박혀 있었다.
4. 조선 시대 호랑이 빙의
1671년(현종 12), 전라도 태인현에 살던 이규라는 자가 갑자기 미쳐버리는 병을 앓아, 스스로 호랑이 귀신이라고 하며 지 아들을 물어 죽이는 사건이 발생한다.
5. 조선 시대 순수한 벨튀
조선 시대 궁궐에는 종이 있는데, 이 종은 저녁과 새벽의 동작과 휴식 등 시간을 알리며, 도성인 한양성의 문을 열고 닫는 때를 나타내는 것이다.
즉 조선 시대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것으로서, 전쟁의 위급함을 알려주는 봉수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었다.
이 종을 멋대로 울리면 참형에 처해지는 경우도 있었는데, 1783년(정조 7)에 결국 일이 터진다.
종이 울릴 시간도 안됐는데, 갑자기 난데없이 궁궐 정체에 종소리가 울려퍼진 것이다.
실록의 묘사에 의하면, 난데없는 종소리에 길거리의 한양 사람들이 모두 해괴하게 여기며 놀라게 되었고, 즉각 군사를 풀어 종을 울린 자를 체포하게 했다고 한다.
그래서 체포했는데, 종을 울린 자는 호서(충청도)의 윤광류라는 사람이었고, 종을 올린 연유를 자세히 조사했는데, 윤광류가 말하기를,
"임금께 참외를 헌상할려고 하였습니다."
그 이유가 하도 어이가 없어, 정조는 단순히 정신나간 자라 판단하고 윤광류의 고장인 충청도로 쫓아보낸다.
윤광류 본인은 순수한 뜻으로 종을 울린 것일 수도 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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