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2차 세계대전 당시 전설적인 일본의 불침함 유키카제

유키카제는 카게로급 구축함으로 1939년 진수, 개전초기부터 활약을 시작한 구축함이다.

우선 유키카제는 전쟁전 취역한 82척의 구축함 중 유일하게 살아남았고, 전쟁도중 취역한 20여척의 구축함까지 합하면, 전후 살아남아서 기동 가능한 3척중 하나였다.

이중 어뢰 발사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며 전투 가능한건 유키카제 1대 뿐이였다. 

유키카제는 16번의 각종 해전에 참가했는데,

파란 동그라미가 루손

우선 개전과 동시에 필리핀 침공 작전에 참가, 루손과 레가스피 공략 참가, 라몬 섬상륙 작전에 참가, P40 키티호크의 기총 소사를 받아 중유탱크가 손상됬으나 6명 경상으로 끝났으며, 셀레베스, 아카본, 티모르 공략 참가하며 이리저리 끌려다니기 시작한다.

그리고 바로 다음 인도네시아 수라바야에서 아군과 함께 미순양함2척과 구축함1척음 격침시키며 첫 전과를 올렸다.

그리고, 인도네시아 자바에서 잠수함 한 척을 격파하고, 그 유명한 미드웨이 해전에 호위함으로도 참가하였다.

(이 전투로 일본은 주력 항공모함 4척을 잃고, 해상 주도권은 미해군으로 넘어간다.)

또한 과달카날섬을 차지하기 위한 솔로몬 해전에 참가하여 아군과 함께 순양함 2척, 구축함 4척을 격침시켰으나 끝내 과달카날은 뺏기게되고, 그 후 과달카날 철수 작전에 3차례 참가하여 모두 11,000여 명의 일본군을 구출하였는데, 같은 구축함 마키구모, 마키카제, 마이카제, 카와카제, 쿠로시오, 이소카제는 대파, 손상, 침몰했지만 유키카제는 멀쩡하게 살아남았다.

그뒤 해상대학살로 유명한 비스마르크 해전에 수송함 호위로 참가한다.

연합군의 PT정

연합군의 대규모 항공공격으로 선박 대부분이 침몰하고, 살아남은채로 바다에 표류하는 1,000여명의 전투불능 병사까지 죽여 논란이 되었던 전투이다.

하지만, 이 전투에서 지키라는 수송함은 한대도 못지키고 모두 침몰하였으며, 당시 8척의 수송함과 8척의 구축함 중 살아남은 것은 4대 뿐이였으며, 유키카제는 배가 침몰하여 해상에 표류하는 병력까지 구하면서 도주하였다.

그후 콜롬방가라 해전에서 유키카제를 비롯한 구축함의 활약으로 구축함 1척 격침, 구축함 2척 소파,순양함 3척 소파시키며 승리하였고, 당시 유키카제가 장비하고있던 전파역탐지기가 전투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한다.

야간폭격당시 미군의 작전지도

그 후, 콜롬방가라섬 물자운송도중 미군의 야간폭격으로 구축함 유우구레와 키요나미가 침몰하고 중순양함 쿠마노는 대파되었지만 유키카제는 멀쩡했다.

그후 대파된 쿠마노를 호위하며 본토 귀환 후 다시 호위임무로 싱가폴로 이동한다.

그 후 마리아나 해전에 참가하려 했으나 기관문제로 본국으로가는 유조선단의 호위임무를 맡았고 이과정에서 미잠수함의 공격으로 구축함 아마츠카체는 침몰했으나 무사귀환 하였다.

이후 레이테만 해전(필리핀 지역을 차지하기 위한 대규모 전투)에 참가하였는데,

침몰하는 항모 즈이카쿠 갑판위에서 최후의 만세(반자이)를 외치는 패배한 일본군 

레이테만 해전에서 일본은 주력전함 무사시를 비롯함 함선 대부분을 잃으며(당시 함대를 둘로 나눴는데 함대간 무전연락등의 기본적인것도 안되서 대패.) 완패하였으나 그 유명한 야마토함 등의 함선과 겨우 살아 돌아온다.

그후 요코스카에서 항공모함 시나노의 호위를 맡았는데,

비운의 항모 시나노

 당시 시나노는 처녀항해였는데 시나노 레이더에 미확인물제가 잡히자

시나노 : 야 저거 뭐야, 수상한데 확인해봐!

유키카제 : 흠 별거아닌거 같아, 어선인거 같은데?

유키카제의 응답으로 시나노는 항해를 계속하였으나 미확인물체는 미해군 잠수함 아처피쉬로 시나노를 추척하여 침몰시킨다.

침몰전 야마토함

그 후 야마토함의 특공작전에 참가하여, 미군기의 어뢰공격을 받으나 함저로 어뢰가 통과하고, 식료품창고에 로켓탄이 직격했으나 불발탄으로 살아남았으며, 이후 마이즈루 항으로 회항하였으나 마이즈루 공습으로 다시 도주한다.

아군 구축함들은 박살이 나는 와중에 여유롭게 탈출하고 미야즈 만의 항으로 도주하였으나 미군의 의한 기뢰봉쇄와 공중폭격으로 로켓탄이 직격하였으나 역시 불발로 생존한다.

같은 구축함 하츠시오는 여기서 기뢰로 인해 침몰한다.

그 후 1945년 8월 15일 종전이후,

마이즈루 회항도중 기뢰에 접촉하였으나 접촉 직후 바로 폭발하지 않아 생존하고, 바로 뒤따라오던 하쓰키리가 기뢰에 의해 침몰되었다.

그후 전시 배상함으로 지정되어 중국에 인도된뒤 중국 국공내전당시 대만으로 이동 1970년대까지 "탄얀"이라는 함명으로 활동후 태풍으로 인한 좌초로 해체되어 최후를 맞이했다.

또 종전까지 유키카제 전체 승조원중 죽은 승조원은 불과 3명에 불과했다고 한다.

그리고 전쟁당시 온갖 전투에도 무사히 살아남은 유키카제는 같은 소속함선들이 모두 침몰되거나 대파되어 소속을 여러번 바꾸었는데 당시 해군들 사이에선 유키카제가 동료함을 제물로 바쳐 살아남는다는 소문이 돌았기 때문에 항상 환영받지 못했다고 한다.

반응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