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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삼국지에서 일어난 전투하면, 유명한 적벽대전을 비롯한 관도대전, 이릉대전 등 삼국지 3대 대전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번성공방전 역시 3대 대전 못지않게 천하에 큰 파장을 불러온 전투로, 적벽대전과 같이 유비, 조조, 손권 삼국지 모든 세력과 수많은 명장들이 참여함은 물론, 뛰어난 전술전략과 상대방의 허를 찌르는 심리전, 치밀한 외교모락 등 국가가 전쟁할 때 사용되는 모든 수단이 사용됨에 따라 엄청난 스케일을 자랑한다.

한치앞도 예상할 수 없는 상황들, 빠른 전개, 그리고 무엇보다 이 모든 것들이 그 유명한 '관우'로부터 초래되었다는 점에서도 굉장히 흥미로운 전투이다.

본 이야기는 연의가 아닌, 정사를 기준으로 서술하도록 하겠다.

1. 형주의 중요성

번성공방전의 무대가 되는 곳은 '형주'로 삼국지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영토인만큼 그 중요성은 가히 으뜸이다.

황건적의 난이 일어나기 전의 후한 말 인구수

형주는 익주에 이어 2번째로 많은 인구 보유를 보유하며, 량주(서량)가 아닌 양주가 손권의 영토이며, 지도상에서는 남쪽에 위치한 것이 양주이다.

지도에서 보듯 형주는 영토 중앙에 위치해있어 어떤 영토로도 손쉽게 진출할 수 있는 교통의 요지이면서도 풍부한 인구와 그에 따른 엄청난 생산력, 그리고 북쪽으로는 강을 끼고 있어 수비에도 아주 적합한 조건을 갖고 있다.

(추후 몽골이 수년동안 점령하지 못한 남송의 양양성도 이곳 형주에 속해있음.)

그렇기에 제갈량의 천하통일 전략 역시 북쪽이 혼란에 처할 때, 그 틈을 타 익주, 형주에서 북으로 양방향 진격하는 것이 핵심이었고, 오나라의 '노숙' 역시도 형주를 먹어 세력을 키운 후 북쪽으로 진격하는 것을 패업의 기초로 삼았다. 

또한 조조 측에서도 이 형주를 먹으면 남쪽의 세력을 서로 갈라놓을 수 있으니 이 형주는 어느 세력이든 천하통일을 위해 꼭 먹어야하는 요지였다.

 

2. 유비와 손권의 갈등

원소세력 병합 후 군벌 세력

최강의 라이벌 원소를 제압함으로서 중원을 장악하여 어떤 군벌보다 압도적 세력을 보유하게된 조조, 그리고 당시 유비는 유표에게 의탁하고 있던 신세였다.

게다가 형주의 주인이던 유표가 죽고 그 뒤를 이은 아들 '유종'이 조조가 두려워 형주 전체를 바쳐가며 항복하니 천하에 그 누구도 조조를 막을자가 없었다. 

조조의 천하통일이 코앞으로 다가온 상황이었다. 그러나 마지막까지도 자신에게 무릎을 꿇지 않는 두 군벌이 있었으니 바로 '유비'와 '손권'이었다.

기세를 탄 조조가 천하대란의 마침표를 찍기위해 마침내 남쪽으로 칼을 돌리니 유비와 손권은 동맹을 맺어 필사적으로 저항했고 끝내 형주에서 벌어진 '적벽대전'에서 조조를 크게 격파하니 천하의 향방은 다시 물음표가 되었다.  

다행히 한숨 돌린 유비와 손권이였으나 이번에는 그 둘이 서로 적벽대전에서의 공이 더 크네 마네하며 주인없는 땅이 되버린 형주의 차지를 두고 다툼이 일어난다.

다툼 초기에 손권은 아직 북쪽에 조조도 건재하고 자신의 영지도 관리하기 힘들기에, 형주에서 인심이 높은 유비에게 우선적으로 자신에게 할당된 형주 영토까지 관할하게하여 마찰이 그다지 크지 않았어.

이후 유비가 서쪽으로 진출하여 익주를 얻고 손권 자신도 세력이 어느정도 안정화가되어 유비에게  영토를 다시 돌려달라고 하지만, 유비가 북쪽 양주를 얻으면 그때 돌려주겠다고 하자 손권은 유비가 형주를 돌려줄 생각이 없다고 판단, 바로 군대를 이끌고 형주를 침범한다.

그러나 이전의 익주 정벌로 함께 형주를 지키던 제갈량, 장비, 조자룡 등을 유비가 모두 데려가고, 관우 혼자만이 남아 손권의 부대와 대치한 상황에서 유비 역시 이에 맞서려고 형주로 진격하나 마침 큰 사건이 터지니,

바로 조조가 익주를 침공한 것이다.

영토분할 협정 후 형주 패권도

조조는 형주를 잃었으나 북형주는 지켜냈고 유비는 초록색, 손권은 빨간색 영역으로 분할한다.

조조라는 거대한 불을 끄기위해 유비는 손권과 형주에서의 패권다툼은 잠시 접어두고, 급하게 양측의 형주 영토를 확실히하는 협정을 맺음으로서 다시 동맹을 맺고 조조와 맞서려 다시 익주로 향한다.

 

3. 유비, 한중왕에 등극하다

이전에 조조를 피해 도망가는 유비, 창천항로 中

손권과 무사히 동맹을 재차 맺음으로서 위기를 한 고비 넘긴 유비였으나, 손권과는 비교할 수 없는 더욱 큰 위기가 찾아왔으니, 그것은 바로 이전에 자신을 단순 패퇴시킨 정도가 아닌, 자신의 세력을 수차례 씩이나 뿌리째 뽑아버린 조조의 습격이었다.

그러나 유비 역시 옛날의 유비가 아니였다.

이제는 형주(일부)와 익주란 큰 세력을 손에 넣고 기라성같은 명장이며 모사들을 발 아래 둔 거대한 군웅이였으니 유비는 조조와의 싸움을 앞두고 자신감을 내비치며 이르길,

"조조가 온다해도 어쩔 수 없을 것이다. 내가 반드시 한중을 차지할 것이다!"

그렇게 익주 북쪽에 위치한 '한중' 지역의 싸움에서 끝내 조조를 격퇴시키니 마침내 유비가 익주를 완전히 차지하며 삼국의 기틀을 마련한다.

뼈아픈 패배를 당한 조조, 그러나 전쟁의 패배보다 더 뼈아픈 소식을 들으니 바로 유비가 '한중왕'으로 등극했음을 전국에 선포한 것이였다.

한중은 한나라 개국황제 '유방'의 패업의 출발지, 한중왕은 유방이 패업을 시작할때의 왕명으로 즉, 유비는 자신과 유방을 동일시하는 정치적 제스처를 취하여 유방이 악당 항우를 물리쳤듯 자신도 항우같은 악당 조조를 물리치겠다는 프레임을 씌운 것이다.

실제로 한나라가 아무리 통치력을 잃고 황제는 허수아비에 불과한 껍데기 국가라고해도 400년간 지속된 한나라에 대한 천하만민의 애정은 실로 엄청났다.

조조의 위왕 즉위를 반대하는 순욱. 미완의 책사 사마의 中

난세 평정에 큰 공을 세우며 중원을 제패한 조조조차 한나라 승상의 위치에서 위나라를 봉국받아 '위왕'에 오르려했으나 반역의 마음을 품었다며 많은 반대에 부딪혔고, 심지어 조조가 멸망할 위기에 처할때마다 기가막힌 계책으로 독보적인 공을 세운 최측근 '순욱'도 조조가 왕에 오르는 것을 반대하다 토사구팽 당해 죽었으며 전국에서는 조조가 황제를 능멸하는 간신이라하여 반란이 끊이지가 않았다.

(순욱을 내칠때 빈 반합을 보내어 그 뜻을 알렸다한다. 빈 반합 = 이제 넌 필요없다.)  

이런 상황에서 한나라의 황실인 유비가 조조까지 격파하며 왕을 칭하고 한나라 부흥의 뜻을 알리니 천하는 다시 들끓기 시작한다.

 

4. 관우의 진격

적벽대전에서의 승리, 익주 점령, 한중왕 등극 등 연승가도를 달리며 유비가 최고의 기세를 달리고 있는데 반해, 조조는 적벽대전부터 연전연패하며 최악의 상황에 빠져있었다.

그리고 '후음'이란 자가 한나라 수도인 허도 지근거리에 있는 완성에서 관우와 연계하여 반란을 시도하나 진압되는 등 조조 세력의 불안한 정국이 계속되는 가운데 홀로 형주를 지키던 관우가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한다.

북형주에 위치한 양양, 번성. 그 오른쪽은 수도인 허창(허도) 위치
강릉은 관우의 본진

조조 역시 이전부터 형주의 관우를 공격하기 위해 자신의 친척이자 명장인 조인을 '번성'에 보냈으나, 오히려 관우가 먼저 양양과 번성에 선제공격을 가하니 기세가 가히 대단했다.

실로 양양성과 번성은 서로가 사이에 강을 끼고 있어 어느 한 쪽이 포위를 당해도 다른 한 쪽에서 선박을 통해 보급이 가능하고, 설령 양쪽이 포위되더라도 강을 통해 서로가 구원 가능한 난공불락의 요새였다.

(앞서 언급했듯, 이로부터 천 년 후, 몽골군 역시 이 양양성을 함락시키기 위해 엄청 애먹는다.)

그러나 관우는 육군으로 먼저 양양을 포위 후 곧 바로 뛰어난 수군 운용 능력을 이용해 강마저 장악하며 단숨에 조인이 있는 번성까지 포위해버린다.(관우는 삼국지에서 드물게 야전은 물론 수군 운용역시 뛰어났다.)

이 두개 성의 함락은 단순 영토 상실의 의미가 아닌 바로 황제가 있는 곳이자 수도인 허도를 직접 공격당할 수도 있다는 뜻으로 안그래도 땅만 크지 한없이 불안한 세력을 가진 조조 자신에게는 큰 화급이였다.

이처럼 크나큰 위기 상황 속에서 조조는 자신과 황건적의 난부터 30년을 함께하며 무수한 공을 세운 최고의 장수 '우금'을 대장으로 삼아 무려 7군에 해당하는 최정예 병력을 딸려 지원을 보낸다.

(1군의 편제는 12,500명으로 7군은 약 9만으로 추산하나, 실제로는 4만명 이상으로 추정.)

성이 고립된 불리한 상황이지만 번성에서의 전투는 치열했으니, 단연 조인의 부장 '방덕'의 활약이 돋보였다.

방덕은 마초의 부장 출신이자 마초군에서도 용맹이 으뜸가는 장수로 마초가 유비에게 떠날 때 방덕은 조조에게 항복했고 조조 역시 익히 그의 명성을 들었기에 등용했었다.

번성 포위 당시에도 그 용맹을 여실히 드러내니, 항상 백마를 타고다녀 '백마장수'라는 별명으로 관우군이 크게 두려워했고 직접 관우와 교전해 관우의 이마(투구)에 화살을 맞추면서까지 불리한 상황에서도 미친듯이 활약한다.

그러나 가족이 유비의 한중에 살고있어 관우와 싸우기 전 장수들로부터 의심을 받았으나 방덕이 이르길,

"내가 국가의 은혜를 입었는데 어찌 사력을 다하지 않을 수 있겠소. 올해 내가 관우를 죽이지 못하면 내가 관우한테 죽도록 하겠소."

그렇게 필사의 각오를 한 방덕의 활약으로 번성은 우금의 지원군이 올때까지 꿋꿋이 버텨낼 수 있었고 드디어 지원군이 도착하니 조인은 방덕을 우금에게 합류시킨다.

조인은 성을 지켜냈고, 이제는 관우가 오히려 앞뒤에 적을 맞이하게 됨에 따라 전쟁의 주도권은 조조군에게 넘어간 상황이었다.

필사의 각오를 한 방덕, 그러나 이번 상대 역시 마취 없이 팔을 갈라 뼈에 남아있는 화살의 독을 긁게한 마취없이 수술을 진행한 사나이 관우였으니...(연의에서는 바둑으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수술하면서 고기를 구어먹고 술을 마셨다.)

 

5. 관우, 천지를 진동시키다.

한편 전투가 계속되는 가운데 조조의 본진에서 '온회'란자가 예측하며 이르길,

"현재 사방에 적이있지만 모두 두려워할 상대들은 아닙니다. 그러나 오직 걱정되는 것은 형주 쪽의 군사들에게 변고가 있으니 지금 강물이 불어나고있는데 조인은 적지 깊숙히 들어가 있으면서도 이에 대해 방비하고 있지 않습니다. 관우는 용맹하여 전쟁을 잘하므로 승기를 잡아 진군하면 반드시 큰 걱정거리가 될 것입니다."

그렇다.

바로 전투 중 엄청난 장마가 들이닥쳤고 이 장마는 무려 10여 일동안 계속되었된 것이다.

계속된 장마로 결국 한수가 크게 범람하여 유례없는 대홍수가 일어나 성은 물론 그 일대가 몽땅 물바다가 되었다.

성은 물에 잠겨 온전한 곳이 없음은 물론, 홍수로 붕괴가 지속되었으며 우금과 방덕도 홍수를 피해 높은 곳을 찾아 간신히 목숨만 부지할 뿐 회피할 곳이 없었으나,

이에 반해 관우는 미리 병사들을 큰 배에 태워 대비를 했고, 물바다로 변한 번성 일대를 누비며 7군을 향해 맹공을 퍼부으니 우금은 아무것도 못한채 3만의 병사를들어 항복한다.

그러나 희망의 등불이 꺼져가는 상황 속에서도 방덕만은 꿋꿋이 활을 쏘며 저항하니 맞추지 못한자가 없었고 오히려 항복의사를 밝힌 장군 2명을 잡아 죽이면서까지 용기를 잃지 않으며 이르길, 

"내가 듣기로 훌륭한 장수는 죽음을 두려워하며 구차하게 항복하지 않고, 열사는 절개를 훼손하며 살길을 구하지 않는다 하였다. 오늘은 내가 죽는 날이다!"  

방덕의 분투로 전투는 새벽부터 낮까지 계속되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관우의 공격은 더욱 거세져만가는 상황 속에서 화살이 바닥나니 전투는 급기야 백병전에 이르렀다.

하지만 물이 점점 높아지자 항복하는 자들은 늘어갔고 도저히 싸울 수 없다고 판단한 방덕은 작은 배를 타 번성으로 회군하려 했으나 거센 홍수에 배가 뒤집히니 결국 관우에게 붙잡히고 만다.

관우가 이르길,

"그대의 형은 한중에 있고 내가 그대를 장수로 삼고자 하는데 어째서 항복하지 않으시오?"

"위왕은 갑옷 입은 병사가 100만에 위세를 천하에 떨치고 있다. 그에 반해 유비는 그저 평범한 재주에 지나지 않는데 어찌 대적할 수 있겠는가! 나는 국가의 귀신이 될지언정 도적의 장수가 되지 않을 것이다."

결국 끝까지 방덕이 항복할 뜻이 없다는걸 알자 관우는 방덕의 목을 베어버린다.

이 소식을 들은 조조 역시 한탄하니,

"내가 우금을 안지 30년인데 위태로움에 임하여 도리어 방덕만 못하다는 것을 어째서 이제야 알았는가!"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였으니, 관우는 만명을 상대할 수 있다는 '만인지적'의 평가를 받는 장수로서 전투가 아닌 전쟁을 할 줄 아는 장수였다.

단숨에 형주관리들의 항복을 받아내고, 조조가 패닉에 빠진틈을 타 유비로부터 받은 권한을 통해 수도인 허도 근처에 기거하는 조조 반대파들에게 직접 벼슬까지 내리며 중원 전체를 흔들 계획을 하니 관우의 기세는 실로 엄청났다.

역사서에서 이 때의 상황을 말 그대로 "관우의 위세가 중국을 진동시켰다"라고 표현했다. 

 

6. 조조, 천도를 논하다.

최정예 7군의 수몰은 조조에게 크나큰 충격이었다.

여기서 조금만 더 빈틈을 보이면 서쪽에서 숨을 죽이고 있는 유비와 동쪽에서 힘을 기르고 있는 손권이 언제든지 치고 나올 수 있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내부 반란까지 터지면 어떻게 될지 감히 예상할 수 없었으니 최악일 경우 조조가 쌓아놓은 모든게 무너질 수 있는 상황이였다.

이런 상황에서 급기야 조조는 황제가 있는 수도를 북쪽으로 옮기는 논의까지 하게된다.

물에 잠긴 번성

한편, 조조의 지원군을 싸그리 몰살시킨 관우는 무서운 기세를 몰아 배로 겹겹이 성을 포위하고 화살을 퍼부으니, 번성의 운명은 오늘 내일 하고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번성의 성주 조인 역시 수성전의 달인으로 적벽대전 승리의 기세를 타고 무섭게 치고올라오는 삼국지 최고의 지장(知將) '주유'조차 그를 쉽게 뚫을 수 없었다.

그러나 포위는 두터워지고 안과 밖이 끊겼으며 양식이 바닥나는 상황 속 부하가 이르길,

"지금의 위급은 힘으로 버틸 수 있는게 아닙니다. 관우의 포위가 아직 합쳐지지 않았으니, 가벼운 배를 타고 달아난다면 성은 잃어도 몸은 보전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또 한명의 수성전 스페셜리스트 '만총'이 반대한면 나서길,

"지금 관우가 대승을 거두어 허도 일대의 민심이 뒤숭숭함에도 감히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으니 이는 우리 군이 배후를 노릴까 두려워서입니다. 지금 만약 달아난다면 영토를 영영 잃게 될 것인바 장군은 마땅히 버티셔아 합니다."

이에 조인은 군사들을 격려하며 필사적임을 보여주니, 모두가 두 마음을 먹지 않고 꿋꿋이 수성 모드로 들어가게 된다.

모든게 완벽했던 관우의 전투, 대업이 드디어 눈 앞에 보이는 상황이었다.

유비의 한중왕 등극부터 관우의 대승까지, 인내의 쓰디쓴 맛을 보며 수십년간 꿈꿔왔던 삼형제의 천하제패의 꿈을 진짜 이룰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관우의 진짜 싸움은 이제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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