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천하를 흔들어버린 관우의 위세, 번성공방전(2편 完)
1. 오나라와의 밀약
단번에 번성과, 양양성을 포위한 관우의 기세는 대단했다.
우금이 이끄는 정예 7군의 대패, 번성의 함락 위기, 내부 반란을 비롯한 유비와 손권의 공격 위기 속에서 조조는 수도를 옮기는 방안까지 생각하며 크게 놀란 상황이었다.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사마의'가 전황을 단숨에 바꿔버릴 계책을 내니,
"우금이 패한 것은 천재지변 때문이지, 싸우다 진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천도한다면 적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으로 민심이 동요할 것인바 손권, 유비가 겉으로는 친밀하나 안으로는 소원하니 관우가 뜻을 이루는 것을 손권은 바라지 않을 것입니다. 응당 손권에게 관우의 뒤를 끊게하면 번성의 포위는 자동으로 풀릴 것입니다."
마침, 손권 측의 유비에 대한 여론도 급격히 바뀌기 시작했으니 바로 '유비를 이용하여 강력한 조조를 막아야 한다.'고 주장한 대도독 '노숙'이 죽고 강경파 '여몽'이 그 뒤를 이은 것이었다.
상대방의 학식이나 재주가 몰라보게 좋아졌음을 뜻하는 사자성어 '괄목상대'의 주인공 여몽은 총명했으며 전투센스가 상당히 뛰어났다.
여몽은 관우와 형주를 맞대고 있을때부터 관우가 강성하고 촉나라의 형주 지형이 상류에 위치했다하여 관우의 침공을 늘 우려했으므로 노숙과는 다른 의견을 손권에게 제시한다.
"서주의 병사가 적으니 우리가 차지할 수는 있습니다만, 서주는 지세가 험하지 않고 사방으로 뚫려있어 기병이 달리기 좋으니 우리가 서주를 얻는다해도 끝내 지키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차라리 관우를 도모하여 우리가 형주를 차지해 세력을 키우는게 낫습니다."
실제로 강과 바다를 접하고 있는 손권의 군대는 수전이 강한데 비해 육군이 약했고, 조조의 군대는 기병을 비롯한 육군이 강함에 여몽은 서주를 취해도 지키기 힘들다 생각했다.
이전부터 서주를 공격해 북으로 진출할 것을 생각했고 실제로도 그리했으나, '장료'의 미친 활약에 번번히 막히니 이에 손권도 여몽의 말을 옳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면서도 한때 유비에게 자신의 여동생을 시집보내면서까지 우호관계를 맺었으나, 사이가 나빠지자 여동생에게 유비의 아들 '유선'을 납치케하는 시도까지 하는 등 그 관계가 극악으로 치달았고, 재차 동맹을 맺은 후에도 관우에게 자신의 딸을 관우의 아들과 결혼시킬 것을 청했으니 관우는 오히려 화를내며 모욕을 하니 손권이 대노한 일이 있었다.
심지어 번성 공략때도 지원을 해주겠다 했으나 늦었다며 도리어 모욕당한 일도 있었고 말이다.
이런 여러가지 정황들로 그렇게 손권은 조조의 밀약에 응한다.
2. 여몽의 계략
평소부터 관우 토벌의 마음을 품었기에 여몽은 관우가 번성을 공격하기 전부터 관우를 방심시키고자 앞에서는 크게 대접하고 우호를 맺었으나 그런 여몽을 관우 역시 끝내 믿지 않았다.
그렇기에 번성 공격 후에도 뒤를 우려해 많은 수비병을 남겨두었고, 이는 관우 토벌에 큰 걸림돌이였으니 여몽은 한 가지 계책을 내길,
"관우가 번성을 토벌함에도 많은 수비병을 남겼는데 이는 저를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저 여몽은 항상 병이 있으니 병을 핑계 삼아 본거지로 돌아간다면 관우는 필시 수비병까지 모두 데려가 번성을 공격할 것입니다."
실제로 여몽은 대장군이란 이름에 안맞게 잔병치레가 심했으나 오히려 이를 계책으로 이용한 것이다. 하지만 여몽의 계략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병을 핑계삼아 돌아온 여몽이 손권에게 이르길,
"관우는 용맹해 그를 적대하는 것은 쉽지 않으며 이미 형주에 은혜와 신의를 대대적으로 시행하고 있습니다. 또한 담력과 기세가 성대하니 그를 도모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누가 그대를 대신할 수 있소?"
"육손은 사려깊으며 미래의 일을 살피고 생각하는 것에 능하니 대임을 맡길 수 있습니다. 그에 반해 아직 명성은 미약하니 관우가 필히 방심할 것입니다. 만약 그를 등용한다면 우리의 의도를 숨기면서도 유리한 형세를 틈타 관우를 무찌를 수 있습니다."
그렇게 '육손'이란 장수가 여몽을 대신하여 형주를 담당하러 간다.
하지만, 육손 역시 만만치 않은 자로 바로 관우에게 편지를 보내어 관우를 방심케 하니, 다음은 편지의 일부분이다.
"이전에 나는 당신이 적군의 동태를 관찰하고나서 일정한 법칙에 따라 군대를 지휘해 큰 성공을 거두는 것을 보았는데 당신의 공은 위대합니다. 적군이 패배한 것은 동맹에게 이로운 일이므로 나는 당신의 승리에 손뼉을 쳤고 함께 중원을 석권하는 대업을 이루어 조정(한나라)을 보좌하길 희망합니다. 최근 재능없는 이 사람이 임명을받아 형주로 오게되었는데 나는 당신의 풍채를 양모하여 좋은 대우와 가르침을 받기를 희망합니다."
관우도 평소 여몽이 자주 아프다는 것을 알았고 이 육손이란 새파란 장수가 자신에게 굉장히 우호적으로 나오니 자신에게 의탁하려는 마음이 있으면서도 방심하고 있다라고 생각해 결국 수비병까지 차출하여 번성을 공격한다.
관우의 후방을 완전히 비워버린 손권, 이제 남은 것은 동맹을 파기하고 관우를 공격할 명분 뿐이었다.
3. 짙어지는 먹구름
손권 쪽에서는 관우의 뒤를 칠 계획이 착착 진행중이였고, 번성 역시 관우의 공격을 힘든 상황에서도 꿋꿋이 버텨내고 있었다.
한편 우금과 더불어 뛰어난 장수로 손꼽히는 '서황' 역시 번성 지원 예비대로 편성됨에 따라 '완성'에 머물며 상황을 관망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그도 물바다 때문에 감히 지원을 할 수 없었으나 더 큰 문제가 있었으니, 바로 그의 군대가 신병으로 이루어진 부대였기에 하늘을 찌를듯한 기세의 관우군을 맞서기에는 쉽지 않았던 것이다.
그럼에도 번성이 계속 위태로워짐에 부하들이 서황에게 구원할 것을 청하나 '조엄'이란 자가 이르길,
"지금 적의 포위는 단단하고 수공 속에서 내리는 비가 거센 반면에, 우리 병사는 적고 번성과 멀리 떨어져있어 구원하기 쉽지 않습니다. 싸우기보다 군사를 접근만시켜 첩자를 보내어 구원병이 왔다는 것만 알려 그들이 용기를 얻게하는 편이 낫습니다. 응당 지원군은 열흘 안에 도착할 것이니 그때 공격하면 이길 수 있습니다."
그렇게 서황은 몰래 번성에 화살로 연락을 취해 소식을 전하니 번성의 군대가 크게 사기를 얻었고 서황은 조조의 지원군을 기다린다.
그러나 관우 역시 위태로운건 마찬가지였다.
본래 관우의 형주군은 형주 전체에서 나온 것이 아닌 형주 일부분에서 차출한 병사들이었고, 게다가 전선을 여러 개로 나눴기에 군사가 많지 않았다.
그렇기에 번성을 포위하자마자 '상용' 지역을 점거하고 있는 유비의 양아들 '유봉'과 '맹달'에게 원군을 지속적으로 요청했으나 매번 거절하니, 그 이유는 상용이 점거한지 얼마되지 않아 완전히 종속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실상은 유봉과 맹달의 지휘권 다툼으로 인한 내부분열로 문제였고, 그 다툼이 얼마나 심했냐면 서로가 군악대를 뺏으면서까지 싸울 정도였다.
번성과 양양의 포위는 여전히 튼튼했고, 관우는 전투를 함에 결코 패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새 상황은 점점 불리해지고 있었다.
4. 조조의 반격
한편, 밀약에 응한 손권의 화답이 조조에게 도착했다.
"저는 군대를 서쪽으로 보내 몰래 관우를 습격하려 합니다. '강릉'과 '공안'은 관우의 요충지로 이 두 곳을 잃으면 반드시 관우는 달아날 것이고 번성의 포위는 절로 풀릴 것입니다. 이 일은 비밀을 구하니 누설하여 관우가 방비하는 일이 없도록 해주십시오."
그러나 나이를 먹어도 그 간사함은 여전했으니, 조조는 바로 편지의 누설 여부에 대해 회의를 한다.
이에 모든 신하들이 비밀에 부쳐야한다고 주장하나 '동소'란 자가 이르길,
"마땅히 손권에게는 비밀을 유지하되 그것을 누설해야합니다. 만약 관우가 서쪽에서 손권이 온다는 사실을 알게되면 군사를 돌릴 것이므로 번성의 포위는 절로 약해질 것입니다. 이렇게하면 손권과 관우 두 적이 대치하게하여 우리는 어부지리를 얻을 수 있게됩니다. 만약 누설하지 않으면 손권의 뜻대로 되는 것이니 우리에게 이로울 것이 없습니다. 지금 포위망 속에 있는 군사들이 두려워하고 있으므로 마땅히 누설해야하며 누설하지 않는다면 관우는 계속해서 공격을 퍼부을 것인바 번성의 위험은 지속될 것입니다."
이후 조조가 손권의 편지를 번성과 관우군 사이로 날리니 번성은 용기 백배하여 사기가 급격히 올랐고, 관우는 편지의 진위여부에 대해 당황하여 공격을 주저하게 된다.
그리고 손권이 한편이 된 이상 손권을 수비할 필요가 없어졌기에, 손권의 북진 수비를 담당하던 '장료'까지 관우 공격을 위해 차출시킨다.
관우의 공격이 느슨해지고 손권과의 동맹으로 여유를 찾은 조조 역시 반격에 대한 준비를 모두 마쳤으니 서황에게 다시 여러명의 부장들과 대군을 딸려 지원보낸다.
서황은 이기지 못할 거라 생각되면 유리한 때를 보아 싸우는 신중한 장수, 홍수도 점점 빠져가고 정예병까지 얻은 서황의 진격은 거침이 없었으니,
곧바로 '언성'에 주둔한 관우군을 격파하고 관우의 본대 코앞까지 마주하게 된다.
한편 서황과 관우는 이전부터 서로 경애하며 친분이 있어 전투를 앞두고 멀리서 대화를 나누니 군대에 대한 일은 언급하지 않고 일상 이야기를 나눌 뿐이였다.
그러나 서황이 갑자기 소리치니,
"관우의 머리를 얻어오는 자에게는 1천 금의 상을 내릴 것이다!"
관우는 이에 놀라 묻길,
"서황, 그게 무슨 말이오!"
"이는 나라의 일이오!"
이때 관우군은 '위두'란 곳과 별도로 네 언덕에 주둔해있었는데 서황의 전술은 노련하기 짝이 없었다.
위두를 공격하겠다고 떠벌리며 공격할 태세을 취하면서도, 몰래 네 언덕을 기습했고 네 언덕이 무너지는 것을 본 관우 역시 급히 5천의 부대를 이끌고 지원한다.
그러나 관우군도 외부로의 침입에 대비해 해자와 녹채로 10중의 방비망을 구축하며 단단히 대비한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압도적 숫자의 기습에 결국 바리게이트들은 모두 뚫렸고, 철통같았던 번성 포위망이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하니 이에 질세라 번성 안에서 수비만 하던 조인도 성문을열고 반격에 들어간다.
결국 안팎에서의 공격을 당해내지 못하고 급기야 관우의 많은 군사들이 스스로 강에 빠져 죽는 상황까지 이르니 관우는 끝내 번성 포위망을 풀고 퇴각한다.
5. 손권의 진격
번성에서 크게 패한 관우였지만,
아직 전쟁에서 진건 아니였으니, 한수는 여전히 관우가 점령하고 있었고, 양양성의 포위는 그대로였다.
서황이 관우군을 완전히 몰아내기 위해서는 한수에서 양양성까지 이어진 2중의 포위망까지 마저 뚫어야했으니, 이는 매우 쉽지 않은 일이였고, 관우 역시 일을 그르르친 상황에서 후퇴하기보단 양양성이라도 얻고자 하는 심정으로 포위를 풀지 않았다.
그러나 상황은 하나부터 열까지 관우의 뜻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관우는 우금과 3만에 달하는 포로들을 그대로 살려두었는데, 이 포로들로 인해 군량에 비상이 생긴 것이다.
그러나 관우는 여기서 육손의 편지도 있고, 비록 거절했지만 손권이 지원의지를 보여준 적이 있기에 이해해줄거라 생각했는지 아무튼 크게 오판을 하는데 바로 손권의 형주지역 쌀 창고를 무단으로 털어버린 것이다.
이렇게 드디어 관우를 공격할 명분이 생기자 손권 역시 움직이기 시작했고, 여몽과 육손을 선봉장으로 삼으니 그들은 무서운 속도로 진격한다.
관우도 이런 움직임을 대비해서 후방에 다수의 봉화대를 설치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여몽의 계책은 모든 사람들의 생각을 뛰어넘었으니,
바로 관우군이 눈치채지 못하게 군사들에게 흰 옷을 입혀 장사꾼으로 변장시킨 뒤 큰 배에 태워 관측소를 담당하는 관우군을 모조리 사로잡은 것이다.
이런 여몽의 기지로 형주 내 모든 관우세력이 봉화가 울리지않아 변고를 알지 못했으며, 또 사건이 터지는데...
관우가 번성에서 전투할 때 후방에서는 '미방'과 '사인'이 보급을 담당했는데, 이 둘은 관우가 자신들을 깔보는 것에 평소에도 크게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이는 관우의 '오만함'이란 치명적 약점이 드러나는 일화로 여러 사람들도 이 점을 관우의 약점으로 생각했다.
"관우는 뛰어나며 학문을 좋아하고 씩씩한 기상이 있으나 자부심이 강하고 자주 타인을 업신 여깁니다." - 여몽
"관우는 자신의 용기에 기대어 다른 사람을 능멸합니다." - 육손
특히나 약자에게는 한없이 관대하면서도 높은 벼슬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한없이 엄격하고 오만한 관우였는데, 전투 중 미방과 사인이 보급에 실수를하자 전투가 끝난 후 죄를 묻겠다고 하니, 두 사람이 안그래도 불만을 품은 상황에서 크게 두려워한 것이다.
그런 두 사람에게 때마침 여몽이 접근하니 두 사람의 마음은 크게 흔들렸다.
그래도 처음에 사인은 두 마음을 갖지 않았으나, 여몽의 부하 '우번'이 서신을 보낸다.
"지금 우리의 대군이 왔는데도 봉화도 울리지않고 척후도 알아채지 못하니 기적이 아니라면 이는 필시 내응이 있어서입니다. 항복하지 않고 대항하려한다면 조상에 대한 제사조차 지내지 못할터이니 달아나도 죽고 항복하면 의를 잃게되는 상황에서 뭐가 더 나은지 곰곰이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이에 사인은 눈물을 흘리며 항복하지만, 강릉을 지키는 미방의 항복은 누구도 예상할 수 없었다.
본래 대호족 출신이었던 미방은 형 '미축'과 더불어 유비에게 전 재산을 투자하고 유비와 숱한 패배를 겪는 등 유비와 모든 것을 함께한 자였다.
게다가 여동생이 유비의 부인이였는데, 여몽이 접근하니 오히려 술과 고기까지 내오며 여몽을 환영한다.
그렇게 '강릉'과 '공안', 관우의 핵심 근거지가 송두리째 날라간다.
한편, 여몽이 관우의 핵심 지역들을 장악할 동안 육손 역시 미친 활약을 펼치는데 육손은 계속해서 서쪽으로 진격해 나머지 형주 지역을 죄다 격파하여 서쪽 유비의 침입에 대비하니, 그렇게 죽이거나 포로로 잡고 회유한 자가 무려 수만에 달했다.
그러나 야속하게도 여몽의 공격은 여기서 끝이 아니였다.
6. 여몽의 심리전
지원군은 올 기미가 없고 북진은 막히고 뒤까지 막혀버린 상황이었다.
이 모든 것이 관우가 천지를 진동시키며 대업을 이룰려는 찰나, 불과 3달만에 일어난 일이났다.
이제 강릉과 공안이 넘어갔다는 소식은 관우에게도 들어갔고, 관우 역시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는지 빼앗긴 지역이라도 되찾기위해 끝내 퇴각을 결정한다.
관우가 양양성의 포위마저 풀고 퇴각하자, 조인은 관우를 추격하는 건에 대해 회의를하니 조엄이 이르길,
"손권은 관우가 어려워진 틈을 타 배후를 습격하면서도 관우와 자신이 서로 다퉈 지쳤을때 우리가 공격하지 않을까 역시 염두하고 있습니다. 지금 관우가 패해 퇴각하고있는 상황에서 관우를 추격한다면, 손권은 관우에 대한 태도를 바꾸어 우리와 다시 대항할 것입니다."
조조 역시 조인이 관우를 추격할까 두려워 긴급히 칙령을 보내니 이제 싸움은 역으로 관우와 손권의 대결이 되었다.
한편, 강릉성에 진입한 여몽은 관우를 비롯하여 그 부하들의 가족들을 사로잡으면서도 오히려 위로하고 크게 대접했으며 병사들이 백성들에게 함부로 해끼치는 것을 금했는데, 군기가 얼마나 엄중했는지 여몽과 동향 사람인 부하가 민가에서 삿갓 하나를 취해 갑옷을 덮었음에도 군령을 어겼다며 죽였을 정도였다.
여몽이 아침저녁으로 노약자들을 돌봐주고 아픈 자들에게는 약을 주고 가난한 자에게는 옷과 양식을 나눠주는 등 엄청난 선정을 펼치니 성의 민심은 여몽에게 향했고, 관우 역시 돌아오는 길에 끊임없이 성의 상황을 알아보기위해 사신을 보내나 여몽은 관우의 사신들을 매번 후대하며 관우군의 가족들과 백성들이 관우 때보다 더 만족하며 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에 돌아온 사신이 성의 상황을 고하니, 관우의 군사들은 안심하며 싸울 의지를 잃어버리고 와해되어 결국 관우는 '맥성'으로 퇴각한다.
7. 관우의 죽음
최고에서 나락으로 떨어진 관우.
자신의 오판으로 형주를 몽땅 잃었지만, 그는 살아야할 이유가 있었다. 바로 오만한 자신조차 모든 것을 바칠 수 있었던 '유비'를 위해서였다.
모든 것을 거머진 조조로부터 높은 벼슬, 명성, 금은보화 등 모든 것을 얻을 수 있었지만 결국 무주공산의 빈털털이 유비를 택했을만큼 관우가 유비로부터 느끼는 의기와 충정은 모든 것을 초월한 최고의 가치였다.
한때 관우가 조조에게 귀부할적에 조조는 관우가 오래 머물지 않을거라 생각해 장료에게 관우의 본심을 알아보라 한 적이 있었는데, 이에 관우가 답하길,
"나도 조공께서 후하게 대해주시는 것을 잘 알고 있으나 유장군의 두터운 은혜를 입고 함께 죽기로 맹세했으니 이를 저버릴 수는 없소."
그리고 이런 유비를 위해 관우는 익주로 달아나기로 결정한다.
때마침 손권이 항복을 권유하자 이때다싶어 거짓으로 항복에 응하여 성 꼭대기에 깃발을 꽂고 사람의 형상을 만들어 도주한다.
그러나 도주조차 하늘은 관우의 편을 들어주지 않았으니,
이미 손권군은 관우의 도주로를 모두 끊어놓은 상황이었다. 관우는 결국 자신의 아들 '관평'과 함께 붙잡혔고 참수되니 2천년간 많은 사나이들의 가슴에 불을 지핀 사나이는 219년 12월의 일기를 끝으로 생을 마감한다.
이후 손권은 관우의 목을 조조에게 보냈고 조조는 관우를 제후의 예로 후하게 장사지낸다.
'관우는 만인지적이라 칭해진 당대의 호랑이 같은 신하였다. 관우는 조조에게 힘써 보답하여 뛰어난 선비의 풍모가 있었다. 그러나 자부심이 강하고 굳세어 자신의 단점으로 패망하였으니 이치의 본보기다' - 진수(정사 삼국지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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