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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미니카공화국은 미국 그랜트 대통령 때, 미국의 주로 편입되려고 했을 정도로 미국에 많이 의존하던 나라이다.

(그랜드 대통령은 긍정적이었으나, 의회에서 기각했다.)

1950년대, 라파엘 트루히요는 도미니카를 카리브해의 강국으로 만들려는 야심을 갖고 있었으나 가혹한 군사독재와 미국에 반기를 드는 독자 외교 탓에 결국 그는 암살당하고 트루히요 정권도 무너졌다. 

1980년대, 도미니카에서 라파엘 트루히요의 야심은 간 곳 없었고 도미니카 공화국은 그냥 미국에 시가와 럼, 야구선수들을 수출하는 나라로 머물러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격을 높이고자 당시 대통령 호아킨 발라게르는 야심찬 계획을 추진한다.

호아킨 발라게르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500주년이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도미니카 공화국이 위치한 에스파뇰라 섬을 콜롬부스가 발견한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콜럼버스가 최초로 발견한 땅도 아니고 콜럼버스가 특별히 도미니카를 아낀 것도 아니었다. 도미니카의 수도 산토도밍고는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동생 바톨로 콜럼버스가 건설한 도시이다.

바톨로 콜럼버스

하지만, 도미니카는 한사코 자국을 '콜럼버스의 나라'로 홍보해왔다.

콜럼버스는 1492년 처음으로 신대륙에 발을 디뎠는데, 발라게르 대통령은 500주년인 1992년에 맞춰 큰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콜럼버스를 기념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건축물을 짓겠다는 계획이었다. 게으른 라틴 사람들 성격 탓에 1992년까지 완공 날짜를 맞추지 못하는 불상사를 막기 위해 이 계획은 일찌감치 1986년에 착수했고 유럽인 건축가를 초빙해서 의뢰했다.

이 프로젝트를 위해 무려 미화 7천만 달러가 투입되었다는데, 도미니카의 심각한 빈부격차를 고려한다면 막대한 예산을 건축물에 쏟아붓는 정책에 대해 찬반양론이 생겼다. 하지만 1906년생 발라게르는 여론을 무시하고 강행했다. 자신의 마지막 업적으로 콜럼버스 기념사업을 완성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정말로 1992년에 맞춰 완성되었다.

El Faro a Colon, 콜럼버스에게 바쳐진 등대라는 이름을 가진 이 건축물은 세계 최대 규모의 콜럼버스 기념관으로 꼽힌다.

영어권에서는 Columbus Lighthouse라고 불린다.

Colon과 Columbus, 같은 사람을 지칭하는 단어인데 왜 다를까?

콜롬부스는 본래 이탈리아에서 태어났다. 이태리에서의 본명은 '크리스토포로 콜롬보'였다.

그런데 콜럼버스는 스페인으로 이주한다.

이때 이탈리아식 이름을 버리고 스페인식으로 '크리스토발 콜론'이라는 이름을 썼다. 

스페인어권에서 '콜론'이라는 성은 콜럼버스를 의미하는 것으로 굳어졌다.

영어권에서 쓰는 콜럼버스라는 이름은 원래 독일식 표기법이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Columbus지만 스페인어권에서는 Colon이다.

콜럼버스의 이름을 쓸 때 서로 자기네 표기법을 고집하는 데에는 국가간의 자존심 대결도 있다.

일본이 자기네 언어에서 쓰는 한자를 Chinese character라고 안하고 끝까지 kanji라고 부르듯이 말이다.

아무튼, 산토도밍고 해안가 언덕에 건설된 이 거대한 박물관 겸 등대는 로마황제들의 무덤 마우솔레움을 모티브로 하여 만들었다.

 

이 건물이 등대가 된 데에는 뒷이야기가 있다.

처음 설계할 때의 건물은 거대하게 짓기로 했는데 막상 전시할 콜럼버스의 유적이랄 게 그리 많지 않았으며, 그에 따라 비게되는 많은 공간을 무엇으로 채울지 고심하게 되었다.

그래서 도미니카 정부는 궁리 끝에 이 건물을 등대로 만들어 국가 행사에서 쓸 수 있도록 했다.

이렇게 등대 전체가 빛을 발하기 시작하면,

 

하늘에 십자가가 형성된다.

하지만 도미니카 정부의 기대와 달리, 콜럼버스 등대는 관광객들에게 그다지 인기를 끌지 못했다.

이곳을 다녀온 사람들의 리뷰를 보면 자연석이 아니라 시멘트로 지은 건물이라서 가까이서 보면 흉물스럽다는 의견이 많다.

그리고 역시 건물은 거대한데, 안에 들어가서 볼 게 별로 없다는 점이 실망스러움의 원인으로 꼽힌다.

발라게르 대통령은 공간이 남아돈다는 사실에 고심하다가 콜럼버스 등대를 예술의 전당 같은 문화공간으로 활용하기로 했다.

상설 전시관 이외에 각종 전시회를 개최한다.

일각에서는 예산 낭비라는 비판도 있지만 그래도 현대화된 산토도밍고의 랜드마크급 건물이라는 데에는 의견이 일치한다.

스페인 식민지 시절의 성당 외에는 이렇다 할 유적도 없던 도시였기 때문이다.

참고로, 늘 몸이 약해 골골대던 발라게스 대통령은 2002년, 9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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