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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로도토스가 그의 책 Historia 3권에서 그리스의 섬나라 중 하나인 사모스 (Samos)의 역사에 대해서 장황하게 소개하다가 다음과 같이 흥미로운 이야기를 한다.

 

"내가 이렇게 사모스인들의 이야기를 길게 소개한 이유는 사모스인들이 그리스 역사에서 가장 뛰어난 세가지 업적을 달성했 때문이다. 첫째, 그들은 900ft 높이의 산에 (실제 산 높이는 225m) 4080ft 길이의 터널을 (실제 길이 1035m) 가로세로 8ft로 뚫었다. 그리고 또다른 상수도관을 터널에서 30ft 아래쪽에 3ft 너비로 뚫어 샘에서 도시까지 물이 흐르도록 했다."

 

사모스의 위치는 오른쪽 아래, 현재의 터키해안에 인접해있다.

이어진 설명에 따르면 기원전 6세기 경에 (헤로도토스가 책을 쓰기 100년여전 이야기임) 이 도시의 왕이었던 폴리카르테스가 상수도관을 도시 밖의 아이아데스샘물로부터 끌어오기위해 산을 관통하는 터널을 만들 계획을 세웠다. 굳이 터널로 만든 이유는 전쟁시를 대비 상수도관을 적으로부터 숨길 목적이었던거다. 이를 위해 아테네의 서쪽도시인 메가라 (Megara)출신 공학자 에우팔리노스 (Eupalinos)를 고용해서 터널의 건설을 맞겼다고 한다.

 

에우팔리노스는 그래서 역사상 처음으로 산을 관통하는 터널을 양방향에서 뚫기 시작한다. 현대의 기술로도 양방향에서 터널을 뚫기 시작했을때 가운데서 만나는 건 상당히 어려운 일인데 에우팔리노스는 고작 수십cm의 오차만 남기고 터널을 관통시키는데 성공한다. 이 터널은 상수도관을 도시로 연결하는 것이 주 목적이었고, 고고학적인 연구를 통해서 완공 후에도 1000년 이상 사용된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이후 완전히 잊혀졌다가 헤로도토스의 이 터널이야기를 읽은 역사학자들이 1882년경 사모스섬에서 이 터널을 찾기 시작하고 되어서야 다시 발견을 하는데 성공한다.

 

터널 입구

과연 어떻게 그 옛날 이런 터널을 이렇게 적은 오차로 뚫을 수 있었는지 당시의 공학적 발달이 놀라울 정도다. 먼저 터널의 단면을 살펴보면,

 

이 사진에서 보면 먼저 옆에서 본 단면도를 보면 터널자체는 높낮이의 변화없이 완전히 일직선으로 수평하게 뚫려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좌우 높이의 오차는 단지 31cm! 얼마나 정교하게 측량을 하며 터널을 파고 들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위에서 내려다본 시점으로 보면 북쪽에서 내려오다 직선으로 못오고 서쪽으로 잠시 방향을 틀은 걸 볼 수 있는데 이는 당시의 기술로 뚫기 힘든 구간이라 돌아서 갔다고 한다. 만나는 지점을 보면 그대로 직진했다면 바로 쉽게 만날 수 있었는데 동쪽으로 심하게 방향을 틀면서 만난게 볼 수 있다.

 

만나는 지점 단면도. 사람용 터널은 위, 아래는 상수도관.

 

이는 평행한 두 직선은 영원히 만나지 못하기 때문에 혹시 모를 오차에 대비해 마지막 부분에 와서 아래의 그림처럼 같은 방향으로 휘게 해서 무조건 만나도록 한거다. 같은 방향으로 꺾어지면 높이가 같다는 전제하에 두 터널은 무조건 만나게 되어있다.

 

그리고 또 북쪽에서 내려오는 터널이 마지막부분에서 위로 더 높이 판게 보이는데 이것 역시 아래 그림처럼 높낮이 오차를 감안한 설계다.

 

실제 오차가 거의 없어서 그냥 일직선으로만 파도 만났을 위치에 있었는데 만일을 대비한 설계를 한거다. 이 책에 만드는 방법까지 자세히 소개되어있지 않아서 그 당시 공학기술로 어떻게 이렇게 정교한 터널을 뚫을 수 있었는지는 현재도 연구대상이다. 다만 학자들은 높낮이의 경우 물을 넣은 나무홈통을 이용해서 계측했을 것이고 좌우방향의 경우 아마 그당시 알려진 피타고라스법칙과도 관계된 직각삼각형방법으로 측량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참고로 그리스의 철학자 겸 수학자 중 하나인 피타고라스는 바로 이 사모스섬에서 기원전 570년경 태어나는데, 아마 이 터널이 만들어지기 전 시점인 것으로 알려져있다. 터널의 완공년도는 대략 520년경으로 추측되고 있기 때문이다.

 

같은 동네 출신 유명인 피타고라스

그리고 초반 헤로도토스가 말한 세가지 공학적 업적 중 나머지 두개는 사모스 항을 둘러싼 인공구조물, 그리고 헤로도토스가 세계를 떠돌며 본 중 가장 큰 신전이라고 한다. 이중 신전의 경우 제우스의 마누라, 헤라를 위한 신전으로 아직도 그 터가 남아있어서 그 당시 웅장했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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