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사]로마황제 클라우디우스
이탈리아 나폴리 국립고고학박물관에 소장되어있는 클라우디우스 흉상
클라우디우스 치세기의 로마제국 영토. 100년 후 최전성기에 비해 영국 중북부(Britania), 루마니아(Dacia) 정도만 부족하다.
2000년 전 세계의 절반을 통일했던 로마의 황제들에 대해서 한명씩 알아보고자 한다. 오늘은 첫번째로 로마의 4번째 황제인 클라우디우스다. 클라우디우스하면 덜떨어진 모습으로 폭군 칼리굴라황제시대를 간신히 살아남고, 황실호위군의 반란때 덜덜떨며 커텐뒤에 숨어있다가 황궁의 보물을 훔치며 돌아다니던 군인들에게 발각되어 얼떨결에 황제로 추대된 인물이다.
먼저 어떤 가문 출신이길래 난리통에 황제로 추대가 되었을까?
클라우디우스의 할머니는 로마 초대황제 어거스투스의 부인인 리비아(Livia)였고 삼촌이 2대황제 티베리우스, 외할아버지가 줄리우스 시저의 오른팔이었던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외할머니가 어거스투스의 누나 옥타비아였다. 물론 후에 외할아버지는 이집트의 클레오파트라와 바람이 나서 버림받은 외할머니가 어린 엄마를 혼자 키우게되었지. 어쨌든 무척 화려한 족보를 가진 로마제국시대 금수저였다.
하지만 클라우디우스는 어려서부터 장애로 고생했는데 먼저 절름발이였고, 항상 침을 질질 흘렸으며 말도 더듬었다고 한다. 그래서 어머니로부터도 괴물이라고 불리우며 양육을 기피해서 친할머니 리비아에게 떠맡겨졌는데, 리비아가 그나마 좀 봐주긴 했지만 결국 어린시절을 주로 황실 당나귀지기의 손에 길러져서 교육을 받았다. 겉보기와는 달리 책읽기도 좋아하고 나름 똑똑했지만 수많은 황실친척들은 클라우디우스를 무시하기만 했다.
초대황제 어거스투스와 2대황제 티베리우스 시절 별다른 직책없이 혼자 책읽고 공부만 하며 지냈다. 사실 클라우디우스는 학자이기도 해서 일생 수많은 역사책 및 잡다한 책들을 저술했다. 예를 들어 20권짜리 에트러스칸 역사책, 8권짜리 카르타고 역사책, 주사위 게임하는 방법에 관한 책 등등. 또한 라틴 알파벳 3개를 개발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현재 전해져오는 책은 한권도 없이 다 소실되었고, 다른 역사책의 인용문으로만 전해오고 있다.)
그러다 폭군으로 유명한 3대 황제 칼리굴라의 시기에 와서야 공직에 진출해서 사회생활을 하게된다. 칼리굴라는 티베리우스를 co-consul (의회의 의장)에 임명하지만 대놓고 놀리고 막대한 돈을 요구하는 등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다. 동시대 역사가인 카시우스 디오의 기록에 따르면 칼리굴라 시대 말기에 가서는 뼈만 남고 각종 병에 골골대는 지경이었다고 한다. 그도 그럴것이 칼리굴라는 모든 황실의 남자들을 죽였었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황제자리를 노릴 수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은 각종 이유를 들어 죽였는데 클라우디우스만 예외였다. 겉보기가 너무 바보같아서 전혀 위협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부터 가족들로부터 놀림받고 외톨이로 자라오게 한 장애가 결국 생명을 살린 것이었다.
로마의 첫번째 막장황제로 이름을 날리던 칼리굴라가 결국 황실호위군의 반란으로 살해당하고 위에 쓴 것처럼 커텐뒤에 숨어있다 발각되어 목숨을 구걸했지만 당시 살아남아있던 유일한 황실의 남자라는 자격으로 차기 황제에 추대가 되었다. 이 당시 반란군은 칼리굴라도 죽이고 그의 아내와 딸, 그리고 클라우디우스의 친구이기도 했던 많은 고위관리를 죽였다. 그러니 클라디우스도 발각되었을때 당연히 죽임을 당했을거라고 생각했을거야. 이 때가 그의 나이 51세, 태어나서 수모만 당해오다 정말 드라마틱하게 천하를 손에 쥐게 된 순간이었다.
황제가 된 클라우디우스는 13년 후 아내에 의해 죽임을 당할 때까지 로마를 비교적 안정적으로 잘 통치한다. 황제가 되기 전 많은 독서와 황실 내부에서 전임황제들의 공과를 직접 체험함으로써 좋은 황제가 될 수 있는 기초를 다졌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그 전 황제의 개막장짓으로 혼란스러웠던 정국을 안정시키고 로마제국을 더욱 안정적으로 발전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먼저 영토를 확장해서 처음으로 지중해를 둘러싼 모든 영역을 로마의 직할영토로 만든다. 그래서 아래 지도에도 나오지만 지중해가 그야말로 로마제국의 내해, 로마시대 표기로 MARE INTERNUM NOSTRUM (우리의 내해 )가 되게 만들었다.
확장한 영역은 Noricum(현재 오스트리아 일대), Thracia(불가리아/유럽쪽 터키지방), Lycia(터키 남서부), Judae(이스라엘 일대), Mauritania(아프리가 서북부), Britannia(영국 남부) 등이다. 이중 Britannia엔 직접 원정을 가서 Briton 원주민 세력과의 전쟁을 독려하기도 했다. 이때 코끼리부대를 대동했는데 코끼리를 본 Briton 원주민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고 한다. 후에 Briton의 장군 카락타쿠스를 생포했는데 클라우디우스는 죄를 묻지않고 석방해서 로마의 영토내에서 토지를 제공해줘서 여생을 편히 보낼 수 있게 했다. 적군의 우두머리를 잡은 후 이렇게 잘 대해주는 것은 꽤 드문 일로 클라우디우스의 인간적인 면모가 투영됐다고 본다.
클라우디우스의 사회적인 업적을 몇개정도만 예로 들면 각종 수로를 추가로 건설해 물공급을 원할하게 하고, 칼리굴라시절 도입되었던 음식세 등을 없애는 등 세제개편을 통해 로마인들이 좀 더 여유있는 삻을 살 수 있도록 했다. 또한 로마 바로 옆 지중해연안에 항구도시 Ostia를 건설해 각종 곡류 및 물품들이 지중해 각 속주로부터 로마에 손쉬게 들어올 수 있도록 물류를 개선한 것 등을 들 수 있다.
하지만 이런 클라우디우스는 여자들과 영 인연이 좋지 않았다. 총 4번 결혼했는데 다 끝이 좋지 않았다. 가장 놀라운 예는 세번째 부인이었던 발레리아 (Valeria Messalina)였다. 황제로 제위하던 당시에 조카뻘이었던 발레리아와 결혼을 했는데 이 발레리아는 그당시 드물었던 색녀로 클라우디우스에겐 만족못하고 수많은 남자들과 불륜을 저지른다. 그러다 결국 막장까지 치닫는데 로마 사창가에서 창녀 한명과 하룻밤에 누가 얼마나 많은 남자를 상대하는가를 두고 대결을 펼치기도 했다.
그러다 결국 클라우디우스가 Ostia에 가서 도시의 건설을 점검하고 있던 사이에 자기의 애인이었던 Gaius Silius와 사람들을 초청해 성대한 결혼식을 올리는 만행을 저지른다. 황제인 자기 남편이 잠시 도시를 비운 틈에 애인과 결혼을 하다니 동서양 역사를 통틀어 비슷한 예를 찾아볼 수도 없는 일화로, 평소에 얼마나 클라우디우스를 무시했는지 알 수 있는 행동이다. 보통사람들이라면 이 사실을 들은 후 바로 이 둘을 죽이겠지만 클라우디우스는 역시 클라우디우스였다. 이 사실을 알고도 발레리아에게 다시한번 기회를 주기로 했다. 하지만 도를 넘은 이 행위를 간과할 수 없었던 호위장군 중 하나가 황제 몰래 발레리아를 죽인다. 발레리아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클라우디우스는 쿨하게 별다른 이야기 없이 와인을 한잔 더 달라고 했다고 한다.
왕비자리가 비어있을 수 없으니 또 결혼을 하게되는데 이번결혼상대야 말로 악녀 중 악녀였다. 이 여자의 이름은 아그리피나(Agrippina the Younger)로 클라우디우스의 또다른 조카였다. 클라우디우스는 아들이 없었는데 아그리피나에게는 이전 결혼을 통한 아들이 있었고, 아그리피나의 첫번째 목적은 자기 아들을 클라우디우스의 양자로 만든 후 궁극적으로 황제의 후계자로 만드는 것이었다. 사실 아그리피나의 이전 남편도 석연치않게 죽었었는데 세간엔 아그리피나가 남편의 재산을 독차지하기취해 독살했다는 소문이 있었다.
결국 5년 후 아들을 후계자로 만드는 데 성공한 아그리피나는 독버섯을 이용해 클라우디우스를 독살하고 만다. 클라우디우스 황제 제위 13년 후, 향년 63세였다. 이 후 아그리피나의 아들이 결국 황제가 되는데 이 황제의 이름이 폭군으로 유명한 네로다. 결국 어린 나이에 황제가 된 네로는 점점 흉폭해지다 자기 어머니를 죽임으로써 아그리피나는 악녀에 걸맞는 최후를 맞이한다.
클라우디우스는 사실 살아있을 때부터 수많은 사람으로부터 신으로 숭배되었는데 죽은 후 네로황제에 의해 공식적으로 신격화된다. 신격화는 좋은 황제만이 얻었던 명예로 클라우디우스는 이전(칼리굴라)과 이후의 폭군(네로)들이 로마를 흔들어도 로마가 탄탄히 이어져나갈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한 로마제국 초창기의 몇 안되는 성군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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