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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포지교의 주인공은 관중(管仲) 포숙아(鮑叔牙)이다.

관중의 이름은 이오(夷吾)고 자가 중()이며포숙아는 포숙(鮑叔)이라고도 불린다.

이들이 활동한 시기는 춘추시대의 ()나라이다.(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의 춘추시대)

 

중국 왕조를 최대한 간단하게 늘여놓면 하-상(은)-주-춘추/전국-진-한-위진-남북조-수-당-송-원-명-청그리고 지금 중국까지 이렇게 된다.

하나라는 확실한 근거가 발견되지 않아 아직 역사시대로 보고있지 않고, 상(은)나라도 그랬었는데 갑골문이 발견되어서 역사시대로 편입되었다.

주나라 무왕이 은나라의 폭군 주왕을 몰아내고 주나라를 세우는데, 여기의 일등공신이 많이 들어봤을 강태공이다.

춘추전국시대는 주나라의 힘이 약해지자 여러 지방의 유력세력들이 일어나 왕을 칭하며 세력을 다투던 시기이다.

그 중 춘추시대는 주나라 천자를 위하고 오랑캐를 몰아낸다는 존왕양이(尊王攘夷)라는 구호였다면, 전국시대는 그런거 없이 너도나도 왕을 칭하며 치고박고 싸우던, 말그래도 전국(戰國)의 시대였다.

진나라 진시황이 춘추전국시대를 종결시키고 통일 국가를 건설하지만 얼마 못가 망하고 항우와 유방이 싸우고 한나라가 세워진다.

익히 알려진 삼국지의 배경은 유방이 세운 한나라 말기에 춘추전국시대처럼 여러 세력들이 일어나서 군웅할거한 이야기이고, 다음으로 이어지는 위진은 조조의 위, 사마의의 후손 사마염의 진나라를 말한다.

 

각설하고, 춘추전국시대 본론으로 들어가면

관중과 포숙은 제나라 사람으로 어렸을때부터 같은 동네에서 자란 친구였으며, 자라면서 포숙은 관중이 보통사람이 아니란걸 알아챈다.

젊은 시절에 둘이 같이 장사를 했었는데 항상 관중이 포숙보다 몫을 더 때어갔는데, 사람들이 그것에 대해 포숙에게 이야기 하자 포숙은, 

"관중은 나보다 집이 더 가난하니 몫을 더 챙겨가는것이 맞는 일이다." 라고 답한다.

관중이 벼슬길에 3번 나갔다가 모두 쫒겨났을때도 포숙은, 

"관중이 무능한것이아니라 그를 알아봐주는 때를 만나지 못했을 뿐인 것이다." 라고 말했다.

관중과 포숙이 같이 전쟁터에 나갔을때관중이 몸을 사리고 3번이나 패주해서 도망쳤을때도 포숙은,

"관중은 봉양해야할 노모가 계시기 때문에 목숨을 아끼는것이 옳은 일이다." 라고 말했다.

이처럼 포숙은 관중에대한 무한한 믿음과 신뢰를 보냈다.

한편 제나라에서 소요사태가 일어나 제나라의 군주 자리가 공석이 되는 사태가 발생하는데, 이때 포숙은 또 다른 제나라의 공자였던 소백(小白)을 모시고 있던 상황이었다.

관중은 소백의 형이자 역시 제나라의 공자였던 ()를 모시고 있었고, 이 둘은 모두 타국에 가있었는데먼저 제나라로 돌아가는사람이 군주 자리에 오를수 있었다.

한편 이같은 사실을 알고 관중은 규를 왕위에 올리기위해 소백을 암살하려는 계획을 세운다. 

그래서 소백 일행이 가는길에 매복해있다가 활을 쏘아서 소백을 맞추게 된다.

소백을 겨냥하는 관중

소백의 복부에 화살에 맞고 쓰러진것을 확인하고 관중은 공자 규에게 이제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제나라로 향하면 된다고 보고했지만, 정작 화살은 소백의 허리띠에 맞았다.

소백은 규 일행이 자신을 향해 활을 쐈다는 것을 빠르게 간파하고 화살을 맞은척 말에서 떨어진 것이었다. 

덕분에 방심한 규를 제치고 소백이 먼저 제나라에 도착해 군주 자리에 오르고, 왕위에 오른 소백은 자신을 암살하려고한 규 세력과 관중을 잡아오라고 명령한다.

군졸들이 관중을 소백앞에 대령하고 소백은 그 죄를 물어 관중을 죽이려고 했지만, 그때 포숙이 옆에서 소백에게 말하기를,

소백에게 읍소하는 포숙

"공께서 제나라만 다스리시려면 저나 습붕 정도로 충분합니다." 

"다만 패자가 되시어 여러 제후를 통솔하는 우두머리가 되고 싶다면 관중 없이는 안됩니다그러니 지난 원한은 잊어버리고 관중을 과감하게 중용하십시오."

관중은 자신을 암살하려고 했고 실제로 관중의 화살에 죽을뻔했지만 포숙의 말을 믿고 관중을 살려주고 오히려 재상에 임명하게 된다.

화살에 맞은척 기지를 발휘한것부터 자신을 암살하려한 인물을 재상에 임명하는것을 봐도 소백이 범상치 않은 인물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는데, 이 소백이 바로 그 유명한 제환공(齊桓公)이다.

제환공 강소백

제환공은 춘추시대의 다섯 패자(覇者)를 말하는 춘추오패(春秋五覇)의 자리에 오르는 첫 인물이다. 

춘추오패(맨 좌측이 제환공) 

즉 여러 제후들이 인정한 으뜸가는 제후라는 것이었고그만큼 제환공은 역사적으로 대단한 인물이었다.

어쨋든 이렇게 또 포숙의 신뢰와 힘으로 관중은 재상의 자리까지 오르게 되고, 제환공 또한 관중의 정책을 따르고 전권을 맡기게 된다.

그로 인해 어느 제후들보다 제나라는 강성해지고, 결국 제환공이 패자(覇者)라고 제후들 사이에서 인정받게 된다.

이렇게 성공한 관중은 포숙에 대해 이런말을 했다.

 

내가 지난 날 가난하게 살 때 포숙과 함께 장사를 한 일이 있었다이익을 분배할 때 내 몫을 많이 했는데도 포숙은 나에게 탐한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내가 가난한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전에 포숙을 위하여 사업을 경영하였다가 실패하여 이전보다 더욱 궁핍하게 된 일이 있었지만포숙은 나를 어리석다고 탓하지 않았다. ‘시운이라는 것이 있어 이불리가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전에 세 번이나 벼슬길에 올랐다가 그때마다 주군에게 추방된 일이 있었지만포숙은 나를 불초한 놈이라 말하지 않았다내가 때를 만나지 못한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전에 세 번이나 전쟁터에 나갔다가 그때마다 패주했지만포숙은 나를 비겁한 자라 말하지 않았다그는 나에게 노모가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내가 섬기던 공자 규가 공자 소백에게 패하여 죽임을 당하고 다른 부하였던 소휼 또한 죽었지만나는 옥에 갇혀 치욕을 받았다하지만 포숙은 나를 뻔뻔한 자라 욕하지 않았다그는 내가 작은 절조를 저버리는 것을 부끄러이 여기지 않고 공명을 천하에 떨치지 못하는 것이 부끄러운 것임을 아는 자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나를 낳아준 것은 부모님이시지만나를 참으로 알고 이해하여 주는 자는 포숙뿐이다!”

 

여기까지가 사기에 실린 관중과 포숙아의 이야기이다.

한편 이후의 비하인드 스토리는,

관중이 임종이 가까워지자 제환공은 관중에게 후임 재상의 자리에 누가 적합할지 의견을 물어본다.

관중과 후임자를 의논하는 제환공

오랫동안 자신을 보좌해온 포숙을 재상으로 삼는게 어떨지 관중에게 물어보자 관중이 대답하기를,

"아니 되옵니다그는 강직하고 괴팍하고 사나운 사람입니다강직하면 백성을 난폭하게 다스리고괴팍하면 인심을 잃게 되며사나우면 백성들이 일할 용기를 잃게 됩니다두려운 것을 모르는 그는 패자의 보좌역으로 마땅치 않습니다."

이 말을 듣고 결국 포숙은 재상자리에 오르지 못했다.

한편 관중의 이 말을 전해듣게된 포숙은, 

"역시 관중이다그는 사사로운 인연으로 대업을 망치지 않는 사람이구나!" 라고 말했다고 한다.

보통 사람들이 보기엔 참 그동안 믿어줬는데 관중이 자신을 그렇게 평가한 것이 어이없다고 생각할수도 있겠지만, 참 끝까지 포숙은 관중의 결정을 믿어줬던것 같다.

그리고 그 믿음이 허튼게 아닌게, 관중이 죽고 제나라는 간신들에 의해 혼란에 빠진다.

간신들에게 농락당하는 제환공

그리고 간신들에 의해 노쇠한 제환공은 침실에 갇혀 굶어죽게 된다. 

또 제환공의 후계가 결정되지 않아서 8개월간 시신이 방치되어 구더기가 끌었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천하의 패자 자리에 올랐던 사람의 최후로서는 참 비참한 말로이다.

어쨋든 관중 덕분에 포숙아는 재상에 오르지 않고 관직에서 은퇴해서 정계의 풍파에 휩쓸리지 않고 이후 십여대가 대대로 잘 살았다고 한다.

아마 관중은 포숙같이 강직한 인물이 정계의 소용돌이에서 살아남지 못할것이라고 판단했던것 같다.

 

여기까지보면 두 친구의 우정이라기보다는 포숙의 관중에 대한 일방적인 믿음과 신뢰로 보이는데, 어떻게 보면 쫌 바보같을 정도로 관중은 중국역사상에 손꼽힐 정도로 인정받는 대단한 인물이다.

부국강병을 이루게 한 인물로 관중을 제일로 쳐줘때문에 혹자는 관중을 관자라고 높여서까지 말한다.

또 후에 제갈량이 이 관중과 비교되기도 한다.

중국내에서도 손꼽히는 인물중 하나인 관중, 하지만 그런 대단한 능력을 가진 관중보다내가보기에는 그걸 알아주고 끊임없는 신뢰와 후원을 보낸 포숙이 대단한것 같다.

 

마지막으로 사기를 쓴 사마천이 이들에 대해 평가한 구절을 보면, 

天下不多管仲之賢(천하불다관중지현) : 세상 사람들은 관중의 현명함을 칭찬하기보다는

而多鮑叔能知人也(이다포숙능지인야) : 포숙이 사람을 알아보는 것을 더 칭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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