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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s://www.instiz.net/pt/4855807?page=1&k=%EC%9D%BC%EB%B3%B8%EC%A0%84%EA%B5%AD%EC%8B%9C%EB%8C%80&stype=9

신장의 야망,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일러스트

“인간의 일생은 무거운 짐을 지고 먼 길을 가는 것과 같다. 서두르면 안 된다.

무슨 일이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없다는 걸 알면 굳이 불만을 가질 필요가 없다.

마음에 욕망이 생기거든 곤궁할 때를 생각하라.

인내는 무사장구(無事長久)의 근본, 분노는 적이라 생각하라.

승리만 알고 패배를 모르면 해로움이 자기 몸에 미친다.

자신을 탓하되 남을 나무라면 안 된다.

미치지 못하는 것이 지나친 것보다 낫다.”

일본 전국시대를 종결시킨 도쿠가와 이에야스는인내의 달인으로도 불린다. 이는 그의 일생이 처참하고 어려웠음에도 끝내 버티고 버텨 최후의 승리자가 됐기 때문이다.

사실 지금의 일본에 와서는 재평가의 재평가가 이루어져 크게 인기가 없는 인물이기도 하지만, 어쨌건 혼돈의 시기의 승리자인만큼 대단한 인물이기도 하다.

 

 

1. 고난의 시기

이에야스는 원래는 도쿠가와 성씨가 아닌, 마츠다이라 가문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가문이 엄청 약소하고 지리적 위치도 오다가와 이마가와가 사이에 위치해서 양 쪽에 눈치나 보던 세력이었다.

그러던 중 마츠다이라가는 이마가와가에 흡수되게 되고, 어린 이에야스는 인질로 이마가와가에 보내지게 된다.

하지만, 인질로 보내지던 이에야스를 오다가에서 납치하고, 그 덕분인지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어린 오다 노부나가와 만나게 되고 둘은 친분을 쌓게 된다.

이는 훗날 일본의 미래를 바꿀 큰 사건이기도 하다.

이후 오다가의 당주 노부히데의 아들 노부히로가 이마가와가에 포로로 잡히게 되면서, 노부히로와 이에야스의 인질 교환이 이루어져서 이에야스는 이마가와가로 들어가게 된다.

여기서 이에야스는 인질이라곤 생각도 할 수 없을 만큼 극진한 대접을 받으며 성장했거, 이마가와가의 당주 요시모토의 조카와 결혼을 하게 되고, 이마가와가의 제1의 군사라고 할 수 있는 타이겐 셋사이에게 학문을 배우게 되었다.

이는 이마가와 요시모토가 이에야스의 잠재력을 알아봤던게 아닐까 한다.

마츠다이라 가문이 위치한 곳은 미카와 지방이었으나,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나이 15세 때에 그 아버지가 살해당함으로 인해 이에야스는 마츠다이라 가문의 당주에 오른다.

하지만 본인이 이마가와가의 거성인 슨푸에 묶인 상황이었기에 가문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하지만 미카와 사람들은 그들의 본거지인 오카자키에서 우직하게 자신들의 주군을 기다렸다.

 

 

2. 독립

이마가와 요시모토는 교토로 상락하기 위해 군대를 크게 일으켜 오와리로 진출했다.

하지만 여기서 엄청난 이변이 일어나고 말았으니, 오다 노부나가의 3천 병사가 이마가와 요시모토의 3만 군사를 이기는'오케하자마 전투'가 일어난다.

당시 이에야스도 이마가와군에 종군해 있던 상황이었으나 당주 요시모토가 죽자, 몸을 빼서 미카와의 오카자키 성으로 돌아가 독립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이후 미카와 서쪽 지방을 손에 넣음과 동시에 어린 시절 친분을 얻었던 오다 노부나가와 '키요스 동맹'을 맺으며 서서히 힘을 쌓게 되었다.

이때 맺은 오다 노부나가와의 동맹을, 이에야스는 이후로단 한번도 배반하지 않았다.

하지만 역시 그의 고난은 계속해서 뒤따랐는데 미카와의 통일을 반대한 일향종들이 일어났다.

당시 이에야스의 가신 중에는 불교를 믿는 사람들이 많았고 당연히 가문을 이탈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그중에는 훗날 다시 이에야스에게로 오면서, 이에야스에게는 조조의 순욱과도 같았던 '혼다 마사노부'도 있었다.

훗날 다시 이에야스를 따르며, 그의 정치적 상담원이었던 혼다 마사노부

일향종들의 반란 사건을 거치며, 이에야스의 부하중엔 그에게 충성을 다하는 신하들로만 구성된다.

이후 이에야스는 다케다 신겐과 손을 잡고, 이미 기울어진 이마가와가를 반반 분할하고, 그러면서 조정으로 부터 일개 낭인 출신의 성씨였던 '마츠다이라'가 아닌 '도쿠가와'성씨를 받게 되고, 이후로 이름을 도쿠가와 지로사부로 이에야스로 고치게 된다.

미카가와를 완전히 얻게 된 이에야스는 오다 노부나가의 확장에도 힘을 보탰다.

때문에 노부나가가 위기에 처한 순간이나, 영토를 얻을 때에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군대가 함께 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다가 오다가와 다케다가 틀어지며 전쟁이 일어나자 자연스럽게 그 사이에 있던 이에야스는 다케다와 일전을 펼치게 된다.

 

 

 

3. 다케다 신겐

다케다 신겐이 오늘날 전국시대 최강의 다이묘로 평가받는 이유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영향 때문이다.

아무래도 훗날 일본을 통일한 도쿠가와가 그의 일생 통틀어 가장 힘든 적수로 꼽았던게 바로 다케다 신겐으로 지목했으니 말이다.

적이기도 했지만, 도쿠가와는 다케다 신겐을 매우 존경해서 그에게 패배한 다음에는 그의 군략에 대해 공부했다고 한다.

훗날 쇼군에 오른 이후에도, 오다 노부나가에 대한 칭찬은 일절 없던 이에야스가 입이 마르게 칭찬했던게 바로 다케다 신겐이었다고 한다.

오다가와 다케다가 싸우게 되면서, 이에야스는 다케다 신겐의 기마대와 맞붙게 되었고, 미카타가하라라는 지역에서 농성하고 있던 이에야스를 보고, 그냥 무시하는 다케다군을 보며 발끈한 이에야스는 군사를 일으켜 다케다 신겐의 뒤를 공격하게 된다.

이때 이에야스의 군사는 11,000명, 다케다 신겐의 군사는 약 3만에 근접한 숫자였다.

보통 자신의 군사가 상대보다 더 많을때 쓰는 학익진으로 덤비지만, 다수임에도 병사를 움직이는데 무리를 하지 않던 어린진을 쓰는 다케다 신겐에 의해 참패하게 된다.(양 군 사상자가 도쿠가와 2,000명, 다케다 200명이었다고 한다.)

이에야스는 죽음이 두려워 도망을 치는데 말 안장에 똥을 쌌다는 일화도 있다.

그만큼 이 전투는 도쿠가와 일생을 통틀어 가장 참혹하게 패배한 전투가 되었다.

사실 이에야스는 늘 다케다와는 상성이 좋지 못했는데, 신겐이 사망하고 그 아들 카츠요리가 당주가 된 다케다와 싸웠을 때도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다케다 토벌에 나선 오다 노부나가의 대군에 편승하여,(약 3만 8천) 나가시노에서 다케다 군에게 엄청난 대승을 거두었다.

너무 큰 피해를 입었기에 다케다는 끝내 영토를 회복하지 못하고 멸망하게 된다.

 

 

4. 오다 노부나가와의 관계

어린 시절 볼모로 잡혔을 때 얻은 친분으로 인해, 그들이 성장하여 얻어진 키요스 동맹을 맺은 후 단 한번도 이에야스는 노부나가를 배반한 적이 없었다.

사실 양 가문이 대등했다기 보다는 오다가의 신하같은 이미지였고, 노부나가는 자신의 딸을 이에야스의 아들과 결혼을 시키기도 했다.

이에야스는 노부나가를 따르는 모습을 보여줬지만, 훗날 쇼군에 올랐을 때 이에야스의 행동들을 보면 노부나가를 진정 좋아했는지는 알 수 없다.

한가지 일화가 있는데, 오다가에서 이에야스의 아들에게 시집보낸 딸은 도쿠가와가를 감시하는 역할을 했다.

그러던 중 노부나가에게 이런 편지를 보내게 되는데,

"시어머니(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부인, 이마가와 가문의 여자였다.)는 아직도 시아버지를 증오하고 있습니다. 제 남편 또한 시 어머니의 뜻에 동조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에 노부나가는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불러 사실관계를 캐묻고, 노부나가를 두려워하던 이에야스는 3일을 금식하며 괴로워 하다 자신의 아들을 자신의 손으로 죽이라고 명하고, 그로 인해 키요스 동맹은 더욱 더 굳건하게 이뤄줬다.

 

 

5. 오다 노부나가 사망 이후

혼노지의 변으로 오다 노부나가가 사망하자, 강건하던 오다가는 흔들리고 찢어진다.

이때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도 기회가 찾아온듯 했으며, 이에 이에야스는 다케다 멸망 후 공백지가 된 땅을 손에 넣으며 세를 키웠다.

그리고 오다가의 운명을 결정짓게 될 키요스 회의가 열리게 되는데, 이는 오다가의 가신들이 모여 누구를 섬길지 의논을 하려고 모인 회의였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노부나가와 함께 죽은 노부나가의 적자 노부타다의 아들을 옹립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오다가의 맹장 시바타 카츠이에는 삼남인 노부타카를 지원했다.

양 군은 싸우게 됐고, 히데요시가 승리함으로 오다가는 히데요시에게 기우는 듯 했다.

여기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차남인 노부카츠를 지원하게 되고, 마침내 히데요시와 이에야스의 군대가 싸우게 된다.

코마키 나가쿠테라고 불리는 전투인데, 이 전투에서 도쿠가와는 히데요시를 갖고 놀게 된다.

그야말로 처참하게 털어버린다.

하지만 전투에선 승리했지만, 전략에 능했던 히데요시가 차남 노부카츠와 화해하게 되면서 자신은 싸울 명분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이에야스도 결국은 관백에 오른 히데요시에게 항복하게 되고 그 부하를 자처하게 된다.

 

 

6. 임진왜란

일본 전국시대를 다루기에 빼먹을 수 없으면서도 민감한 문제가 임진왜란인데, 히데요시는 이에야스에게 조선 출병을 명하지만, 이에야스는 관동 일대의 반란 토벌을 핑계로 명령을 거부한다.

어찌됐건 이 결과는 훗날 도쿠가와 막부가 조선과 친교를 맺는 중요한 명분이 되었다.

 

 

7. 히데요시 사후

드디어 히데요시가 죽었고, 참고 참아왔던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그 야욕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우선, 히데요시의 가신들을 포섭하기 시작했고, 이에 도요토미가의 2인자였던 이시다 미츠나리와 척을 지게 된다.

그리하여 전 일본의 군대를 모아두고 동 서로 나뉘어 싸우게 되는 세키가하라 전투가 일어나게 된다.

자세히 다루기엔 너무 길고, 결과적으로 도쿠가와가 승리하며 일본 통일에 가까워졌다.

이후 도쿠가와는 조선에 공식적으로 사과하며, 임진왜란은 전적으로 히데요시의 뜻이었음을 밝히고 포로로 잡혀왔던 조선인들을 풀어준다.

 

 

8. 오사카 전투

도쿠가와 일생의 마지막 전투이자 위기로, 도쿠가와를 따르는 모든 가문이히데요시의 본거지였던 오사카 성을 두고 싸운 전투이다.

도요토미가는 비록 히데요시가 죽고 없었지만, 그 막대한 재산을 통해 10만의 낭인들을 끌어모은다.

하지만 도쿠가와의 군대는 무려 20만이었다.

이때 도요토미가의 장수로 활약했던게 일본 최후의 용사로 불렸던 사나다 유키무라였다.

참고글 : https://peacefulbreak.tistory.com/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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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끝끝내 도쿠가와를 저지하는데에는 실패했고, 결국 이에야스는 일본을 통일하게 된다.

 

 

9. 도쿠가와 사천왕

도쿠가와를 따르던 유능한 네명의 장수를 지칭한다.

사카이 타다츠구
혼다 타다가쓰
사카키바라 야스마사
이이 나오마사

그 중 하나인 혼다 타다가쓰에 대해 다뤄보면,

실제로 사슴뿔 모양의 장식을 단 투구로 유명하다.

혼다 타다가쓰는 도쿠가와 가문 최강의 장수였다.

톤보기리라 불리는 긴 창을 사용했는데 그 창대만 6미터에 이르는 기형적인 무기였다고 하며, 그 이름은 잠자리가 창대에 앉았다가 잘리는 것에서 유래했다.

혼다 타다가쓰는 일평생 57번의 전투를 치뤘는데, 그 자신이 최전선에서 무기를 휘두르는 장수였음에도 몸에는 어떠한 상처도 없었다고 한다.

오다 노부나가로부터, 도쿠가와 가문 최고의 장수라 불렸고 도요토미 히데요시로부터, 이에야스에겐 아까운자, 고금 제일의 일본 장수라고 불렸다한다.

 

 

10. 결론

일본 전국시대의 3영걸중 최후의 승리자가 바로 도쿠가와 이에야스였다.

그리고 그 인물들을 표현한 말로 이런 말이 있다.

 

두견새가 만약 울지 않으면?

오다 노부나가 - 죽여버려라(殺してしまえ)

도요토미 히데요시 - 울게 만들어 보이겠다(鳴かしてみしょう)

도쿠가와 이에야스 - 울 때까지 기다리자(鳴くまで待とう)

 

이는 능력이 있는 부하에겐 관대했지만, 능력 없는 부하에겐 매몰찼던 노부나가.

꾀에 능했던 도요토미 히데요시.

인내의 끝을 보여준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잘 표현하는 문장이다.

도쿠가와는 자신의 능력의 한계를 알았기에 제환공, 진문공, 미나모토노 요리토모 등을 존경했다고 한다.

특이하게 일본인들이 존경하는 미나모토노 요시츠네는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도쿠가와가 존경한 인물들의 특징은 자기가 부족한 부분은 인재들에게 맡기는 군주였다는 점이다.

지금의 일본에선 재평가가 이루어져 그리 인기가 많지 않다고 하지만 아무래도 전국시대 최후의 승리자니까 대단했던 인물임에는 틀림없다고 볼 수 있다.

참고로 오다 노부나가가 죽은 나이가 49세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은 나이가 62세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무려 75살까지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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