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신의 채찍 아틸라의 유목민 '훈족'
기원전 10000년쯤 인간은 이제 동물을 단순히 사냥만 하는 것이 아닌, 가축을 키우는 지능을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여러 동물들을 잡아두고 하나씩 잡아먹는데,
그 중에는 '말'도 있었다.
하지만 그당시 사람들은 말을 잡아먹기만하지 탈 생각은 못했는데 왜냐하면 그 당시 말은 타기에 부적합 정도로 작았다.
근데 기원전 5000년 드디어 말을 타고다니기 시작했다.
일단 기본적으로 말은 발가락도 하나뿐이고, 자신을 방어할만한 수단이 뒷발차기밖에 없다. 그래서 상위 포식자가 나타나면 빠르게 달려야하니 말은 빠르고 오래달리는 쪽으로 진화했다.
어쨌든, 그 당시 몽골, 우크라이나 등 동쪽의 나라들은 나무도 거의 없고 끝도없는 초원이였는데 보다시피 먹을거는 있어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그 당시 사람들은 '그렇다면 가축을 몰고 풀을 먹이며 계속 이동하는것은 어떨까?' 라는 생각을 했다.
이게 유목민의 시작이다.
하지만 유목민들의 삶은 고달팠다.
다른 부족이 자신들의 양이나 말을 훔쳐가지 않는지 감시해야하고 부족간의 전쟁도 끊이지 않았다.
그래서 유목민들은 부족한 물자를 얻기위해 주변 문명국들을 약탈하는 경우가 잦았다.
물론 이러다 역으로 토벌되어 죽는 경우도 많았고, 주변국들이 모두 '타도 유목민!'들을 외쳤다.
그러나 유목민들은 싸움 하나는 정말 잘했다.
그 당시에는 '등자'가없었기 때문이다.
등자는 쉽게 말하면 말을 탈때 균형을 잡기위해 사용하는 물건인데, 이게 단순하게 보이지만 이게 인류 전쟁사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할 정도로 혁신적인 장비였다.
북방유목민들이 기원전 400년쯤 만들었다.
그런데 유목민들은 그런게 없어도 말위에서 살다시피였고, 늘 전쟁과 약탈을하는게 일상이자 인생이였으 말이 익숙치않은 농경민족들보다 훨씬 잘싸웠다,
흉노같은 경우에는 전국시대부터 철기를 사용했다.
기원전 3세기쯤 '흉노'가 나타났다.
이들은 그저 유목민 부족이 아니라 아예 유목제국을 세워버렸는데, 정말 강했다.
흉노제국의 건국자는 투멘이었는데, 그의 아들 묵돌이 아버지를 살해하고 스스로 선우(흉노에서 왕을 말하는 말)의 자리에 오른다.
묵돌은 국가를 정비하고 영토를 확대한다. 기원전 201년 한을 세운 최고 심복이었던 한신은 흉노군에게 포위 당하자 투항해 흉노 편에 가담한다. 이에 유방은 직접 대군을 지휘하여 흉노를 공격하다 묵돌에게 포위당해 결국 화친 조약을 맺게 된다.
전쟁에서 진 한은 흉노에게 공주도 바치고 공물도 바치게 된다.
물론 나중에 한나라에게 멸망당한다.
다음은 훈족이다.
일단 훈족은 흉노의 후예라는 설이 있는데, 그 이유는 이름이 비슷해서 뿐만 아니라 동로마 역사가가 훈족의 모습에대해 기록하길,
“〔그들은〕 몸집이 뚱뚱하다. 다리는 안으로 굽은 안짱다리이고 피부가 거무스레하다. 귀가 빳빳하고 코가 넓죽하다. 눈은 위로 찢어지고 머리털이 곤두서 있다. 마치 빗자루를 거꾸로 세운 것 같다.”
딱봐도 동양인을 말하는거 같으며, 동양계 유목민이였던 흉노가 서쪽으로 민족이동을 하여 서유럽에 정착했다는 근거 중 하나가 된다.
그리고 서기 89년, 북흉노는 한나라와 몽골 초원에서 한 번 전투를 했는데, 여기서 흉노가 패배해 여기저기 도망을 갔다. 이들은 훈족의 발원지에 가까운 곳으로 도망을 갔고, 이들이 계속 서쪽으로 갔으면 이들이 흉노인 것도 말이 된다.
훈족들은 볼가강 유역에 있던 알란족을 공격하고 가볍게 그들을 제압하는 데 성공하였다.
발라미르 혹은 발람베르라고 알려진 수령이 지휘한 이 군대는 얼마 안 가 드네프르 강 서쪽에 있던 동고트족을 공격했다. 동고트족은 패전했고, 그들의 족장 에르마나릭은 절망에 빠져 자살했다. 그의 후계자 비씨미르 역시 얼마 못 가 전사했고 동고트 족은 이 기병대에게 복속당했다. 그리고 이를 지켜본 서고트의 족장 프리트게른은 겁을 먹고 자신의 민족들을 이끌고 로마제국으로 도피한다.
로마 역사가 암미아누스는 훈족에 대해 말하길,
"(전략) 그들은 짐승처럼 산다. 그들은 음식을 요리하거나 양념을 치지 않고, 안장 밑에 놓아두어 부드럽게 된 들풀의 뿌리와 고기를 먹고 산다. (중략) 늘 유목생활을 하기 위해 그들은 어렸을때부터 추위, 배고픔, 갈증으로부터 단련되었다. (중략) 그들의 옷은 면포로 된 튜닉과 쥐가죽을 모아서 만든 겉옷으로 되어있다. (중략) 그들은 말위에서 생활을 하는데, 때때로 다리를 벌리고 그 위에 앉기도 하고 때로는 여자들처럼 한쪽으로 다리를 모아 걸터앉기도 한다. (중략) 전투에서 그들은 적을 급습할 때 놀랄 정도로 큰 소리를 지른다. 만약 적이 저항하면 흩어졌다가 다시 빠른 속도로 돌아오면서 도중에 있는 모든 것을 부수고 뒤엎어버린다. 그들은 요새나 진지를 어떻게 함락하는지 모른다. 그러나 놀랄 만큼 먼 거리에서 쇠같이 단단하고 날카로운 뼈로 촉을 만든 화살을 쏘는 기술에서 그들은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나다."
요약하면 '야만적이고 말 잘타고 싸움을 잘한다.'가 될 것이다.
그리고 안그래도 무시무시한 훈족을 더욱 공포의 대상으로 만든인물이 나타났다.
'신의 채찍'이라 불리는 아틸라였다.
434년 삼촌 루기라 혹은 루아스라고 불리던 훈족의 왕이 죽자 그의 형제 문주크의 두 아들, 블레다와 아틸라가 훈족을 공동통치하게 되었다.
형제 중 호전적이었던 아틸라는 얼마 안 가 동로마 제국을 습격, 동로마 제국이 바쳐야 될 금의 양을 2배로 늘리고 동로마와 훈의 복속민들의 접촉을 차단했다. 이후 그는 니벨룽겐의 노래의 기원이 될 부르군트 정벌전을 436년에 감행, 부르군트의 왕을 포함하여 2만명을 몰살시키고, 441년 동로마에 대한 전쟁을 개시, 나이수스를 점령하고, 필리포폴리스까지 약탈했다.
445년 형 블레다가 죽은 후 아틸라는 훈족을 단독 통치했다.
그의 영토는 독일에서 볼가강까지 이르렀고, 그에게 예속된 종족은 45개나 되었다.
신의 채찍이란 수식어가 붙어다닐 정도였다. 하지만 아틸라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447년 동로마에 대한 재침공을 단행했다. 콘스탄티노플 성벽에 훈족의 군대가 다다르는 한편, 또 다른 훈족의 군대는 테르모필레까지 진군하였다. 동로마 제국은 이당시 전염병과 기근으로 내환을 겪고 있어 대응이 늦었다. 거기다가 항상 그랬지만 상당수 병력들이 국경지대에서 사산조 페르시아와 대치하고 있었기에 동로마제국으로써는 아틸라의 군대를 제대로 상대할 없었다.
결국 비잔틴제국은 449년 조약을 맺고 영토를 내주게 된다.
이제 관심을 서쪽으로 둔 아틸라는 서로마를 공격하여 서로마와 고트족 연합군에게 승리를거두고 이탈리아 반도로 향한다.
로마 성벽까지 도달하고, 이제 천년제국의 수도가 불바다가 됄 위험에 빠졌는데 교황 레오 1세가 아틸라를 설득하고 아틸라는 후퇴한다.
기독교의 전설에서는 아틸라가 성 베드로 등이 레오 1세를 호위하는 환상을 보고 놀랐다고 하지만 실제로 그럴리는 없고. 레오 1세의 뛰어난 협상 능력 덕에 로마가 무사하게 된 것이다.
이후 아틸라는 453년 일디코란 이름이 전해져 내려오는 게르만인 신부와 결혼하고 첫날밤에 죽었다. 그의 죽음은 복상사일 수도 있지만 확실하진 않다고 한다.
전 유럽을 공포로 몰아넣은 신의 채찍 아틸라치고는 허무한 최후이다.
아틸라가 죽고 그의 아들 엘락이 뒤를 잇자마자 훈족의 지배에서 벗어나려는 동고트족과 게피다이족의 반란이 터졌다. 454년 판노니아의 네다오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훈족은 반란군에게 패배했고 엘락은 살해되었다. 이로 말미암아 훈족은 판노니아에서 쫓겨나 러시아의 스텝지대로 쫓겨나게 되었다.
한편 아틸라의 다른 아들 뎅기자르는 군대를 이끌고 동로마를 찾아가 콘스탄티노플이 그에게 조공을 바칠 것을 요구했지만, 아틸라가 없어지고 훈족이 약화된 지금 동로마가 그렇게 할 이유는 없었고 동로마는 오히려 뎅기자르가 무릎꿇을 것을 요구했다.
이 말을 듣고 분노한 뎅기자르는 동로마 제국을 공격했으나 당연히 대패, 전사하고 그의 머리는 콘스탄티노플의 콜로세움에 걸린다. 형제를 두 명이나 잃은 아틸라의 아들 에르나크는 동로마 제국에 자비를 구걸, 신하가 되는 대신 땅을 달라고 청원했고 동로마제국은 현재의 도브루자 지역을 그들에게 주어 에르나크와 그 부하들이 그 곳을 수비하게 했다.
그 후 훈족은 떠돌다 다른 유목민족에 동화가 돼었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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