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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원대륙에는 수나라가 멸하고 당나라가 들어섰다.

당나라는 서쪽에 고창국과 토욕혼을 정벌해 수나라보다 더 넓은 영토를 확보했다.

그리고 고구려를 굴복시키지 못했다.

631년, 당태종은 고구려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당태종은 수양제와는 그 그릇 자체가 달랐다. 

지난 수나라의 전쟁에서 큰 공을 세운 영류왕 고건무.

그는 왕이 되자마자 태도를 바뀌기 시작한다.

당태종의 요구대로 경관을 허물고 친당정책을 펼친다. 

또한 고구려의 지형이 그려진 지도를 당 사신에게 보낸다.

그렇다고 영류왕은 국방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비사성에서 부여성에 이르는 천리장성을 짓기 시작했다. 

공사기간은 무려 16년이나 걸렸다. 

영류왕은 천리장성의 건설 책임자로 동부대인 "연개소문"을 임명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귀족들은 연개소문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의 잔인하고 포악한 성격 때문이었다.

영류왕은 정치적인 걸림돌로 여겨진 연개소문을 제거할려고 했었다.

하지만 연개소문의 수하에 의해 이 사실이 발각되자,

연개소문은 이를 빌미로 642년 10월, 쿠테타를 일으킨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연개소문은 영류왕을 살해하고 그 시체를 토막내었으며, 간신배 100여명을 숙청했다고 전해진다.

연개소문은 영류왕의 조카 "고장"을 왕위에 앉힌다.

이가 바로 고구려의 28대왕 "보장왕"이다.

연개소문은 스스로 대막리지에 올라 고구려의 실권을 장악한다.

한편, 이 소식을 들은 당태종은 크게 격분한다.

나름 당나라와 친해질려고 노력했던 영류왕이 연개소문에 의해 잔인하게 살해됐다는 소식에 크게 분노한다.

이를 빌미로 당태종은 고구려 침공 준비를 한다. 

한편, 고구려에 체류중이던 당나라 사신 진대덕이 고구려 전역을 돌며 군사지도를 그리고 있었다.

연개소문 : 이세민이 이 종간나... 감히 사신을 보내서 고구려의 지도를 그려?

연개소문은 이에 격분해 당나라 사신을 동굴에 가둔다.

645년 2월, 당태종은 마침내 전쟁 선포를 한다. 

연개소문 : 올테면 와보라우! 먼저 오는 놈들부터 개박살 내주갔어!

당태종은 육지와 바다를 통해 고구려를 공격했다.

요동성만 고집하다 실패한 수양제의 경험을 거울삼아 요하전선에 배치된 여러성을 공격해 후환을 없애고, 요동성을 공격했다.

당나라군은 수나라 백만대군이 함락시키지 못했던 요동성을 함락시켰다. 

고구려는 비사성, 요동성, 건안성, 신성, 백암성, 개모성까지 차례로 함락된다. 

이제 남은건 안시성 뿐이었으며, 안시성이 함락되면 평양성이었다. 

당나라군은 성을 포위하며 파죽지세로 몰아붙였다.

그러나 안시성은 쉽게 함락되지 않았다.

안시성 주민들까지 포함해 약 10만명이 당나라에 대항하였다.

연개소문은 특단의 대책을 내놓는다,

연개소문은 서쪽으로 사신을 보낸다.

연개소문은 설연타를 움직여 당나라 후방을 공격하였다.

그 사이, 안시성의 고구려군은 공방전을 이어가며 시간을 최대한 끌었다.

당태종 : 고구려, 이 조그만 자식들이!

불안감과 분노로 판단이 흐려진 당태종은 엄청난 무리수를 두기 시작한다.

바로 토산을 쌓는 것이였다.

군사 50만명을 동원해 60일동안 쉬지않고 토산을 쌓았다. 

고구려군 : 와... 역시 대륙의 기상이란...

토산은 안시성보다 높았다.

당나라 대군은 언제든지 공격 준비가 되어있었다.

당나라군 : 우리에겐 토산이 있다! 전부 돌격!

고구려군 : 아 잠깐만, 이건 아니잖아!

고구려군 : 개미굴의 개미도 저거보단 적겠다!

그러나 당나라군은 예기치 못한 변수를 만난다. 

갑자기 폭우가 쏟아졌다.

당나라군 : 잠깐만! 왜 하필 지금 비가 내리고 난리야!

토산의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당나라군 : 어어...? 이거 무너진다! 모두 도망쳐라!

토산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당나라군 : 으악! 왜 하필 비가내려서!

토산이 붕괴되었다.

고구려군은 이때 성문을 활짝 열어 공격을 감행한다.

고구려군은 당나라군에 최대한의 피해를 입히기 위해, 죽을 힘을 다해 당나라군을 공격했다. 

그리고, 토산을 빼았는데 성공한다.

당태종은 토산을 빼앗긴 장수의 목을 친다.

645년 9월, 마침내 당태종은 철수한다.

천하를 통일한 황제로 떠났다가, 패배자로 돌아온 초라한 귀향길이였다.

이후 당태종은 귀국 후, 죽은병사들의 원혼을 달래기 위해 제단을 만들고 제사를 지냈다.

649년, 당태종은 병을 앓고 누웠다. 

649년, 당태종은 고구려를 원정을 그만두라는 유언을 남긴뒤 숨을 거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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