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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바야흐로 597년.

고구려에 수나라에서 보낸 한통의 국서가 도착했다.

영양왕 : 읊어보라우.

그것은 신하의 나라가 되라는 협박이였다.

영양왕 : 이 간나들이 머리가 어케 된기 아이야? 

영양왕 : 내래 고구려의 패기를 보여주갔어!

598년, 영양왕은 말갈족 1만을 이끌고 수나라를 선제 공격한다.

이것이 고수전쟁의 시작이였다.

그로부터 6년후 수양제가 황제에 오른다.

양제는 양쯔강에서 북경에 이르는 대운하를 건설한다.

지금도 중국에서는 물자를 나르는데 이 운하를 사용하고 있다.

양제는 물길을 통해 대륙을 남북으로 연결했다. 

양쯔강의 풍부한 물자를 북쪽으로 끌어올리기 용이해졌다.

양제는 남쪽으로 베트남의 임읍국, 유구국까지 정벌했다.

동아시아의 모든 국가가 수나라에 조공을 바쳤다. 

수나라는 중원과 북방은 물론 동남아시아까지 복속시킨 대제국이였다.

수양제는 당시 동아시아의 패권을 가진 인물이였다.

수양제는 북방의 맹주였던 돌궐까지 신하국으로 삼았다.

그러나 그에게는 굴복시키지 못한 한 나라가 있었다.

돌궐인이 만든 비석 "궐특근지비"

이곳에는 눈에 띄는 이름이 있다.

뵈클리, 우리말로 하면 고구려라는 뜻이다.

수양제는 계민가한을 만나기위해 직접 동돌궐에 왔다.

계민가한의 막사를 방문한 수양제.

그곳에서 고구려 사신과 마주친다.

고구려는 당시 수나라에게 굴복하지않는 유일한 나라였다.

수양제는 고구려를 방치하면 다른 북방 민족들이 이탈할까봐 걱정했다.

이 소식은 즉시 고구려에 전달된다.

군 지휘권은 영양왕의 동생 고건무에게 있었다.

고구려의 최전선은 바로,

요동성이였다.

고구려를 거쳐가는 제1의 관문이자 아주 튼튼한 철옹성이였다.

요동성은 성벽의 일부를 돌출시켜 적을 여러 방면에서 공격하는 치가 있으며,

성벽을 어긋나게 만들어 적을 가두는 어긋문이 있었다.

요동성은 특유의 방어체계를 갖추고 있었다.

612년 1월, 수나라 113만 3천 8백 대군이 고구려를 침공한다.

고구려군 : 이 간나들 아주 떼거리로 몰려왔구만 기래!

백만대군 : 돌격!

고구려군 : 저 간나들 못 오게 하라! 쏘라우!

백만대군 : 으악!

고구려군 : 불화살을 쏴라!

백만대군 : 으악!

넉 달이 지나도록 요동성은 함락되지 않았다.

수나라 대군은 제대로 진격도 못하고 발이 묶였다.

수양제 : 야이 썩을 놈들아! 백만대군 가지고 대체 뭐하는거야!

결국 수양제는 요동성 공격을 포기하고, 대신 30만 별동대를 꾸려 요동성을 비롯한 고구려의 모든 성을 다 지나쳐 압록강을 건너 평양으로 바로 진격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

수양제는 고구려 전쟁에 대비해 배 300척을 만들었다.

이 노역이 너무 고달파 백성들은 자신의 손과 발을 스스로 잘라 징집을 피하려 했다.

그들은 그것을 복스러운 손과 복스러운 발이라고 불렸다.

수양제의 전략은 이렇다.

래주에서 출발한 수군 4만과 별동대 30만이 평양에 합류해 평양성을 협공하는 것이였다.

근데 문제는 수나라 수군이 육군에 비해 너무 일찍 도착했다.

수나라 수군 4만명은 별동대와 합류하기도전 먼저 선제공격을 한다.

수나라 수군 : 아무도 없다! 단숨에 성을 점령하라!

고구려군 : 이때다! 전부 죽여버리라우!

수나라 수군 : 젠장, 속았다! 으악!

고구려군은 성을 비워놓은 척하며, 수나라 수군을 성안으로 유인해 기습공격했다.

고구려군 : 한놈도 살려보내지 말라우!

이때 평양성 전투를 지휘한 사람은 바로 고건무였다.

결국 별동대는 보급에 큰 차질이 생긴다.

우중문, 우문술 : 이러면 이거 완전히 나가린데...

고구려군은 수나라군을 상대로 게릴라전을 펼친다.

고구려군은 히트 앤 런 무한 반복하며 수나라군을 괴롭혔다, 

그러던 어느날,

한 지휘관이 홀로 수나라 막사를 방문한다.

그가 바로 그 유명한 "을지문덕"이였다.

수나라 장군 : 멈춰라! 누구냐!

을지문덕 : 투항하러 왔수다. 날래 안내하라우.

수나라 장군 : 일단 기다리시오.

수나라 병사1 : 에이! 이거 먹고 어떻게 싸우라고!

수나라 병사2 : 개도 이런건 안 먹겠다!

수나라 병사3 : 개밥이라도 좋으니까 양 좀 많이 줬으면...

거짓항복을 하고 몸소 적진에 들어간 을지문덕은 수나라 병사들이 부상과 굶주림에 시달리는것을 목격한다.

을지문덕 : 그렇단 말이지...

정탐을 마친 을지문덕은 수나라 별동대 사령관 우중문에게 철군하면 항복하겠다고 거짓말을 한다.

거기다 퇴로를 열어주겠다는 약속까지 해주었다.

그리고 항복의 절차를 위해 돌아가야 한다며 수나라군의 진영을 유유히 빠져나간다.

수나라 장군 : 장군! 다시 돌아오라는 우중문 장군의 명이오!

을지문덕 : 내래 가스불 끄고 온다는 걸 깜빡했수다! 날래 끄고 돌아오겠수다!

우중문 : 가스불? 속았다...

을지문덕, 다음에 보면 가만히 두지 않겠다...

우중문 : 하... 이거 진짜, 진짜 나가린데... 그냥 철수할까...

을지문덕은 시 한편을 우중문에게 보낸다.

"귀신같은 책략은 하늘의 이치를 깨달았고,"

"신묘한 셈은 땅의 형편을 다하였도다."

"싸움에 이겨 공이 이미 높으니,"

"원컨대 만족함을 알고 그만두기를 바라노라."

이게 그 유명한 "여수장우중문시"다.

철수하면 고구려왕이 수나라 황제를 찾아가겠다는 퇴각의 명분까지 제시했다.

결국 우중문은 철수한다.

이 상태로 평양성 함락은 불가능하다는걸 알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의 청천강인 살수에 이르렀다.

하지만, 을지문덕은 수나라군을 온전히 돌려보낼 생각이 없었다.

기습이 시작되었다.

고구려군 : 모두 죽여라!

고구려군은 수나라 군대가 강을 절반쯤 건너기를 기다렸다가, 대대적인 공격을 퍼붓는다.

수나라군 : 젠장! 우린 이제 죽었다...

수나라군은 살수에서 사실상 전멸하였다.

이를 살수대첩이라 부른다.

30만명중 살아돌아간 자가 고작 2700명뿐이였다.

수나라에서는 이런 민요가 전국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1년후 613년 수양제는 30만대군을 이끌고 고구려를 재침공했지만 실패하고, 그로부터 또 1년후 614년 10만 대군을 이끌고 고구려를 침공했지만 별 소득도 없이 철수한다.

618년 수양제는 자신의 수하인 근위대장 우문화급, 우문지급형제한테 살해당하고 만다.

결국 수나라는 멸망한다.

후세사람들은 수양제의 삶을 이렇게 평가했다.

괜히 잠자는 동방의 호랑이, 고구려를 건드리다가 수양제는 모든것을 잃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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