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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C의 문장

 1672년 영국의 찰스2세는 왕립아프리카회사 Royal African Company (RAC)에 노예무역에 대한 독점권을 수여한다.

이 회사는 찰스 2세의 동생인 요크 공작 제임스가 만든 회사니까 가족에게 특혜를 준 것이다.

이후 약 90년간 RAC는 100만 이상의 노예를 서아프리카에서 아메리카 대륙으로 운반, 판매한다. 

엄청난 이익을 가져다 주는 노예무역에는 바다와 접한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이 뛰어들어서, 약 300여년 간 적게는 800만 에서 많게는 1400만의 노예가 아프리카에서 납치되어 팔려 나갔는데 200만 - 400만 명의 노예가 항해 중 사망했다고 한다.

이 노예 무역은 아프리카와 아메리카 대륙의 인구 지도를 확 바꿔놓게 되고 향후 서반구의 인류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

당시 영국의 노예 상선단

당시 강대국 중에는 러시아 제국만이 노예 무역에 참가하지 않았고, 심지어 1845년에는 러시아 제국 법령으로 노예 무역을 해적 행위와 동급으로 취급하여 무조건 사형에 처하게 된다.

하지만 러시아는 1861년 농노 해방령 선포 때까지 내부적으로 노예와 마찬가지인 농노가 있었다는 게 아이러니한 점이다.

프랑스 화가인 프랑수아 어거스트 바이야르가 그린 아프리카의 한 항구에서의 노예 매매 모습

위 사진은 프랑스 화가 프랑수아 어거스트가 그린 것인데, 아프리카의 한 항구의 노예 매매 모습을 그린 것으로, 흑인 노예들을 잡아온 흑인 추장이 백인 노예상과 흥정을 하고 있고 오른쪽의 백인 귀족은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오른쪽은 노예들을 묶어 놓은 기구들 그림

최대한으로 노예들을 실어 나르기 위해 빼곡히 선실에 눕힌다.

영국의 노예선 브루크스의 운송 그림표

이렇게 바다를 건너는데 노예들 중 10 - 20%는 항해 중 죽었다.

노예선의 단면 모형

오른쪽은 네덜란드의 노예선인데 상부 갑판의 격리벽에는 뾰족한 창살을 꽂아 노예들이 백인 선원들 구역으로 넘어오지 못하게 했다.

노예선의 폭동

이 영국 노예선 그림에서 보듯이 노예선에서는 자주 폭동이 발생하여 선원들이 총으로 폭동을 진압하였다.

프랑스 노예선

 이건 프랑스의 노예선인데 노예와 함께 일반 화물을 같이 운송하였다.

영국의 노예선

폭동이 자주 발생하는 항로에 투입된 영국의 노예선인데, 배의 크기가 작고 노예들을 상갑판 바로 밑의 좁은 공간에 집어넣어 아예 움직이지 못하게 한 후 운반하였다.

당연히 이런 배에선 항해 중 노예 사망율이 높았다.

노예 무역의 주 항로도

남미의 브라질과 카리브해의 섬들로 많이 팔렸고 아랍 지역으로도 상당수가 판매된 것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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