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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톤 전투 이후에도, 페르시아의 그리스 침공은 이어져.
마라톤 전투 시기의 페르시아 황제 다리우스가 죽고 뒤를 이은 황제는
그의 아들이자 영화' 300'으로도 유명한 크세르크세스야.



* 영화 300에서 처럼 "너희들의 흙과 물을 바쳐라."라고 요구하는 황제는 선대 황제 다리우스야.
다들 알다시피 저 요구에 대한 대답은 THIS IS SPARTA!!라고 외치며 사신을 우물에 던져버린 뒤,
"그 밑에 얼마든지 있으니 가져가세요ㅎㅎ"였지.(스파르타뿐만 아니라 아테네도 사신을 죽여버림)
이 일 때문에 크세르크세스는 이후 자기가 이끄는 침공 전,
다른 그리스 도시에는 항복을 권해도 아테네와 스파르타에는 권하지 않았어. 대답이 뻔했거든.




<영화 300에서 괴물로 묘사되었지만, 실제로는 정말 어느정도 관대한 인물이었다.
그리스 침공을 위한 배다리가 폭풍에 부서지자 건설책임자 대신 바다에 죄를 물었다고
(채찍질 300대, 뜨겁게 달군 쇳덩어리 먹이기)>

 
아버지를 이어 크세르크세스는 대군을 일으켜 그리스를 침공해.
페르시아에 침공에 맞서 그리스의 30개 폴리스(도시국가)는 동맹을 결성해.


<"육군은 스파르타가, 해군은 아테네가 지휘하자.">

페르시아 침공에 맞서 그리스군은
중장보병으로 그리스 북부 관문인 템페 계곡을 틀어 막으려 했지만,
계곡 주변에 우회로가 있었기 때문에 계곡 방어 계획은 폐기돼.

이후 그리스군은 방어선을 남쪽으로 내려서,
육로와 해로가 인접한 교통요지인 테르모필레에 지상군을 배치하고,
근처 아르테미시움 해협에 해군을 배치하기로 해.
또 방어 실패 시를 대비해 시민들을 후방인 펠레폰네소스 반도로 이주시키기로 했지.


* 항해기술이 미비했던 당시 해군은
먼 바다라로 나가지 못하고 해안을 따라 이동해야 했을거야.
지상군과 합동하고, 물자도 나르고. 



<그리스 육군은 테르모필레, 해군은 아르테미시움을 지키기로 했다.>

크세르크세스의 페르시아군이 테르모필레에 도착하자
그리스 육군 지휘를 맡은 스파르타의 왕 레오니다스는
소수의 병력을 이끌고 이에 맞서.


<테르모필레의 레오니다스 - 루이 다비드.(실제로는 나체가 아니라 갑옷을 입었겠지)
"상속할 자식이 있는 스파르탄만 나를 따르라." 그 수가 300명이었다더라.>




*참고
테레모필레(Thermopylae)는 그리스어로 '뜨거운 통로'라는 뜻이래.
이름부터 멋있지? 그래서인지 이 전투를 배경으로 한 소설 중엔 
제목이 '불의 문'인 것도 있어. 제목은 멋진데 재미는 없더라. 


*참고
전투에 나서기 전 레오니다스는 신전에서 신탁을 받아. (무당에게 점을 친거지.)



「라케다이몬(스파르타의 다른 이름)의 주민들아, 너희들의 운명을 듣거라.
너희들의 도시가 페르세우스의 자손(페르시아)에게 파괴되든지
아니면 헤라클레스(스파르타)의 혈통을 이어받은 왕이 죽어
라케다이몬의 모든 주민이 애도하게 되리라.」
(그리스인들은 스파르타는 헤라클레스의 자손이고, 페르시아는 페르세우스의 자손이라 믿음,)


양측의 병력을 살펴보면,
페르시아는 전투병 200만 (+지원세력 250만)의 대군

그리스군은 스파르타 시민 300, 다른 그리스 동맹군 6000,
+ 스파르타 헤일로타이(노예) 900명 등 약 7천명 정도였어.



<좌 스파르타 중장보병, 우 페르시아 정예병 이모탈. 스파르타는 중무장, 페르시아는 경무장>

* 이야기들은 선(그리스)의 영웅성과 악(페르시아)의 허접함,
재미를 강조하기 위해 엄청나게 과장되었을 거야.
그래서 7000의 그리스군을 300 스파르타 영웅들로 축소하고
페르시아군은 엄청난 대군으로 묘사했겠지.
현대 학자들은 당시 페르시아군 규모를 많아야
30만으로 평가하고 있데. 그래도 엄청난 병력이네.

 

적 대군에 맞선 중요거점에 꼴랑 7천 투입한걸 보면
그리스가 뭔 생각을 했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테르모필레는 대군이 주둔하기 힘든 좁은 지역이었고,
그리스 동맹이라 해도 전투보다는 항복을 원해서 
전투에 소극적인 도시들도 있던 탓에 병력충원이 원활치 않은 점도 있었어.
또 지난 글에서도 언급했듯 그리스 중장보병들은 기본적으로
자영농민이기 때문에 장기간 전투수행(농지 유지불가)은 부담이었어.


* 글이 너무 길어질까봐 자세히는 안쓰지만
스파르타는 상당수의 노예가 생산직에 종사(착취)했기 때문에
시민들은 전투에만 집중할 수 있었어.

* 보통 그리스인들은 같은 그리스인들은 노예로 부리기 꺼려해
외국인 노예만 쓰다보니 그 수가 많지 않았지만, 
스파르타는 옆 도시를 점령한 뒤, 같은 그리스인이고 뭐고 노예로 착취했다.
이들을 헤일로타이라 불렀는데, 심심하면 죽이고, 전투훈련으로 죽이고,
숫자가 너무 많아져 반란이 걱정되면 살처분으로 정리했다. 


양군이 테르모필레에 대치했을 때,
페르시아의 관대한 황제 크세르크세스는 그리스군에게
좋은 조건을 제시하면서 항복을 권유했어.
"너희들의 무기를 내려놓거라."
이에 대해 레오니다스는 이렇게 말하면서 거절하지.
와서 가져가라.(μολὼν λαβέ/몰론 라베)”

 


<"와서 가져가라." 상당히 멋진 말이라 오늘날 서구권 군인들도 좋아한다.>

페르시아 대군의 위용에
그리스군이 스스로 무너질거라 기대했던 황제는
4일을 기다려 주지만, 그리스군은 그대로 버텼고,
결국 양측의 교전이 시작돼.


테르모필레는 자칫하면 낭떠러지로 떨어질 수 있는 좁은 산길이야.
이건 좁은 지역을 틀어막고 고지를 선점한 그리스군은
자신들의 장기인 밀집대형(보병방진Phalanx)을 구축해.
방패와 창으로 진형을 구축한 그리스 중장보병은
약점인 옆구리 따일 걱정없이 강력한 방어력으로 버텼고,
페르시아군은 일방적으로 썰렸지.
그렇게 2일이 지나갔어.



<테르모필레의 좁은 지형은 중장보병의 밀집대형 전투에 적합했다.>

그런데 2일째 밤, 희대의 트롤이 나타나.
사실 테르모필레에는 그리스군 진형을 우회할 수 있는 쪽길이 있었어.
이 엄청난 정보를 에피알데스라는 그리스 출신 트롤러가
페르시아군에게 팔아 먹은거지.


* 에피알테스 이미지는 영화에 나온 개극혐 밖에 안나오네. 극혐이라 안씀.
이 매국노는 나중에 페르시아가 전쟁에서 지면서 아무런 보상도 못받고
그리스인들한테 잡혀서 뭊음. 그리스인들이 얘를 얼마나 개트롤로 
생각했으면 이름이 현대 그리스어에서 '악몽'이라는 뜻이래.


페르시아군은 3일째 낮부터 이 쪽길에 병력을 투입했어. 
옆구리가 따일 위기에 빠진 그리스군은 후퇴를 결정해. 
하지만 좁은 지형의 이점을 잃는 순간 전멸이 뻔했기 때문에
본대가 후퇴할 동안 적을 막을 최후의 결사대가 필요했어.

스파르타 왕 레오니다스와 그를 따르는 300명의 스파르타인이 자원했고,
다른 그리스 도시인 테스피아이인 700명과 테베인 400명도 같이 남기로 했어.


<스파르타, 테스피아이, 테베>

* 이야기마다 테베군에 대한 평가가 달라.
어느 이야기에선 용감히 싸웠고, 어떤 이야기에선 비겁하게 바로 항복해.
이유는 테레 정부는 원래 페르시아에 항복하자던 비둘기파였거든.
그래서 테베군도 비겁하게 바로 항복했을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쪽도 있고
반대로 항복하자는 도시 분위기를 거슬르고 전장에 나섰으니
진짜 사나이일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쪽도 있어. 


결과부터 이야기하자면
남은 그리스군 1500명은 모두 죽고,
전투는 페르시아군의 승리로 끝나.



하지만 그리스군은 정말 잘 싸웠나봐.
전투를 관전하던 페르시아 황제가 빡쳐서
세 번이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게 만들 정도였다니까.



<그리스인들은 영화에서처럼 화살비를 맞아 죽었나봐. 실제 지역에서 청동화살이 엄청나게 발굴되었데 >

그리고 전투에서 죽은 그리스군들은 소기의 성과도 달성했어.
전투 자체는 페르시아군이 승리했지만,
후퇴한 그리스군은 상당한 병력을 보존할 수 있었어. 
또 그리스군이 테르모필레에서 번 시간, 다시 말해 페르시아군이 잃은 시간만큼
그리스 시민들의 후방 소개가 이루어질 수 있었고,
그리스의 전쟁준비도 가능했지.

여기에 희생한 이들을 위해 좋은 평가를 좀 더 해주자면
비장한 죽음이 남긴 강한 인상으로 인해
전투에 소극적이었던 그리스인들의 인식전환에도 영향을 줬데.
사기가 올랐나봐.


테르모필레 전투 이후,
페르시아군은 그리스 도시들의 항복을 받아주거나 파괴하면서 남하해.
그 유명한 아테네 도시도 박살이 나지만,
다행히 아르테미시움에서 후퇴한 그리스 해군이 사람들을 날라서 화는 면해.
그리스군은 펠레폰네소스 반도로 후퇴했고,
반도의 길목인 코린토스 지역에 성을 쌓아 페르시아군을 막으려 했어.
하지만 성을 쌓아도 페르시아 해군이 상륙하면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상황은 절망적이었지.




<펠레폰네소스 반도로 후퇴한 그리스군은 코린토스에 성을 쌓아 버텨보려 했지만, 페르시아 해군이 걱정이었다. >


상황이 이렇게 되자 미개한 그리스인들은 신탁을 받아 방도를 찾으려 했어
무당은 이렇게 말했지. 



"나무로 만든 성 뒤에 숨으면 살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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