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비아의 간략한 역사
지금의 이미지하고는 영 맞지 않지만 리비아의 해안가 지역은 그리스인들이 식민도시를 건설해서 당시에는 매우 번창한 지역이었다.
그리스인들이 건설한 도시 이름은 키레나이카(Cyrenaica)였다. 키레나이카는 영어 발음으로는 '사이레네이시아'인데 여기서는 키레나이카로 통일한다.
로마제국 시절에도 키레나이카는 로마인들의 도시가 되어 큰 융성을 이루었다.
로마제국이 망해가면서 리비아도 로마인들이 빠져나가는 공동화 현상이 심해지게 된다.
유럽 출신 야만족인 반달족이 북아프리카에 상륙하고 로마인들을 몰아내기 시작했는데
반달족은 종교 정책에 관용이 없었고 로마 카톨릭을 탄압했다. 그 때문에 로마인들이 도망친 것이다.
공공시설의 파괴를 의미하는 단어 반달리즘의 어원이 바로 반달족이다.
로마인들이 빠져나간 리비아는 유목민들이 들어오면서 문화적으로 쇠퇴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투르크제국이 리비아를 지배하면서 다시 역사 무대에 올라오게 된다.
그리고 문화적으로도 이슬람세계의 일부가 되었다.
식민지 건설 경쟁에서 다른 유럽 국가들에 한발 뒤쳐진 이탈리아는 본국에서 가깝고 비옥한 리비아에 눈독을 들이고
리비아에 식민지를 건설하기 위해 1911년 투르크(터키)와 전쟁을 벌였다.
실은 터키의 국부로 불리우는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가 장교 시절에 이 전쟁에 참여해서 이탈리아군과 싸운 적이 있다. (사진 가운데 검은옷 입은 사람이 아타튀르크)
결과는 터키의 패배였다. 비록 터키는 이 다음에 벌어진 영국과의 갈리폴리 전투에서 승리하지만 리비아에서의 패배는 발칸반도의 유럽인들에게 독립 의지를 고취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하지만 이탈리아 경제도 심각한 타격을 입었고 리비아에 식민지를 건설할 여력이 없었다.
그러다가 1922년 이탈리아의 총리에 취임한 무솔리니는 리비아에 식민지를 건설하겠다고 선언했다.
무솔리니는 로마제국 계승을 내세우고 있었기 때문에 리비아 식민지화는 나름 명분도 있었다.
문제는 두가지였다. 리비아는 이미 이슬람세계의 일부로 이탈리아군을 해방자로 보지 않았다는 점,
또 하나는 이탈리아군의 전투력이 심각하게 약했다는 점이다.
원주민들의 반란은 겨우겨우 힘겹게 진압했지만 영국군이 리비아에 진격하자 이탈리아군은 도저히 영국군을 막을 수 없었다.
결국 독일에 지원을 요청했고, 히틀러는 독소전쟁 중에 지중해가 뚫리는 사태를 막기 위해 롬멜 장군을 리비아에 파견했다.
그런데 롬멜은 방어선을 강화한다는 처음의 목표를 내버리고 영국군과 교전... 그리고 사막의 여우라는 명성을 세우며 처음에는 승승장구했다.
전투에서는 이기지만 전쟁에서는 패배한다는 말이 있는데 북아프리카 전선이 딱 그 꼴이었다.
결국 영국군의 물량공세를 견뎌내지 못하고 리비아는 영국군에게 점령되었다.
그리고 연합군은 이탈리아로 상륙하게 된다.
리비아가 이탈리아의 지배로부터 해방된 다음,
당시 이탈라이아에 끈질기게 저항한 "이드리스"라는 족장이 영국군의 지원을 받으며 키레네시아 토후국을 세웠다.
그리고 영국군과 리비아를 분할 통치했다.
그 당시의 국기는 이렇게 생김. (초승달에 별 달린 디자인을 보면 터키의 영향을 알 수 있음)
나중에 영국군이 리비아에서 철수하면서 이드리스는 리비아를 통일하고 왕위에 올라 리비아 왕국을 선포한다.
그 당시의 국기는 이렇게 생김
가운데 노인이 이드리스 국왕
하지만 청년장교 무아마르 카다피가 쿠데타를 일으키고 리비아 아랍공화국을 선포했다.
이 당시의 국기는 비슷한 시기의 아랍민족주의 국가들과 같은 디자인인 붉은색, 흰색, 검은색의 삼색기를 썼다.
젊을 때의 카다피
그러다가 이집트의 나세르, 시리아의 하페즈 알 아사드, 리비아의 카다피가 뭉쳐서 아랍연맹을 만들기로 했다.
아랍연맹의 국기는 이렇게 생겼다
그런데 아랍연맹이라는 게 참...
나세르, 아사드, 카다피 셋다 양보나 협상을 안하는 걸로 유명해서
정치공동체로서의 어떠한 기능도 하지 못함. 화폐도 통일되지 않고 심지어 수도도 정하지 못했다.
카다피가 그래도 아랍연맹 헌법 초안을 만들었는데 이집트와 시리아가 계속 시간을 끌면서 동의를 안해주었다.
나세르의 뒤를 이은 사다트나 아사드는 세속주의를 유지하고 싶어했는데 카다피는 이슬람 근본주의를 내세웠기에 처음부터 협상은 어려웠다.
더구나 사다트로 말할 것 같으면 이스라엘과 화친을 모색하던 인물이니 이스라엘 격퇴를 외치는 카다피와 맞을 리가 없다.
(맨왼쪽이 사다트. 팔짱 끼고 있는 카다피 표정이 영 안 좋다)
결국 5년의 세월동안 아무 합의에도 이르지 못하자 카다피는 아랍연맹을 취소하게 된다.
그때 카다피가 얼마나 분노했나면, 관료들에게 24시간 안에 아랍연맹 국기를 대신할 새 국기 도안을 가져오라고 명령했다.
누구 명령이라고 거역할 것인가. 리비아 관료들이 밤샘회의를 한 끝에 내린 결정은...
이렇게 (이슬람 컬러인) 녹색으로 그냥 다 칠해버리자고 함.
카다피는 (모택동이 자기 어록을 적어서 배포하는 Red Book을 본받아) Green Book이라는 개인숭배 책자 배포를 장려하고 있었기 때문에 녹색은 카다피 입맛에도 맞았다.
그리고 아랍연맹에서 탈퇴한 리비아 아랍 사회주의 공화국(Great Socialist People's Libyan Arab Jamahiriya)의 국기는 저 녹색깃발로 정해졌다.
그리고 2011년 카다피가 반란국에 의해 사망한 다음에
리비아는 리비아국(State of Libya)로 나라 이름을 바꾸었다.
새로 들어선 리비아 정부는 다시 왕국 시절의 국기를 쓰고 있음
현재 리비아는 다시 내전이 벌어지고 있다.
카다피에 맞서 무장단체를 이끌었던 군벌 하프타르 장군이 UN의 인정을 받은 통합정부를 인정하지 못하고 지금 전쟁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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