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삽화와 만화로 보는 '청일전쟁'

1894년 6월10일, 일본군의 인천상륙

1894년 7월 25일, 풍도해전에서 패하고 포로가된 청나라군

1894년 7월 26~29일, 성환전투중 안성을 공격하는 일본군

성환전투 중 반자이돌격을하는 일본군

성환전투중 대규모 격전
왼쪽의 나팔부는 병사가 나팔을 불다가 전사한 것을 기리는 의미의 판화인 듯하다.

안성전투중 마츠자키 나오미 대위의 돌격
마츠자키 대위는 두번쩨 총탄에 사망한다.

또 다른 판화, 마츠자키 대위의 돌격

또 다른 마츠자키 대위
마츠자키 대위는 청일전쟁중 최초로 죽은 장교이다.

성환전투 승리후 한양에서 조선측에 환영받는 일본군
조선측 대신은 이윤영이고 연미복차림은 일본공사 오토리공사... 비참하다.

아산전투 승리를 기념하는 파티

1894년 8월 8일 일본군 12보병연대가 평양으로 진격하는 모습

평양성 전투중 일본군 후쿠시마 중위와 오오타니 소령
청나라 장수 서진인(확실하지 않음)을 사로잡는 장면

평양성 전투중 청군의 퇴각
평양성전투는 청군12,000명과 일본군15,000명이 참전
청나라의 부정부패를 말해주는 일화로 서류상이라면 청군은 17,000명이 평양에 있어야 하지만 서류조작으로 5,000명이 더 있는 것처럼 조작했다.
청나라 육군대장인 섭지초는 일본에게 승리했다고 거짓보고를 올리고 이에 이홍장은 평양성 전투에 참가한 모든 청나라군의 계급을 1단계 올려주는 해프닝이 있었다.

하라다 주키치 일병이 성벽을 오르고 평양 보통문을 여는 모습

평양 함락

청군 지휘관 조포귀(?)가 항복하는 모습
5명의 청군 고위장교가 항복

황해해전에 앞서 작전회의중인 연합해군

황해해전 적 군함을 공격하는 해군
청나라 북양해군은 일본함대보다 강력한 세계 8위의 전력이었지만 포탄이 없었다.
청나라 군함의 포탄은 서태후가 이화원을 짓는데 써버렸다.

평양성 전투와 황해해전에서 승리한 일본은 만주로 나아갔다.
1894년 10월 10일 허산에서 청나라 기병대와의 전투

길린장 점령

팽황진 전투

만주의 겨울

일본군 진지를 염탐하는 청군
만주의 겨울동안 일본과 청나라 모두 반강제적인 휴전상태였다.

일본군의 뤼순 공격
청나라 군인의 군복을 보면 군복이 제각각임을 알수있다.

뤼순 포대 함락
가운데 살려달라고 비는 청나라군인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뤼순전투에서 일본은 18명의 전사자와 253명의 부상자, 청군은 1,000명의 전사자 발생

뤼순함락에 경악하는 이홍장

1895년 봄이 왔으나 만주는 여전히 춥다.

진청전투에서 승리하고 요양으로 진격하는 일본군

웨이하이웨이를 공격하는 일본군
산둥반도에 위치한 웨이하이웨이는 청나라 북양해군의 기지였다.

웨이하이웨이 공격
대포와 함께 날아가는 청군이 인상적이다.

웨이하이웨이 함락

정여창의 자살
정여창은 북양해군 제독이었으나 무능한 인물이었다. 이홍장은 자신의 측근인 정여창을 북양해군 제독에 섭치초를 육군대장에 임명했지만 이는 이홍장의 인사선택의 실수였다.

시모노세키 조약
청나라는 일본에 요동반도와 팽호저도 타이완을 할양했으며 2억 5천만냥을 배상했다.

일본군에게 나포된 진원
진원은 정원과 함께 북양해군 최강의 전함이었으나 웨이하이웨이가 함락되고 일본에게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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