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사]군국제? 군현제? 칠왕지란 오초칠국의난
오초칠국의 난에 대해 언급하기 전, 군현제와 군국제에 대한 개념과 그 시대 상황에 대해 설명하면,
군현제 - 진나라 시황제가 시행 지방의 행정구역을 군과 현으로 나눠서 지방관 파견
군국제 - 한고조가 시행 수도와 가까운 부분은 황제가 군현제로 다스리고 먼 곳은 제후들이 통치(군현제+봉건제)
한 문제의 장남으로 여씨 일족이 척살되고 고조의 넷째아들 문제가 황위에 오르면서 황태자가 되었다.
오왕 유비의 아들 유현과 바둑을 두다가 불리해지자 수를 물러달라고 부탁하나 유현이 거부하여 이에 분노한 경제가 바둑판을 머리에 던졌고 유현은 그대로 사망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오왕 유비는 경제에게 앙심을 품게 된다.
하남성 출신으로 상앙과 신불해의 학문에 정통했다.
문제에게 신임을 받았으며 태자시절부터 경제와 친하게 지내며 그의 장자방 역할을 했다.
경제가 즉위하면서 조조는 황제의 절대신임을 받게 되었으며, 능력있고 똑똑한 인물이었지만 융통성없는 성격탓에 적이 많은 인물이었다.
한고조 유방의 형인 유중의 아들로 20세부터 유방을 따라 종군해서 공을 세웠으며, 영포가 반란을 일으켰을때 앞장서서 토벌한 공으로 오왕에 오르게 된다.
3개군과 53성을 다스려 제후중에 가장 세력이 컸으며 황실에서도 어른이라, 경제시기엔 제후들의 왕이라 불렸다.
태자시절 경제가 던진 바둑판에 자신의 세자 유현이 사망하자, 경제에게 앙심을 품게 된다.
공신서열 2위의 무위후 주발의 아들 하내태수로 있을때 흉노의 침입을 격퇴했다.
한문제가 하내성을 방문했을때 군령에 따라 한문제를 말에 내리게 했으며 갑옷을 입은 상태로 무릎을 꿇지않는 엄격한 군기를 보였다.
하지만 문제는 군령이 엄격한것을 도리어 칭찬하고 주아부를 더욱 더 신임하게 되고, 아들인 경제에게도 위급한 일이 있으면 주아부와 상의하라고 말했다.
한경제는 의욕에 찬 군주였다.
그는 아버지 경제의 정책을 이어받아 검약하고 농업에 힘써 나라의 생산량을 크게 늘렸다.
마침내 한고조의 군국제를 뜯어 고치려고 시도하게 되는데, 전한이 건국된 이래 수많은 제후왕이 반란을 일으키거나 적에 투항하는등 좋지않은 부작용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한경제는 자신의 오른팔인 조조를 어사대부로 삼아 즉시 개혁을 실천했다.
※ 어사대부 : 태위, 승상과 함께 삼공의 지위에 있던 벼슬 관리의 감찰 탄핵이 주임무고, 황제의 비서역할도 했다. 지금으로 따지면 검찰총창+감사원장+대통령비서실장을 합쳐놓은 벼슬이었다.
어사대부가 된 조조는 즉시 제후들의 봉토를 삭감하자고 강력하게 제재를 했으며, 조조의 급진적인 일처리 방식은 온건한 신료들과 제후들에게 큰 반감을 얻기 시작했다.
자신의 아들이 걱정됐던 조조의 아버지는 조조를 불러 이리 훈계했다.
"황제와 제후들은 골육인데 어찌 니가 골육상쟁을 벌이게 하느냐!"
조조 : "그래야만 천자가 존귀해지고 종묘가 편안해질 겁니다."
"유씨는 너로 인해 평안해지겠지만 우리 조씨는 위태롭겠구나, 차라리 나는 죽어버리겠다! 나는 차마 너에게 화가 닥치는것을 볼 수가 없구나" - 사기 원앙조조열전
조조의 아버지가 자살을 하고 10일후 마침내 불만이 쌓일대로 쌓였던 제후들이 간신 조조를 토벌한다는 명분으로 반란을 일으켜 오왕 유비는 20만이나 되는 대군을 동원했고 마침내 오초칠국의 난의 시작이었다.
반란군의 세력(지도 참고)
오왕 유비
초왕 유무
조왕 유수
교서왕 유앙
치천왕 유현
교동왕 유응거
제남왕 유벽광
이들의 궐기는 한나라 조정을 발칵 뒤집어 놓았고 생각보다 심각한 상황에 한경제는 대책을 고심하였다.
오나라에 한때 재상으로 있었던 원앙은 대장군 두영에게 한경제를 만나게 해달라고 요청하고 한경제는 원앙에게 수습책에 대해서 묻게 된다.
원앙은 한경제에게 오왕에게 가세할 사람은 별로 없으니 걱정말라고 안심시키며 반란을 수습할 계책이있다며 신하들을 전부 물리쳐달라고 요청한다.
모든 신하가 물러갔지만 조조만은 한경제의 옆에 있었으며, 원앙은 경제에게 조조도 물리쳐 달라고 요청하고 조조는 어쩔수 없이 그자리를 피할수 밖에 없었다.
경제와 독대한 자리에서 원앙은 반란의 수습책으로 조조를 죽이면 반란군의 명분이 없어질테니 금방 수습될거라 말하고, 자신이 총애했던 조조를 죽이는것은 내키지 않았지만 원앙의 말에 혹한 경제는 결국 조조를 죽이고 경제는 오왕과 화친하기 위해 원앙을 특사로 보내게 된다.
하지만 조조는 단순히 구실이었을뿐 실제로는 황제의 자리를 노리고 반란을 일으킨 유비에게 협상이 통할리는 만무했고 원앙은 유비의 군사에게 포위됐다 겨우 도망쳐 나오게 된다.
결국 한경제가 마지막으로 기댈수있는 사람은 "주아부" 뿐이었다.
오왕과 초왕이 회수를 건너 양나라로 진군했고 양나라왕 유무는 반란군을 막기위해 싸웠지만 계속 패배한다.
경제에게 주아부를 보내 양나라를 구원해줄것을 요청하고 경제는 주아부를 파견했다.
주아부는 경제의 명을 받았지만 기병만을 내보내 오초연합군의 보급로만 끊을뿐 요새에 틀어박혀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양왕 유무는 이 일로 주아부에게 앙심을 품고 한안국을 장군으로 삼아 오초연합군을 상대로 결사항전을 벌여 막아내기 시작한다.
30만이나 되는 오초연합군이 지지부진하자 반란세력의 연계도 느슨해졌고, 결국 군량이 떨어져 퇴각하는 오군을 주아부가 급습해 대승을 거두게 된다.
수십만의 대군을 단번에 잃어버린 오왕 유비는 월나라로 도주하고 주아부는 오왕 유비의 목에 천금의 상금을 걸게 된다.
결국 월나라 사람이 오왕 유비의 목을 베어 항복했고, 유비가 죽자 초왕 유무를 비롯해 교서왕 교동왕 치천왕 제남왕 모두 자살했다.
반란은 이리 허무하게 3개월만에 진압됐고 조왕 유수는 7개월을 더 버티지만 결국 진압당한다.
오초칠국의 난이 진압되면서 칠국은 모두 삭번돼 한나라 봉토로 통합되었고, 황제권이 강해지고 제후들의 권력이 약해지면서 군국제는 사실상 유명무실해지게 된다.
마침내 한무제기 주부언의 헌책에 따라 추은령이 반포되고 군현제가 실시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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