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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진승과 오광

진나라가 7개 국가가 치열하게 다투던 전국시대의 대륙을 통일하고, 그 통일 대업을 이룬 시황제 사후, 시황제의 둘째 아들 2세 황제 '호해'가 집권을 하던 시기인 기원전 200년대 초.

진승과 오광은 별볼일 없는 농민출신으로 특히 진승은 남의 집에서 소작일이나 부쳐먹는 머슴이었나, 진승은 그 지위는 비천할지라도 남다른 면모가 있는 인물이었다.

진승이 다른 일꾼들과 휴식시간을 갖던 중, 진승은 자신의 처지가 고달펐던지 탄식을하며 '우리 중 누가 부자가 되더라도 서로를 잊지맙시다!' 라고 하자 다른 일꾼들은 머슴이나 하는 주제 어떻게 부자가 될 수 있겠나라고하며 모두 그를 비웃었다.

이 말을 들은 진승은 '참새가 어찌 큰 기러기의 뜻을 알 수 있으리오.'라고 크게 한숨을 쉬며 받아쳤을 정도로 진승은 꿈과 포부가 큰 인물었으며, 훗날 그가 큰 기러기에 비교할 수 없는 비범한 인물이 될지 아무도 예상을 하지 못했다.

 

2. 진승, 날개짓을 준비하다 

고단한 생활을 영위해가던 진승은 어느날, 900명의 인원들을 변방의 수비병으로 징발하라는 나라의 명에 따라 진승과 오광은 군대로 끌려가게 되었다.

그렇게 관리들의 통제 속에 목적지로 가고 있는 도중 한가지 사건이 터지는데, 바로 큰 비가와서 목적지까지 정해진 시간에 가지 못하게 된 것이다.

진나라에서는 천재지변도 변명거리가 될 수 없었을 정도로 엄격한 법치국가였는데, 

엄격한 법치체제는 전쟁이 난무함에 따라 국가총동원체제가 항시 가동되야하는 전국시대에서는 모두가 제 할일을 열심히하게했기 때문에  큰 힘을 발휘했었다.

그러나 문제는 진나라가 통일을 하고도 이 엄격한 법치를 더 엄격하게 가동을 시킨 것이다.

진나라는 멸망시킨 국가의 백성들을 아우르며 민심을 얻기보다 오히려 통일을 했다는 것에 안주하여 막대한 국가사업을 미친듯이 펼쳤다.

흔히들 전쟁 한 번만해도 국가가 거덜난다고 하는데, 진나라는 북방의 오랑캐를 대대적으로 정벌하는 것과 동시에 만리장성 축조, 진시황릉 건설 등의 막대한 토목사업을 진행하며 백성들을 지속적으로 착취하고 있었다.

당연히 백성의 원성이 잦아질 수 밖에 없었고 진나라는 이를 통제한다고 서슬퍼런 법치를 통한 대대적인 탄압 정책으로 대응했으며, 그리고 그런 가혹한 진나라의 법에 의하면 진승과 그 무리들은 사형이었다.

큰 기러기의 꿈을 품은 진승은 기러기는 커녕 참새 짓도 못하고 죽을 위기에 처하게되자 친구 오광에게 '도망가도 잡혀 죽고 거사를 일으켜도 죽는다면 오히려 백성들을 구제하고 나라를 위해 죽는 것이 더 낫지 않은가?'란 말로 오광을 부추기게 되고,

오광 역시 이를 옳게 여겨 점쟁이를 찾아가 일의 성패를 물어보니 점쟁이는 '일이 성사되면 큰 공을 이루나 일이 성패의 여부는 귀신에게 물어보라'고 답을 하게 된다.

하지만 진승은 이를 오히려 귀신의 힘을 빌리라는 뜻으로 이해하고 거사를 꾸미기 시작했다.

진승은 붉은 글씨로 '진승왕'이라고 적은 비단을 몰래 물고기 배 속에 넣어놓고, 그 물고기를 다시 사람에게 사오게하여 요리를 하게 시켰는데, 사람들이 물고기 뱃 속에서 나온 것을 보고 진승을 특별한 인물로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오광을 시켜 한밤 중에 숙영지 근처의 황폐한 사당에서 여우 목소리로 "초나라가 부활하고 진승이 왕이 될 것이다!"라고 외치게하니 모든 이들이 이를 듣고 크게 놀랐다고 한다.

그리고 이 두 선동 사건으로 진승은 무리에서 크게 주목받게 된다.

 

3. 진승, 천하를 진동시키다.

그러나 무리에서 주목을 받고 설득해도 그들을 통제하는 관리들이 이를 허락하지 않는 이상 그들은 일어설 수 없기에 진승은 또 다른 꾀를 내게 된다.

친구 오광이 평소 행실이 좋아서 많은 사람들로부터 인기가 많았는데, 바로 그 오광에게 관리들이 보는 앞에서 도망치자고 선동을 하게 한 것이다.

이 말을 들은 관리가 오광을 두들겨패고 칼을 뽑아 죽이려들자, 오광이 오히려 칼을 빼앗아 관리를 죽이니 이에 진승도 거들어 또 다른 관리를 죽이게 된다.

그리고 사람들을 모아 호소를 하는데,

"우리가 지금 큰 비를 만나 도착 기한을 넘기게 되었으니 도착해도 참수를 당할 것이고, 참수를 면하더라도 변방에 있으면 고향에 돌아가지 못한채 10명 중 6, 7명은 죽을 것이다. 대장부가 이렇게 구차하게 살아서는 옳지 않으며 마땅히 장부라면 죽더라도 이름을 후세에 남겨야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과거 오랫동안 억압받아온 민중의 분노와 앞으로도 끝없이 고통받을 힘없는 민중의 한이 담긴, 만세의 길이 남는 명대사를 외친다.

"왕과 제후, 장수와 재상의 씨가 어찌 따로 있단 말인가!"(왕후장상 영유종호)

이에 진승과 오광은 인망이 높으나 억울하게 죽임당한 시황제의 첫째 아들 '부소'와 멸망한 초나라의 마지막 명장 '향연'을 사칭하고 본격적으로 거사를 일으키니 많은 백성들이 진승에게 모여들고 많은 무리들이 틈을 타 진나라 타도를 위해 들고 일어나게 된다.

그리고 진승 자신은 장군에, 오광은 도위가 되어 여러 지역을 습격하니 이미 인망을 크게 잃은 진나라의 수비군들은 안팎에서 반란이 일자 그들을 막을 수 없었고 진승의 무리는 계속 늘어만 갔다.

승세를 탄 진승이 '진성'이란 성에 당도했을 때는 900명에서 시작한 무리가 무려 전차 6백대, 기병 1천기에 보병은 수만에 달하는 큰 세력에 달했다고 한다.

 

4. 진승, 왕에 오르다.

그렇게 많은 백성들이 따르고 많은 군세를 모은 진승은 동네 힘쓰는 사람들을 모아 앞으로의 일을 논하게하니 모두가 하나같이 진승이 왕의 공적을 세웠으니 왕이 될 것을 청한다.

그러나 모두가 왕이 될 것을 청하는 가운데 '진여'란 자만이 혼자 반대를 하며 이르길,

"장군께서는 무도한 진나라에 대항하여 천하를 구한다라는 대의를 위해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거병하셨습니다. 그런데 아직 천하의 일이 끝나지 않았는데 왕이 되신다면 사사로운 욕심을 위해 일어났다고 천하 사람들이 의심할 것입니다.장군이 마땅히 멸망한 6개 국가에 사람을보내 멸망한 왕손들로 하여금 왕위에 세운다면 멸망한 국가들이 다시 일어서게되어 온 천하가 장군의 편이 될 것이고 진나라는 오히려 적이 많아질 것입니다. 그리고 진나라를 멸망시킨 후 은혜를 입은 천하의 제후들에게 호령하면 누가 장군을 따르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진승은 진여의 말을 듣지 않는다.

그리고는 초나라의 부흥을 뜻하는 '장초'라는 국가를 세우고 왕위에 오르니 과거의 진씨에서 누누이 외쳤던 큰 기러기가 되는 순간이었다.

정말 이는 중국 역사에서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가 없는데 진승 이전에도 물론 많은 왕이 있었고 많은 벼락 출세가 있었는데, 그 왕들은 명망과 근본이 있었고 선대로부터 그것을 몇 백년의 기간 동안 꾸준히 이어오면서 정통성을 지켜왔었다.

그리고 한낮 민초가 엄청난 능력을 갖고 출세해도 국무총리급인 재상이 한계였고, 하늘이 내린 지위로 여겨지는 '왕'이라는 자리에는 절대적으로 오를 수 없었다.

진승은 그 고정관념을 철저히 박살내버렸고, 평범한 민중도 하늘의 선택을 받으면 왕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그러나 이런 민중의 한줄기 희망이되며 크게 의미있는 일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는 진승이 몰락하는 시발점이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5. 몰락의 시작, 봉기군의 분열

옛 전국시대 지도

진여는 진승이 자신의 계책을 받아주지 않자, 차선책으로 '진나라로 계속 진격하되 북쪽의 옛 조나라 땅을 빼앗을 것'을 재차 간언하니 진승은 이것을 따르게 된다.

진승은 오광에게도 '가왕'이라는 임시 왕의 작위를 주어 진나라를 공격하게 하고,

그리고 옛부터 친한 '무신'이란 자를 옛 조나라로 보내는데, 무신이 조나라 인사들을 설득하길,

"진나라의 폭정으로 백성들이 고통받을 때, 진왕(진승)이 들고일어나니 온 백성이 호응하여 천하에 막을자가 없습니다. 진왕의 세력은 날로커져가고 여러분들도 진나라에게 받은 고통이 오래되었으니 지금 이때야말로 부모의 원수를 갚고 대업을 이루기 가장 좋은시기가 아니겠습니까"라고 하자 조나라의 유지들이 모두 수만의 병사를 이끌고 무신이란 자에게 귀부하게 된다.

그렇게 여러 사람들을 동서남북 곳곳으로 보내 평정하니 진승의 무리는 점점 커져갔다.

그러나 문제는 여러 곳으로 보낸 진승의 부하들이 세력이 커져가니 각기 다른 마음을 먹게 된다.

애초에 진승은 정통성과 근본없는 농민출신으로서 부하들은 물론 진승과 커넥션이 없는 타 지역의 사람들은 진승과 그의 국가에 목숨을 걸고 충성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각 지역에 보낸 진승의 무리들과 지역 유지들의 결탁이 이루어지면서 이에 조나라로 간 무신이란 자는 스스로 조나라 왕을 칭하고 무신이 옛 연나라 지역을 평정하기위해 보낸 '한광'이란 자도 오히려 자신이 연나라 왕에 오르게 된다.

그리고 이미 제나라 땅에서는 옛 제나라 왕족의 후예 '전담'이 거병하여 제나라를 회복하고 진승이 보낸 자들을 물리쳐버린다.

이런 식으로 승승장구의 진승은 곳곳에서 민심을 잃고 그 세력은 줄어가기 시작했다.

 

6. 전란의 종결 - 진나라의 대반격

민생은 뒤로한채 매일매일 극도의 방탕한 생활을 하던 무능한 황제 호해도 반란의 무리가 커져가는 사실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급히 장군들을 모아 대처 회의를 하는데 훗날 진나라 최후의 명장이라 불리우는 '장한'이란 자가 이르길,

"도적들이 이미 가까이 이르렀고 그 무리가 많아 가까운 지역에서 병사들을 징발해도 상황이 많이 늦었습니다. 차라리 노역하고 있는 죄수들롤 사면하고 훈련시켜 격퇴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이에 호해는 대사면령을 내리고 장한은 진나라 시황제묘에서 노역하고 있는 죄수 20만명을 빠르게 모집하는데 성공한다.

이는 정말 적절한 판단이었는데 기존의 대립 명분인 '가혹한 진나라와 분노한 민중의 대립'에서 '희망을 얻은 죄수와 사리사욕만 챙기는 농민군'으로 바뀌게된 것으로 진나라에게 크게 유리하게 명분이 기울게 된다.

장한은 바로 죄수들로 부대를 편성하고 진격하니 단숨에 진승의 부장 '주문'이란 자를 상대로 대승을 거두며 그를 자결시킨다.

그리고 장한에 의한 뜻하지 않은 패배 소식이 들리면서 다른 지역을 공략하던 오광의 부대가 동요하는데, 오광의 부하 '전장'이란 자가 일이 급하게되자 오광을 군사에 무능하다하여 진승의 명을 사칭해 그를 죽여버리고 자신이 지휘권을 탈취해 장한에게 맞서게 된다.

그러나 장한은 이마저 괴멸시켜버리고 차례차례 진승의 부대를 격파해나갔다.

그렇게 진나라 최후의 명장이란 수식어에 걸맞는 장한의 훌륭한 지휘능력과 파죽지세의 진격으로 인해 수세에 몰린 쪽은 진승이 되었다.

장한의 대공세에 진승의 세력은 크게 동요하여 온갖 명령 불복종 사태 및 혼란이 일어나고, 도망가던 진승도 끝내 그의 말을 몰던 마부에게 죽으니 이 모든 일들이 그가 왕위에 즉위한지 불과 6개월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진승의 난은 초단기간으로 실패하고 결국 그는 마부에게 죽는 쓸쓸한 인생을 맞이했지만 그는 엄연히 사마천의 역사서에서 황제 바로 밑인 제후로 다뤄지고 있다.

그의 사후에도 '무도한 진나라 타도'라는 그의 기치는 생생하게 살아있었고 끝내 진나라는 무너졌기에 진나라 몰락의 시발점의 제공한 진승의 난은 큰 의미가 있다고 사마천은 바라본 것이다.

그리고 이것으로 비로소 '한나라'라는 진정한 중화문명의 시초를 제공한 국가가 탄생하게되고 그의 사상은 1400년 후 우리나라 고려의 노비 만적에게까지도 전파되어 난을 제공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지금도 심심치 않게 인용되는 것을 보면 오히려 성공한 난이 아니였을까 생각할 수 있으며, 한나라의 건국황제 유방은 봉기의 선배로서 진승에게 제사를 지내게하고 지금도 중국정부에서 인민봉기의 선구자로 제사를 지낸다는 것을보면 큰 기러기 이상의 인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사마천은 전국을 통일하며 막강한 위용을 드러낸 진나라가 세력은 약하고 지모는 얕으며 무기도 부족한 진승의 세력에게 무너진 이유를 인의를 베풀지않고 전쟁과 다스릴 때의 도리를 몰랐기 때문이라고 하고있다.

즉 변화에 적절한 대처를 못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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