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드리아 도서관
고대의 계획도시 알렉산드리아. 본문에 나오는 뮤지엄, 세라피움(7)의 위치가 나옴. 파로스 등대는 지도에 나오는 Pharus 섬에 있었음
1. 알렉산드리아의 도서관은 알렉산더 대왕의 동네 친구이자 부하장군이었던 톨레미(Ptolemy)에 의해 계획된다. BCE 305년 톨레미는 알렉산더대왕이 갑자기 바빌론에서 병사하자 재빨리 본국 마케도니아로 이송되던 시체를 훔쳐 이집트 멤피스에 도착, 멋대로 이집트 통치를 시작한다.
2. 톨레미와 알렉산더는마케도니아의 수도 펠레에서 어린시절 그리스 유명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에게 학문을 배웠는데 그때부터 통치와 나라의 번영에 있어서 학문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된다. 그래서 새로 만들고 있는 수도인 알렉산드리아의 중심부에 큰 도서관을 건립하기로 하는데, 이때 고대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40층 건물높이의 파로스 등대도 근처 항구에 같이 건설하기 시작한다.
3. 이때 새로 만드는 도서관의 이름을 그리스 학문의 여신들인 Muse의 집이란 이름으로 Museum이라 붙인다. (현재도 사용되는 박물관이란 단어의 시초. 톨레미의 아이디어이다.)
4. 두 건물 다 건설에 시간이 많이 걸렸던 관계로 초대 톨레미왕은 완성되는 걸 못보고 그 아들인 톨레미 2세 시절 완공된다. 톨레미 2세는 자기 여동생인 아르시노에(Arsinoe)와 결혼, 이름이 Ptolemy II Philadelpus이다. 이후 남매지간의 결혼은 이집트 톨레미왕조의 풍습으로 자리잡는다. 톨레미왕조의 마지막 여왕 클레오파트라(Cleopatra)도 자기 남동생인 톨레미13세와 부부지간이었다.
5. 전 세계의 모든 책을 보관하고자 하는 목표로 건립된 도서관이라 그 당시 구할 수 있는 모든 책을 보관하기 시작한다. 항구와 국경지대의 검역관이 모든 입국자의 짐을 전수조사, 도서관에 보관되어있지 않은 새로운 책을 발견하면 그자리에서 압수, 도서관 사서가 책을 베끼기 시작, 완성후 "사본"을 주인에게 돌려주고 "원본"을 도서관에 보관한다.
6. 이런 방식으로 책이 너무 많아져 더이상 보관할 곳이 없어 인근 신전인 세라피움(Serapeum)에 분관을 설립한다. 이런 식으로 한창때 도서관에 최대 70만권의 책을 소장하고 있었다고 한다. 세라피스(Serapis)는 그리스계통의 왕인 톨레미가 고대시대 가장 종교적인 국가였던 이집트를 효율적으로 통치하기위해 만들어낸 그리스-이집트의 합작 종교이다.
7. 모든 책들이 여기에 있다보니 그리스를 비롯 지중해 연안 고대국가들 사이에 소문이 자자해져 수많은 학자들이 알렉산드리아에 모여서 공부를 하고 학문을 발전시킨다. 이때 수많은 고대시대의 과학/기술이 탄생한다. (아르키메데스의 물펌프, 에라토스테네스의 역법 및 지구둘레계산, 유클리드의 기하학, 아리스타르쿠스의 지동설, 안티키테라 매커니즘에 나오는 천문/역법계산기 등등)
8. 이를 본 주변 국가들이 도서관 건립을 따라하기 시작한다. 그중 가장 규모가 컸던 곳이 현 터키에 위치한 고대왕국 퍼가몬(Pergamon)의 도서관이다. 여기엔 적어도 20만권의 책이 보관되어 있었다고 한다. 이에 위기를 느낀 이집트가 자신들의 주산물이었던 책의 재료, 파피루스의 퍼가몬 수출을 중단한다. 그래서 더 이상 책을 만들 종이가 없던 퍼가몬측에서 양가죽(parchment)으로 책을 만들기 시작한다. 양가죽을 뜻하는 영어 parchment의 어원이 Pergamon의 라틴어 표현 Pergamenum의 불어식 변형인 Parchemin이다.
9. 이 퍼가몬은 카르타고와 마케도니아, 그리스 도시국가들을 복속시키며 지중해의 패권을 장악해가고 있던 로마공화국에 스스로를 헌납하여 전쟁없이 로마속령이 된다.
10. 로마의 줄리우스 시저(Julius Caesar)가 자기를 배신한 폼페이(Pompeius)와 내전을 벌여 결국 패배한 폼페이가 알렉산드리아로 도피했는데, 상륙하자마자 자신의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시저에게 잘 보이려던 이집트인들에서 살해된다.
11. 시저가 폼페이를 쫒아 이집트에 왔다가 당시 권력에서 제외되었던 클레오파트라를 편들어 권력을 잡고있던 톨레미13세의 이집트군과 클레오파트라+시저의 로마군 사이의 내전이 발생한다. 톨레미13세는 클레오파트라가 시저를 만나는 것을 막았는데 클레오파트라가 몸을 양탄자에 둘둘 말아 숨어서 시저의 방에 들어가는 것에 성공, 이후 적극적인 구애를 통해 시저의 맘을 얻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12. 시저가 알렉산드리아 항구를 점령하는 과정에서 정박되어있던 배에 불을 질렀는데 때마침 분 강한 북풍으로 그 불이 시내에 번져 근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도 화재가 발생 수많은 책들이 소실된다.
13. 이후 로마에 돌아간 시저가 Ide of March에 부루투스에게 암살당한 후 우여곡절 끝에 로마권력을 장악한 옥타비아누스(Octavianus)와 마크 안토니(Marc Antony) 그리고 레피두스(Lepidus)의 삼두정치때 마크 안토니는 이집트와 그리스, 터키 등 동부로마를 통치하게 된다. 훗날 옥타비아누스와 마크 안토니가 로마패권의 명운을 건 내전을 벌일 때도 레피두스는 자신의 영역인 북부아프리카에서 조용히 살다 제명대로 죽는다.
14. 알렉산드리아에 도착한 마크 안토니는 홀로 시저와의 사이에 낳은 아들을 키우며 이집트를 다스리던 20대 후반이었던 클레오파트라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래서 클레오파트라를 위한 선물로 시저의 전쟁때 크게 손실된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내 장서를 확 늘려주기로 한다.
15. 당시 동부로마를 다스리던 마크 안토니 치하에 있던 지역 중 하나가 퍼가몬이었다. 그래서 퍼가몬 도서관의 장서 20만권을 통째로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 가져오게 한다. (퍼가몬은 주권을 잃으니 도시의 보물이었던 도서관 책도 잃게된다.)
16. 그래서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꽤 많은 책을 다시 확보하게 되어 로마시대에도 여전히 학문의 도시로서 명성을 떨친다. 로마시대때 알렉산드리아에서 증기기관, 자동문, 자판기, 자동으로 배경이 바뀌는 연극무대 등 복잡한 기계장치들이 많이 발명된다.
17. 하지만 로마의 쇠퇴가 시작되던 3세기 이후 점차 언급이 줄어들기 시작, 알렉산드리아의 뮤지엄은 마지막으로 CE 260년 언급된 것을 끝으로 더이상 역사에 등장하지 않는다.
18. 부속 도서관이었던 세라피움은 좀 더 이후까지 역사에 등장한다. 하지만 로마황제 테오도시우스가 기독교를 국교화하고 모든 그리스로마의 페간신앙을 법으로 금지한 이후 기독교 광신도들이 알렉산드리아의 페간신앙 중심지였던 세라피움에 숨어있던 페간교도들을 공격할 때 도서관도 같이 완전히 파괴된다.
19. 현재 전해내려오는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책들은 그 수가 1%도 안될거라고 추측하고 있다. 이 모든 책들이 다 전해왔다면 역사의 잊혀진 부분 뿐만 아니라 수많은 잊혀진 고대의 과학기술도 많이 전수되었을 것이다.
알렉산드리아 파로스의 등대는 훨씬 이후 아랍의 통치시기까지도 남아있다가 14세기무렵 지진으로 완전히 파괴된다.
'5분 재미있는 역사 상식 > 5분 재미있는 세계사 상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토요타 테크니컬이 대거 투입된 전쟁, 토요타 전쟁 (0) | 2020.06.02 |
---|---|
[유럽사]지리학의 아버지, 에라스토테네스 (0) | 2020.06.01 |
[유럽사]로마황제 클라디우스 (0) | 2020.05.30 |
[중국사]삼국지 오나라의 천재 싸이코, 제갈각 (0) | 2020.05.29 |
[아프리카]간략히 보는 세네갈의 역사 (0) | 2020.05.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