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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각(諸葛恪, 203년 ~ 253년)

자는 원손으로 오의 대신 제갈근의 장남이자 제갈량의 조카이다.

제갈각은 어렸을 때에 재능이 뛰어나 손권이 그를 매우 총애했다. 어느 날, 손권이 위아래로 얼굴이 긴 제갈근을 놀리기 위해 한 당나귀의 목에 "제갈자유(제갈근의 자)"가 쓰인 표를 걸어놓았다. 이를 본 제갈각은 뒤에 "지려(之驢)"(제갈자유지려는 곧 '제갈 자유의 당나귀'를 의미한다)라고 덧붙여 손권이 기뻐했다고 한다.

일단 제갈각 능력은 뛰어나다. 삼국지 게임에서도 매 시리즈마다 지력이 90을 넘는다. 그 재능은 어릴 때부터 발휘되어서 오의 군주인 손권에게 총애를 받았다. 위에 글을 요약하자면 "제갈근은 당나귀다"라며 제갈근을 조롱했는데 제갈각은 한자 몇 자를 더 추가하여 "제갈근의 당나귀"로 바꾸었다는 것.

또한 노신 장소를 조롱하기도 하였다.

장소가 누구? 장굉과 함께 바로 그 이장으로 불리우는 뛰어난 정치가이다. 그 원로공신이자 늙은 노신을 조롱했다는 것이다. 제갈각 이 인간은 능력은 뛰어났으나 예의라곤 도저히 없었다. 한 마디로 예의라곤 없다는 것이다.

한 일화로는

장소가 연회에서 이미 술에 많이 취해서 더 못마시게 되었는데 평소 장소를 싫어하던 손권이 제갈각에게 장소에게 술을 먹일 수 있겠냐고 물었다. 이에 제갈각은 매우 간단하다는듯이 장소에게 옛날 고사를 들어 "강태공은 나이 80이 되고도 최전방에 나가서 계책을 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에 대해 전혀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저희는 선생(장소)을 전쟁 중엔 뒤에 모시고, 술 마실 때엔 앞에 모십니다. 이러한데 어찌 어른을 모시는 예의가 아니라 할 수 있겠습니까?" 라고 핀잔을 줘서 술을 억지로 먹였다. 또 새가 궁전 앞 정원에 날아들자 제갈각은 그 새를 장소에 빗대어 백두옹이라고 한다. 이에 장소가 발끈하자 또 궤변을 늘어놓아 장소를 분노케 했다.

또 한번은 대사마 여대와의 일화로 손권이 죽기 전에 손량을 보좌할 인물로 제갈각이 선택되었는데 떠나기 전에 여대가 제갈각에게 "매번 10번 생각해서 결정하라"고 덕담을 건네자 제갈각은 자신의 재능을 열등하게 본다며 이에 발끈했다.

이때의 여대는 90이 넘긴 노인이였다고 한다. 90을 넘긴 어르신께서 조언, 덕담을 해주시는데 "영감한테 잔소리 들을정도로 멍청하지 않다." 이런 식으로 말했다는거다.

위나라의 대신 장집, 아버지 제갈근과 숙부 제갈량은 제갈각을 평가하길 재주에 대한 교만함 때문에 그는 오래지 아니하여 집안을 망치고 말 것이라고 예언하기도 했다. 부친한테도 글러먹었다는 평가를 받은 것이었다.

"나보다 높은 관직에 있는 자에게 반드시 받들어 함께 승진하고, 나보다 낮은 관직에 있는 자는 도와줍니다. 지금 당신을 보니, 기세는 윗사람을 능멸하고 있고, 마음은 아랫사람을 멸시하고 있는데, 이것은 덕행의 기초를 안정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정사 육손전 중(中)>
그리고 육손은 그의 행동을 보고 위와같이 조언을 해 주었다. 하지만 제갈각은 그냥 무시해버린다.

참고로 육손은 이릉에서 유비를 재기불능으로 만들어버린 이릉대전의 주역, 제 2의 주유였다. 제갈각 따위는 이름도 못내미는 오나라의 명실상부 네임드였다.

제갈각은 '그대의 아버지와 숙부 중 어느 쪽이 현명한가'라는 손권에 질문에 아버지인 제갈근이 더 현명하다 하였고, 이유로는 제갈량이 동오가 아닌 촉한을 섬긴다는 것을 들어 손권을 기쁘게 했다.

성년이 된 후 기도위에 봉해졌다가 그가 황태자인 손등과 친하므로 제갈각을 총애한 손권은 그를 태자좌보에 제수하였다. 부친 제갈근과 승상 육손 사후 병권을 잡아 대장군 벼슬을 받고 손권이 그의 막내아들 손량을 태자로 삼자 태자태부(太子太傅)로 삼아 후견인으로 삼았다. 이윽고, 손량이 즉위하여 전권을 위임받았고, 내정면에서 많은 업적을 쌓아 백성들에게서 신망을 얻었다.

성격과 행동은 개차반일지 몰라도 확실히 능력하는 뛰어났다. 육손의 뒤를 이어 대장군이 되어 병권을 잡는다는 것은 촉의 강유, 제갈량, 위의 사마의같이 뛰어난 자들이 대부분 가지는 권력이다. 그 외엔 반역을 일으키는 것 말곤 없다. 뒤를 이어 정식으로 임명되는건 능력이 뛰어나단것을 증명한다. 그리고 정치도 잘하여 백성들의 믿음을 샀다고 한다.

그러나 위나라 공격에서 패배하는 등 주요 정책에서 실패하여 원망을 사기도 했다.
위나라의 대대적인 오나라 침공. 하지만 제갈각은 그를 성공적으로 저지한다. 그런데 제갈각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기세를 타고 위나라의 반격을 가해, 북벌을 감행한다. 제갈공명도 성공 못한 북벌을, 그것도 통곡의 벽 합비로 진격한 것이다. 하지만 상대방은 장특이란 장수로 약 100일 정도를 공격에 버텨낸다.

제갈각은 위를 공격하는 과정에서 오의 공신 한당의 아들임에도 불구하고 오를 배신하고 위나라로 건너가 오나라의 변방 주민들을 자주 살해하는 짓을 반복하던 배신자 한종을 토벌하고, 그 전투에서 전사한 한종의 시체의 목을 베어갖고 와서 손권의 무덤에 바치기도 했다.
하지만, 성격이 아무리 개차반이라도 손권은 정말 잘 따랐다고 한다. 제갈각이 예를 갖출 정도면 군주로써 존경한건지 아님 사랑한건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후 제갈각의 전횡이 심해지자, 253년에 손씨 종친 중 하나인 손준에게 연회장에서 살해당했다. 생존시에 숙부 제갈량과 사촌 동생 제갈첨에게 도움을 받기도 했다는 말이 있다. 연의에서는 제갈각이 연회장에 가기를 두려워하였으나, 명분이 없어 어쩔 수 없이 연회장으로 갔다가 살해당하였다고 했다.

그리고 모든 독재자가 그렇듯이 암살당했다. 권력을 휘두르다가 결국 반대세력인 손준에게 살해당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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