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축구전쟁(Soccer War)
출처 : https://mnd9090.tistory.com/2907?category=471398(국방부 블로그 '동고동락', 기고문 'august의 군사세계')
https://mnd9090.tistory.com/2906?category=471398(국방부 블로그 '동고동락', 기고문 'august의 군사세계')
평화의 제전이라는 모토와는 전혀 동떨어진 사건이 월드컵의 역사에 있었다.
그것도 모든 나쁜 것들 중의 최악이라 할 수 있는 전쟁이 바로 월드컵 때문에 벌어진 것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아니 당대의 기준으로 생각해도 어처구니없는 사건이었는데, 아주 오래전의 이야기도 아닌 불과 한 세대 전의 이야기로 흔히 축구전쟁(Soccer War)로 통칭한다.
월드컵과 관련하여 월드컵 역사에 있어 유명한, 하지만 창피한 사건이기도 했던 축구전쟁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전쟁의 포연속에서도 열리는 것이 축구경기이지만 어처구니없게 축구가 전쟁을 촉발시킨 역사가 있었다.
한 세기 전의 영국이나 현재의 미국 정도가 아니면 대양을 건너가서 외국과 전쟁을 벌일 나라는 사실 없다고 보아야 한다. 때문에 대부분 국가 간의 충돌은 국경을 접하고 있는 나라 사이에서 발생한다.
우리나라 뿐만 아니고 역사적으로 보면 대부분 국경을 접하고 있는 나라간의 사이가 좋았던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반대로 멀리 떨어져 있는 국가들끼리는 사이가 나쁠 일도 없고, 혹시 사이가 나빠진다하여도 전쟁까지 벌어지기는 사실 힘들다. 예를 들어 쿠바가 한때 우리나라의 적성국이었지만 적대국이라 하기에 곤란하였던 이유도 사실 너무 많이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대부분의 전쟁은 인접국 사이에서 벌어진다.
우리가 잘 알지는 못하지만 고만고만한 나라들이 몰려있는 중미(Central America)의 경우만 해도 역사적, 인종적, 언어적, 종교적, 문화적으로 많은 공통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웃간의 사이가 좋지 않은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
그 중에서 비슷한 시기에 독립한 국가들로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 사이에서 전쟁이 발발하였던 적이 있었는데, 그 직접적인 원인은 어처구니없게도 축구 때문이었다.
축구전쟁이라는 명칭처럼 축구가 양국간 전쟁의 직접적인 도화선이 되기는 하였지만, 이면에는 전쟁이 발발할 수 밖에 없었던 내재적 요인이 축적되어 폭발할 순간만 기다리고 있었던 상태였다.
마치 호시탐탐 전쟁을 개시할 구실만 찾고있다가 사라예보의 총소리로 시작된 제1차 세계대전과 비슷한 상황이었다.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 모두 독립 이후 계속해서 반복된 정변으로 해가 뜨고 질 정도로 정부가 안정되지 못한 전형적인 중미 국가들이었다.
여담으로 중미에서 정치적으로 안정된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있는 나라라면 코스타리카 정도가 아닌가 생각될 정도로 이 지역은 정치적 안정을 찾아보기가 상당히 힘들다.
그런데 일본의 통일을 이룬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임진왜란을 일으키고 군부가 군부통치하던 아르헨티나가 내부의 불만을 외부로 표출하여 무마하기 위해 포클랜드 전쟁을 일으켰던 것처럼, 1960년대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의 정부 모두는 국가 이익을 위해 타국의 이익을 침해하는 정책을 용인하고는 하였다.

20세기 초부터 약 30만 명의 엘살바도르 국민들이 국경을 넘어 온두라스(인구는 양국이 얼추 비슷한데 국토는 온두라스가 8배 정도 크다)로 이주하였는데 이들이 온두라스의 경제권을 급속히 장악하고 사회의 상층부를 이루게 되었지만 온두라스 국민들에게는 배타적인 모습을 보여 왔다.
그러자 1969년 온두라스정부가 새로이 농지개혁을 실시하는 과정에서 눈에 가시같던 엘살바도르인 수만 명을 국외로 추방하자 두 나라 사이의 감정이 급속도로 악화되었다.

바로 이런 와중에 1970년 제9회 멕시코월드컵 중미예선에서 두 나라가 맞서게 되었다. 홈앤드 어웨이 방식으로 치루어진 예선전이 벌어져 온두라스에서 1969년 6월 8일 경기가 먼저 열렸는데, 이 경기에서는 일방적으로 응원을 받은 홈팀 온두라스가 1-0으로 승리하였다.
그로부터 1주일 뒤 이번에는 장소를 엘살바도르로 옮겨 2차전이 벌어졌는데, 홈팀인 엘살바도르 국민들 뿐만 아니라 국경을 넘어서 원정 응원을 온 대규모의 온두라스 응원단의 불뿜는 응원 대결 속에 경기가 개시되었다.
치열한 접전 끝에 이번에는 홈코트의 이점을 얻은 엘살바도로가 3-0으로 승리하여 승패를 원점으로 돌려 버렸다.

당시에 경기가 어느 정도 과열되었는지 경기를 중계하였던 온두라스 방송단이 "엘살바도르에게 죽음을~", "엘살바로르에게 신의 저주를!~" 이라는 부적절한 멘트를 쉴새없이 외쳐대었다.
마치 상대편을 타도할 원수로 간주하여 생방송에 공개적으로 욕을 하는 것과 같은 어이없는 모습이었다.

생방송 중에 상대편을 노골적으로 욕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이렇듯 과열된 경기와 관중들의 적대감으로 가득찼던 경기가 끝난 후, 관중석에서는 흥분한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 관중 간에 집단 난투극이 벌어졌다.
원정을 와서 상대적으로 소수였던 온두라스의 응원단은 일방적으로 집단 린치를 당하여 피투성이가 된 상태로 국경 밖으로 추방당하는 폭력사태가 일어났다.
소식이 온두라스에 전해지자 온두라스 전역에선 거주하고 있던 엘살바도르인에 대한 무차별적 보복 테러행위가 발생하였다.

그 동안 불편하였던 관계에 있다가 축구경기로 감정대립이 격해진 이 두 국가는 6월 16일 상호간에통상교역 금지를 단행하고, 이에 대하여 6월 18일 엘살바도르는 세계인권위원회에 온두라스를 제소하여 버리면서 더욱 격화되었다.
결국 6월 23일 양국은 단교를 단행하였다. 그야말로 다혈질의 라틴아메리카 국민들답게 순식간에 벌어진 일들이었다.

요즘은 홈앤드어웨이 ( Home and Away ) 방식으로 축구경기가 벌어질 때 양편의 승패가 동일하면 원정 경기에서 다득점한 팀이 최종 승리한 것으로 판정하는데, 당시에는 재경기를 벌여야 했다.
승패가 1승 1패로 동일하여 이미 축구를 넘어 폭력과 외교적 마찰을 불러왔을 만큼 감정의 골이 깊게 파인 양국간의 재경기가 확정되자 국제축구연맹은 골치가 아플 수밖에 없었다.
결국 세 번째 경기는 제3국인 멕시코에서 벌이기로 결정되었다.

단교 직후인 6월 27일, 제3의 장소인 멕시코시티에서 벌어진 최종전은 양측을 응원하는 관중들보다 삼엄히 경비에 나선 멕시코 경찰들이 더 많았던 경기로 기록되었는데, 경기내용은 안 봐도 비디오인 것처럼 운동이 아닌 집단 격투기같은 형태로 진행되어 말그대로 선수들이 피를 흘리는 혈전으로 비화되었다.
결국 연장까지 가는 치열한 접전 끝에 3-2로 엘살바도르가 승리를 거두어 결말을 보았다.

그런데 이런 경기 결과는 양국 간의 감정을 풀기는 커녕 더욱 악화시켜 계속되는 외교적 비난과 자국에 있는 상대국 국민들에 대한 테러로 이어졌다.
특히 온두라스 정부의 방관 하에 상대적으로 온두라스에 자국 국민이 많았던 엘살바도르인들에 대한 피해가 늘어났다.
그러자 분노한 엘살바도르는 7월 13일 새벽, 온두라스에 선전포고 후 포병부대의 포격을 시작으로 전쟁을 개시하였다.

엘살바도르군의 주력이 온두라스 동서 요충지인 엘포이와 아마킬로를 함락시키고 공군은 온두라스의 수도 테구시갈파와 여러 도시를 폭격하였다.
기습을 받은 온두라스는 반격을 하였지만 초전의 충격을 극복하지 못하여 2천 여 명이 넘는 전사자를 내며 치욕적인 패배를 거듭하였다.
결국 이를 방관할 수 없던 미국 주도의 미주기구(OAS)의 중재로 온두라스는 사실상 패전을 당한 상태로 휴전에 이르게 되어 100시간만에 전쟁이 종료되었다.

이 두 국가 간의 앙금은 오래 동안 계속되다가 1980년 10월 페루의 수도인 리마에서 벌어진 평화조약으로 간신히 마무리되었다.
물론 이런 사례는 극히 희귀한 사례고 재발되어서도 곤란하다.
그런데 그동안 뉴스를 보면 폭력사태를 우려하여 종종 무관중 경기가 열리는 등, 세계 최고의 인기 스포츠인 축구는 여타 경기종목과 달리 스포츠 이상을 뛰어넘는 그 무언가가 분명히 있는 것 같다.

정해진 규칙을 준수하고 상대를 존중할 때 스포츠는 가치가 있다.
이러한 축구 이상의 그 무엇이 우리의 자랑스러운 응원문화처럼 아름답게 표현되면 다행인데, 전쟁으로 비화한 위의 사례같이 변질된다면 스포츠의 존재 이유가 없어질 것 같다.
축구에서의 전쟁은 정해진 규칙에 따라 정정당당하게 그라운드에서만 펼쳐지고 상대방을 존중할 때만 멋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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