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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Ghana). 정식 명칭은 가나 공화국(The Republic of Ghana)이다.

서아프리카에 위치한 나라로 정치 제도가 한국과 많이 비슷하다.

가나도 군사 독재를 겪었으며 현재는 대통령 직선제를 실시한다. 

미국 영향을 많이 받은 나라로 대통령 임기는 미국처럼 4년에 한번 연임이 가능하다.

 

도심지는 주로 해안가에 몰려있다.

수도는 아크라. 샘 오취리도 아크라 출신이다.

아프리카 국가들이 대개 그렇듯이 도심지와 교외 지역의 차이가 엄청나다.

가나는 여러 부족들에 의해 이루어진 국가인데 그 부족들을 통합하기 애국심을 활용했다.

가나라는 명칭부터가 13세기 아프리카에서 번영했던 고대 왕국인 The Ghana Empire에서 따온 것이다.

다만 가나제국의 위치를 보면 지금의 가나에서 멀리 떨어져 있긴 하다.

오히려 가나제국의 위치는 지금의 감비아에 더 가깝다.

서아프리카는 여러 유럽 열강들이 식민지로 갈라먹는 통에 어느 나라의 식민지였는가에 따라 문화가 상당히 달라지는데, 가나는 영국 식민지였기 때문에 지금도 영어를 사용한다.

아메리카나 아시아에 진출하는 서아프리카인들을 보면 대부분 나아지리아 아니면 가나 출신들이 많은데, 아무래도 영어권 소속이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가나는 영국으로부터 1957년에 독립했고, 독립운동 지도자 콰메 은쿠르마가 1960년에 대통령이 되었다.

은쿠르마는 여러 면에서 이승만과 비슷한 인물이다.

은쿠르마도 미국 유학생 출신이고 미국 정치의 영향을 상당히 많이 받았다.

프린스턴 출신 이승만처럼 은쿠르마는 유펜(유니버시티 오브 펜실바니아) 출신의 고학력자이다.

은쿠르마는 미국 유학을 마치고 런던정경대에서도 공부했는데 이러한 경험이 그를 국제적 식견을 갖춘 인물로 만들어주었다.

그런데 은쿠르마에게는 두가지 불리함이 있었다.

첫째, 가나가 미국의 동맹국이고 또 영연방 소속임에도 불구하고 그가 소련에 상당히 우호적이었다는 점이다.

둘째, 그가 비록 가나에서 제일 수가 많은 아샨티 부족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탕평책을 펼치느라 야산티 부족 내부의 반발을 받았다는 점이었다.

1960년, 은쿠르마는 당시 유행하던 아프리카의 단결을 내세우며 이집트(당시 대통령은 나세르), 리비아 같은 반미주의 국가들과 협력을 모색했고, 또 소련과 동유럽하고도 관계를 개선헀다.

CIA 입장에서는 여러모로 우려되는 상황이었다. 

체 게바라의 방문을 환영하는 은쿠르마

그러다가 결국 은크루마가 호치민을 만나러 간 사이에 1966년,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켰다.

은쿠르마는 망명을 해야 했고 결국 1972년에 암으로 사망한다.

군부는 공산권과의 관계를 끊어버리고 일관되게 친미노선으로 나아갔다.

 

미국의 보호 아래서 가나는 1960년대 말부터 극심한 혼란에 빠졌다.

군인들이 서로 쿠데타를 일으킨 것이다.

결국 가나는 1966년부터 1993년 민정 이양이 될 때까지 총 4번의 쿠데타를 겪는다.

 

한편 가나의 군사정권들은 한국의 군사정권과 달리 경제에 대해 잘 몰랐다.

당시 가나에서 제일 큰 문제로 꼽히던 것이 바로 수입 라이센스였다.

군사정권은 부족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가나 경제를 엄격하게 통제하고 외국 수입품은 오로지 라이센스를 받아야만 들여올 수 있도록 제한했다.

이 과정에서 뇌물이 횡횡했고 물가는 폭등했다.

쿠데타가 자주 일어난 배경에는 경제난에 따른 민심 동요가 한몫했다. 

가나에서 마지막으로 쿠데타를 일으킨 인물은 '존 제리 롤링즈'라는 인물이다.

이름만 보면 미국 사람 같은데 가나에서 태어난 가나인이다.

은크루마와 더불어 롤링즈는 아프리카 정치사에서도 매우 특이한 인물이다.

 

그는 1981년 12월31일에 쿠데타를 일으켜 집권헀고 10년 이상 군사정권에서 권력을 지켰다.

처음에는 경제를 국가가 통제하려 했는데 결국 1983년에 외환위기를 맞게 되면서 자신의 권좌가 위태로워지자 자유시장 체제로 전환해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즉, 독재자가 경제 구조를 개혁한 것이다. 다른 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사례이다.

 

롤링즈는 한발 더 나아가 민정이양에 동의했고 군사정부를 스스로 해산하고 정당을 만들어 1993년 출마했다.

그리고 선거에서 당선되어 합법적으로 대통령이 되었다.

독재자가 직접 권력을 내려놓고 민정이양까지 이끌어낸 정말 특이한 사례이다. 

개혁자 이미지를 통해 선거에서 승리한 롤링즈는 자신감을 갖고 가나 경제 부문에서의 민영화 개혁을 추진했다.

게다가 선거에서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 덕분에 부정선거를 저지르지 않고 국민들에게 선거 참여를 독려하는 등, 모범적인 민주국가 지도자의 모습을 보였다.

 

롤링즈는 에와족(Ewa) 출신이었다.

경제가 좀 살만해지고 사회가 안정되니 가나 사람들도 예전의 부족주의로 되돌아가는 경향을 보였다.

가나 인구 다수를 차지하는 아샨티족(Ashanti) 유권자들이 아샨티 후보에게 표를 던지는 사태가 발생했고 롤링즈는 재선에 실패했다. 

 

하지만 그간의 공로를 인정받아 롤링즈는 '가나의 국부' 대접을 받으며 현재는 국제기구에서 다른 아프리카 국가들의 발전을 위한 자문 역을 맡고 있다.

가나의 경제는 여전히 일부 부유한 가문들에 의해 굴러가고 있으며 따라서 기업 육성과 민영화를 통한 일자리 창출이 시급한 문제로 꼽히고 있다.

기본적으로 광업과 농업에 의존하는 자원 수출 국가이지만 최근에는 서양 국가들을 따라한 자유시장 경제의 도입을 통해 새로운 산업을 육성시키고 있는 점이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참고로 아프리카에서 가장 많이 주식거래가 이루어지는 나라는 남아공이나 나아지리아가 아니라 가나다. 그만큼 많은 가나 젊은이들이 경제에 관심을 갖고 있다. 

가나는 태양광 발전을 국가에서 적극 육성하는 국가이다. 아무래도 전력망을 건설하기에는 돈과 시간이 너무 많이 드니까 각 지역의 전력난을 해결하기 위해 태양광 발전을 장려한다.

 

가나는 영연방 출신답게 축구와 럭비, 테니스 등이 큰 인기를 얻는다.

가나는 아프리카에서 손꼽히는 복싱강국이다.

부족 문화의 영향으로 남자아이들은 자신의 힘을 증명하기 위해 스포츠를 접해왔는데

아주마 넬슨이라는 위대한 복서 덕분에 가나에서 복싱이 큰 인기를 얻었고 지금은 축구에 버금가는 인기를 얻고 있다.

또한 해외에 나갈 기회가 거의 없는 가나 소년들에게 복싱은 축구에 비해 문턱이 비교적 낮은 길이다.

문성길과 대결했던 나나 코나두도 가나 출신
오스카 델라 호야와 접전을 벌였던 유명 복서 아이크 쿼테이
매니 파키아오와 대결했던 조슈아 클로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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