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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고 아름다운 모습의 B-29 슈퍼 포트리스 폭격기

2차 대전과 베트남전사이 퇴역할떄 까지 활약상도많고 기간중 최고의 폭격기가 아닐까 한다.

추가로 현재까지 유일하게 핵을 떨궈서 전과를 세운 폭격기이기도 하다.

생산및 개발 배경

의외로 미국이 위기감을 느끼고 만든 폭격기인데, 2차대전 발발 당시 독일이 유럽 본토를 휩슬고 영국 본토항공전까지 걸며 위세를 떨치자 미국은 영국이 패할것 같은 조짐을 느끼고 만약 영국이 패한다면 미국 본토에서 폭격기를 띄워야 했기 때문에 개발하기 시작하고 1942년도에 처녀비행에 성공하고 1944년에 실전배치가 이루어지게 된다.

특징

생산 개발이 대전기 후반에 완료되다보니 아주 뛰어난 성능의 폭격기가 나왔는데, B-29 같은경우에는 자동으로 엔진출력과 조정조건이 조절되고 여압이 되는 조종 실을 갖추고있었는데, 이것은 유럽에서 독일군을 쓸어버리고, 독일본토를 쑥밭으로 만들며 날아다녔던 B-17폭격기 승무원들이 두꺼운 항공점퍼를 입고도 추위에 떨며 날라 다녔던 것을 생각하면 아주 대단한 것이었다.

B-17 폭격기 승무원의 모습

또한 B-29 같은 경우엔 방어무장도 충실해서 '자동으로' 목표를 향해 사격 가능한 다수의 방어기관총을 보유했는데 이것은 위 사진처럼 당시 폭격기들에 장착했던 방어기관총좌에는 1정당 1인이 무조건 붙어야했고, 사람이 조준 했던만큼 감이나 운에 맡기고 기관총좌 구멍사이로 높은 고도에서 불어오는 찬바람이 기체안으로 들어와서 거주 조건도 최악인 안습한 상황이었다.

기체 아래쪽이나 위쪽에서 접근하는 요격기를 차단하기위해서 볼터렛을 설치를 했는데 이것은 크기가 너무 큰 바람에 항력을 발생시켜서 문제가 많았다. 하지만 B-29 같은 경우에는 이것을 사수가 중앙에서 제어할수 있도록 중앙제어식 터렛으로 바꾸게 되는데 이것은 조준장치의 도움을 받는 사수가 홀로 다수의 터렛을 제어하여 하나의 목표에 집중포화를 퍼붓게 개량되었을 뿐만아니라 터렛자체의 부피도 줄어 항력또안 줄어드는 소소한 효과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물론 터렛을 제어하는덴 컴퓨터가 이용되었다. 

B-17폭격기의 볼터렛
B-29 폭격기의 하단부 터렛

비행성능 또한 아주 뛰어났는데 눈여겨 볼점은 순항고도가 무려 1만m를 넘었다는 점이다.

이것은 당대 각국의 동급 전략 폭격기들의 상승한다고 1만m가 안됬다는 생각하면 엄청난 것이었다.

무엇보다 무지막지하게 높은 고도에서 날다보니 지상에 있는 대구경의 대공포로도 B-29를 격추 시킬수가 없었다.

유일하게 미군이 가지고있던 레이더 연동방식의 대공포만 격추가 가능했는데, 이를 상대해야했던 추축군한테는 상관 없는 이야기였다.

또한 순항속도나 최대속도도 각각 370km와 570km, 항속거리도 5000km 되는등 당대 동급 폭격기들중엔 최고의 성능을 자랑했다.

이런 비행성능이 나올 수 있었던 배경엔  B-29가 달고 있는 2200마력의 공랭식 엔진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B-29는 이 엔진을 4기 달고 있었다.

물론 장점뿐만 아니라 단점도 있었는데 엔진이 고출력이다보니 냉각 계통에 문제가 많았고, 또한 엔진 무게를 줄이기 위하여 마그네슘 합금을 사용했는데, 여기서 문제점이 엔진이 과열되면 순식간에 불이 붙어서 폭격기가 추락하게 된다는점이었다.

이 문제는 이미 시제기를 테스트 하는 과정에서 빈번이 일어나 추락하는 사고도 있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엔진커버를 잘라내고, 더 많은 공기가 들어가도록 개량했지만 효과는 미미해서 조종사들은 항상 엔진 온도에 신경을 썻다고 한다.

이것 말고도 또 다른 문제는 엔진수명이 짧다는것 이었는데, 현금술로 엔진을 연성하여 75시간마다 갈아끼우는걸로 해결한다.

또한 개발기간 중 폭격기들의 운용을 참고하여,  방어력도 상당히 좋았는데 7.7mm 기관총은 씨알도 먹히지 않았고으며, 개발당시 내탄성 실험에서 12.7mm 기관총과 심지어 20mm 기관포를 갈기며 테스트를 하기도 했다.

그 결과 20mm 기관포에도 아주 뛰어난 내탄성을 가졌다고 했다.

B-29의 엔진

실전투입 

개발과 테스트가 완료되자 미국은 탁월한 공업력으로 폭격기를 만들기 시작해서 그냥 많이 만들었다.(약 4000대)

하지만 투입되던 당시에는 예상과 다르게 독일 공군이 영국 본토 항공전에서 대패하고 차츰 씨가 말라가던터라 B-17 폭격기와 B-24, 영국의 랭카스터 폭격기 등이 미친듯이 독일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었기 때문에 B-29는 생산되는 족족 비행성능과 항속거리를 살려서 일본을 박살내는데 투입했다.

처음에는 영국땅인 인도에서 출격하다가 다음엔 중국의 청두, 최종적으로는 태평양에서 일본군을 박살내며 섬을 하나씩 회복하며 필리핀의 북마리아나 제도에 거점을 마련하게 된다.

한가지 웃긴건 중국에서 거점을 옮길당시 중국군의 헛짓거리로 해안이 모두 점령당하며 일본군이 내륙으로 진군하다보니 폭격기 기지가 일본 공군의 작전권이 들어 가게 되었는데, 이 시기가 1944년 즉, 태평양에서 일본군이 줄줄이 박살나던 시기였다.

어쨋든 일본 본토와의 거리가 점점 가까워지게 되니 연료 탑재량을 줄이고 폭탄을 더 실어 넣고 군수공장에 폭탄을 선물하러 간다든지, 소이탄을 잔뜩 적재하여 대전 당시에도 목조건물이 넘쳐났던 일본의 대도시를 불바다로 만들러 간다든지, 도쿄 대공습 같은 작전을 실행하며 일본을 박살내는데 열을 올렸다.

도쿄에 폭탄을 배달하러 가는 B-29
폭탄 투하중인 B-29 편대
도쿄대공습 당시 B-29에서 촬영한 도쿄의 모습

하지만 공습초기엔 거리도 멀었고, 먼거리에 따른 작전고도 등 배치 초기 폭격기의 단점과 B-29에 대한 운용법이나 전술이 미흡했던점이 겹쳐서 일본 전투기들도 B-29를 요격하는등 전공을 세우고 발악을 하는듯 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북 마리아나 제도에 거점을 마련하고 전술체계를 확립하여 단점들도 보완되면서 요격이 점점 힘들어지게 되는데, 가장 큰 이유가 일본의 전투기들이 B-29가 날아다니는 고고도에서 작전수행이 거의 불가능 했던 것이었다. 

어찌어찌 접근해서 사격을 가했지만, 일본군의 7.7mm 기관총은 통하질 않았고, 12~13mm 중기관총 및 해군이 보유한 20mm 기관포, 독일에서 수입한 20mm 기관포, 심지어 30mm 기관포까지 동원해서 갈겨 봤으나 역부족이었다.

중후반에는 여러가지 이유로 B-29의 작전고도가 조금 낮아지긴 했지만, 애초에 고고도 작전은 생각조차 하지 않고 만들었던 일본 전투기들한태는 여전히 힘든 상대였으며, 그마저도 1945년 3월 이오지마가 함락되고 미군이 이오지마에 비행장을 건설해서 호위기로 P-51와 P-47까지 함께 딸려보내니, B-29를 요격하는 것을 사실상 아예 포기하고 만다.

나중엔 일본근해에 기뢰를 부설하는 임무까지 맡게 되었는데, 작전명이  Starvation(기아)였다.

말그대로 일본 앞바다에 기뢰를 깔아서 해상수송을 막아버리고 굶겨죽이는 작전이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태평양 전쟁의 종지부를 찍은 나가사키와 히로시마 원폭투하도 바로 이 B-29 폭격기가 맡아서 수행했다.

그리고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폭을 맞은 일본군은 그대로 항복한다.

원자폭탄을 투하했던 아놀라게이

종전 후 한국 전쟁

 

 

2차대전 종전 이후에도 한국 전쟁에도 참가하게 되는데, 북한땅을 말그대로 가루로 만드는데 일조하게 된다.

당장 6.25 한국 전쟁 당시 북한군은 공군자체가 없었고, 종전 후 북한에 제대로 된 건물이 거의 존재 하지 않았다는 점과 유럽보다 훨씬 작은 한반도 북부에 세계대전 당시 쏟아부은 폭탄보다 더 많은 폭탄을 때려 부었다고 하며, 얼마나 두들겨 맞았는지 원산폭격기란 말이 생길 정도였고 종전후 치가 떨리게 당했던 북한군이 방공망을 도배하는 등 B-29가 남긴 인상은 국군과 북한군 할 것 없이 강렬했다.

하지만 B-29도 프롭기의 시대가 가고, 제트전투기의 시대가 오자 속도를 우위로 한 소련군의 MIG -15의 일격일탈 전술에 밀릴 수 밖에 없었으며, 심지어는 이대로가면 폭격기의 씨가 마를 것이란 보고에 주간폭격을 금지하는 등 많은 수모를 겪었다.

하지만 이를 계기로 미국은 B-52를 개발하여, 베트남전에 유용하게 써먹는다.

6.25전쟁 당시 원산의 정유공장
1952년 원산, 건물 같은건 없다.
B-29를 노리는 MIG-15 건 카메라

기타사항

한국 전쟁마저 휴전으로 끝나고 B-29는 퇴역하게 된다.

현재 우리나라에도 1기가 전시되어 있는데, 1972년에 미국이 기증해서 여의도 공원에 전시되었는데, 사천의 항공우주 박물관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소련에서 B-29를 복제한 기종이있는데,  TU-4라는 기종이다.

2차 대전 당시 일본을 폭격하고 길을 잃은 폭격기가 소련에 불시착했는데, B-29의 위력을 본 스탈린이 B-29를 복제하도록 해서 탄생했다고 한다.

TU-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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