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사]일본인들의 꽤 잔인한 홋카이도(북해도) 개척사 간략 정리
일본이 영토 확장에 나서기 전까지 홋카이도는 "에초지"라고 불렸으며, 원주민인 아이누가 수렵과, 채집 등을 하며 독자적 문화와 풍습을 지니고 살고 있었다.
그러나 14세기 이후 어느날, 일본인(和人)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갑작스레 나타난 일본인들은 동북 지방의 아이누를 정복하고, 홋카이도 남부에 진출하기 시작한다.
일본인의 진출이 시작되고나서, 16세기 말부터는 영토를 확보하고 싶어하는 마츠마에 씨족이 홋카이도를 지배하려고 찾아온다.
마츠마에 가문은 1604년 일본 중앙 막부 정권에게서 아이누와의 독점적 교역권을 인정받은 자들이었다.
처음에는 건전한 상업행위를 하였으나 많은 돈을 벌고 싶어하는 일본인 상인들과 연합하여 아이누들을 경제적으로 착취하게 된다.
이러한 일본인의 진출과 수탈에 대해 아이누인들은 1457년 코샤마인 전쟁, 1669년 샤쿠샤인 전쟁 등 대규모 군사 봉기를 일으키며 저항했지만, 도로 학살당하여 일본인의 완전한 지배를 받게 되었다.
그리고 아이누족이 일본에 속박되지 않으면 러시아에 회유당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아이누에게 개속이라는 명목으로 일본어의 사용과 일본 풍속을 따를 것 등을 강제하는 동화정책을 실시하기도 했는데, 다른 열강과 경쟁구도가 심화되면서 동화정책을 더욱 적극적으로 추진하였다.
1868년 "메이지유신"으로 근대국가가 수립된 뒤, 메이지 정부는 에조치의 개척을 본격화하였다.
1869년 "개척사"를 설립하고 에초지는 이제 "홋카이도"라는 새로운 지역명으로 명명되게 된다.
일본 메이지 정부는 일본인을 홋카이도로 집단으로 이주시켰고, 철도와 도로를 건설하였다.
이제 물밀듯이 들어오는 일본인 주민과 개발열풍에 이미 아이누는 멸족을 면치못하는 상태로 전락하게 된다.
일본 정부는 민족 말살의 동화 정책을 펼쳤다.
정부의 개척 방식은 저항하는 원주민인 아이누인들을 죽이고 내몰면서 내륙으로 전진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아이누의 토지를 국가적으로 수탈했으며 그들을 강제로 이주시켰다.
아이누를 개명시킨다는 명목으로 풍습의 개변을 강요하였고, 아이누의 언어와 전통양식은 금지되었다.
아이누가 가지고 있었던 어획권과 어로방식도 무시되었고, 아이누는 농업과 목축을 강요당했다.
이로써 오랜 기간 어로와 수렵, 채집 등을 위주로 자신들만의 독특한 문화를 가꾸어왔던 아이누의 전통적인 문화는 급속히 파괴되었으며, 대대적인 학살과 약탈로 아이누의 인구는 크게 줄게 된다.
지금 아이누족은 사실상 멸족상태로 현재 멸종하고 있는 민족이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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