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사]동양의 라스베거스, 마카오
마카오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무엇을 떠올리는가?
카지노 정도가 아닐까 생각한다.
사실 마카오는 자그마한 동네이기 때문에, 말하자면 우리의 관심이 그다지 크지않았다. 마카오같은 경우에는 오랫동안 포르투갈로부터 지배를 받았고, 포르투갈인들이 마카오에 진출하게 된 시기는 1553년인데 현지 관리인에게 짐이 젖었으니 육지에서 말리고 싶다는 구실로 뇌물을 먹이고는 마카오 체류를 인정받았다고 한다.
4년 후부터는 매년 정기적으로 현지 관리인에게 뒷돈을 먹여가면서 마카오에 체류하기 시작했고 1572년부터는 명나라 조정도 매년 세금을 받는 조건으로 거주권을 인정해주었다고 한다.
그런데 마카오라는 이름에는 재미있는 사연이 있는데 처음 마카오에 도착한 포르투갈인들이 현지인에게 지명을 물었더니 현지인은 근처에 있던 도교 사원을 묻는 것이라고 착각하고 '아마꼭'이라고 대답해줬다는 것이고, 그게 마카오로 알려졌다고 한다.
포르투칼이 본격적으로 마카오를 통치하기 시작하게 된 계기는 아편전쟁으로 홍콩이 영국의 손에 넘어가는 것을 지켜보고 자극을 받아서였다.
영국은 청나라와의 무역에서 언제나 적자를 보고있었다. 청나라의 특산물들은 영국에서 방대한 수요층을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말하자면 차나 도자기같은 물건들이 영국에서는 엄청난 인기를 누린 반면에 영국은 밑지는 장사만 하고있었다.
거대한 중국 시장을 탐내던 영국 상인들은 식민지인 인도에서 생산된 막대한 면화로 만든 직물, 즉 옷감을 중국 시장에 대량으로 팔기를 원했지만 청나라 사람들의 반응은 '비단이 있는데 헝겊을 왜 삼?' 이였고, 명나라 시기의 폭발적인 인구증가세로 인건비가 극단적으로 낮아졌기 때문에 기계를 이용해서 만든 공산품조차도 청나라와의 가격경쟁에서 밀리는 판국이였다.
1780년에는 차를 수입하는 대금으로 청나라에 지불한 은이 무려 450톤이였다고 한다. 그래서 영국은 청나라에 아편을 팔아치워서 무역적자를 커버하기 시작했고, 아편 때문에 발발하게 된 것이 아편전쟁인데 결과야 모두가 알다시피 영국의 완승으로 끝났으며 난징조약이 체결됨에 따라서 홍콩은 영국에게 할양되었고 그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포르투칼이 자극을 받은 것이였다.
그래서 1887년에 청나라와 포르투갈 간에 체결된 조약에 따라서 마카오는 정식으로 포르투갈령이 되었지만, 영국이 홍콩을 식민지배하면서 무역항으로써는 쇠퇴했다고 한다.
19세기의 홍콩은 영국이 동북아시아에 심어놓은 핵심 무역허브였다. 홍콩은 영국의 물산이 집결하는 자유무역허브로 지정되었고 홍콩의 방방곡곡을 관통하는 철도들이 개통되었으며 영국식 교육시스템이 도입되었다. 그리고 홍콩은 아시아의 영국령 중에서 가장 빅토리아 문화가 개화된 지역으로 발돋움하였다.
전후에도 홍콩은 영국령이였기 때문에 중국대륙이 공산화된 상황에서 자본주의 오아시스로 여겨졌고 많은 기업인들이나 부호들이 홍콩으로 몰려들어왔다. 저렴한 인건비를 내세운 제조업을 밀었으나 70년 대로 접어들어서는 지리적인 이점과 정치적인 안정을 무기삼아 금융허브로 도약했고 지금도 홍콩은 뉴욕, 도쿄, 런던과 함께 세계의 금융 중심지이다.
그래서 홍콩은 90년대 후반에 동아시아 전역을 휩쓸었던 외환위기의 폭풍우를 이겨낼 수 있었다. 당시 홍콩에는 유능한 관료들도 있었고 무엇보다도 홍콩에는 달러가 많았기 때문에, 조지 소로스의 퀀텀펀드가 97년에 홍콩을 공격했지만 홍콩은 실탄을 아낌없이 쏟아부으면서 맞서싸운 끝에 기어이 국제투기자본들을 격퇴했다고 한다. 하여튼간에 홍콩과 마카오는 규모에서부터 비교가 불가능하고 무역허브나 금융허브로써의 기능은 홍콩이나 싱가포르가 휘어잡고있지만, 단 한 가지의 잭팟으로 명성을 얻었다.
마카오는 카지노 산업의 성공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되었다. 사실상 마카오는 카지노를 제외하면 시체같은 동네이기 때문에, 카지노 허가에 대한 규제도 완화됨에 따라서 라스베거스를 주축으로 하는 국제 카지노 자본들이 대거 마카오로 몰려들면서 성장을 거듭했고 2006년에는 라스베거스를 제치고 세계 최대의 카지노 도시로 자리매김했다고 한다.
현재 전세계에서 가장 큰 카지노 시설이 마카오에 위치한 The Venetian Macao인데 테이블만 800개에 슬롯머신은 3천대가 넘는다. 3500개가 넘는 객실로 아시아에서 가장 큰 호텔이기도 하다. 내부에 이탈리아 곤돌라도 탈 수 있게 물길도 있다.
전세계를 강타한 금융위기의 파고를 무사히 극복했고 지난해에도 12%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하며 라스베가스의 7배가 넘는 카지노 수입을 기록했다.
마카오의 카지노 수입액은 지난해 기준으로 3608억 파타카, 한화로 환산하자면 근 50조 원에 가까운 금액이기 때문에 60만 명에 불과한 마카오인들을 먹여살리기에는 부족함이 없으리라 생각하는 바이다. 그리고 마카오를 카지노 도시로 만든 사람이 스탠리 호라는 이름의 카지노 재벌인데 마카오에서 스탠리 호의 영향력은 절대적이여서 그에 대해서 비판했다가 조용히 없어지는 경우도 빈번했다고 하니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그의 사설도시인 셈이다.
카지노 산업 이외에는 관광산업에 여러가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 같다. 마카오에는 세계문화유산인 마카오 역사유적지가 있고 그 중 가장 유명한 것이 사진에서 볼 수 있는 성 바오로 성당과 마카오 국립 박물관이라고 한다. 성 바오로 성당같은 경우에는 화재로 무너진 탓에 앞벽만 남은 상태이고 마카오 국립 박물관의 경우에는 본디 성의 목적으로 건축되어있기 때문에 마당에서도 마카오의 전경을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다고 한다.
사실 마카오에는 문화유적들이 많아서 무려 30개의 세계문화유산을 가진 동네이고 옹기종기 골목마다 숨어있기 때문에 무슨 보물찾기하는 것도 아니고 서울의 구 만한 면적의 동네에 서른 개의 세계문화유산이 밀집되어있다니 웃기지 않니? 하여튼 아담한 동네인만큼 걸어다니면서 찾아보는 재미를 즐길 수 있다.
전세계에서 가장 높은 위치에서 뛰어내리는 번지점프도 마카오 타워에 있다고 하던데, 물론 본인같은 경우에는 비싼 달러를 탕진해가면서 그러한 모험을 할 의향이라고는 전혀 없지만, 혈기가 왕성한 자라면 도전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참고로 네 번째로 번지점프할 때부터는 요금이 없다고 한다. 하여튼 마카오는 동양과 서양의 문화가 혼합된 소행성과 같은 동네이기 때문에 관광객들에게 색다른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다.
마카오의 음식에도 항구도시인 마카오의 역사가 오롯이 담겨있다. 마카오 요리를 매케니즈라고 칭하는데 마카오에 거주하기 시작한 포르투갈인들이 마카오에서 나오는 음식재료를 가지고 포르투갈에서 건너온 향신료와 조립법으로 요리하면서 탄생했다. 여기에 여러 기항지의 양념이 추가되어서 독특한 퓨전요리가 완성되었는데 전 세계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개성 넘치는 맛을 낸다. 말 그대로 동서양의 절묘한 조화라고 홍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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