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중동의 전쟁무기에 사용된 과학기술(1편)
선사시대에는 돌덩어리랑 나무막대 들고 우가우가하던 원시인들이 어떻게 지금은 버튼 하나로 지구를 멸망시켜버릴 수 있는 무기를 갖게 되었을까?
도대체 돌도끼에서 핵무기로 어떻게 발달을 한 것일까?
이 글은 바로 돌도끼가 핵폭탄이 되기까지의 전쟁무기 발전의 역사에 대한 글이다.
1. 고대
기원전 1400년.
지금으로부터 약 3400년 전에 이집트는 히타이트들의 침공을 받는다.
그 전에도 수메르 등의 국가와 하루이틀 전쟁해본 것도 아니고 해서 이집트는 농부들 소집해서 대충 무기 나눠주고 전장으로 보낸다.
당시 이집트 군의 무장수준은 형편없었다.
그 당시만해도 상비군개념은 아예 없었고 '병사'라고 해봐야 실제로는 평상시에 농사짓다가 전쟁 벌어지면 강제로 징병되는 순진무구한 사람들 뿐이었다.
그래서 기원전 1400년의 그 날도 이집트는 평소와 다름없이 농부들을 소집해 방비했다.
그러나 이 날,
이집트 병사들은 난생처음 목격하는 무기에 비참하리만큼 철저히 짓밟혀버린다. 그리고 이 결정적 무기는 구석기 시대부터 그때까지 줄곧 원시적 수준이었던 전쟁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꿔버린다.
그 무기는 히타이트가 몰고 온 '전차'였다.
2. 전차의 등장
전차는 기원전 1800년경에 최초 제작되었다고 한다.
물론 그 전에도 수메르인이라는 사람들이 우마차를 만들었지만, 전쟁무기로는 적합치 않았다.
기본적인 우마차는 가공하지 않은 목재로 만든 바퀴 두개를 널판지로 연결하여, 그 위에 역시 가공하지 않은 목재로 짐칸을 올려놓고 황소가 끌게하는 간단한 구조였다.
당연히 무겁고 느린데다가, 획일적인 방향으로만 이동이 가능했기 때문에 그냥 운송수단으로만 쓰였고, 이 우마차를 전쟁용으로 쓰려는 시도도 있었지만 잘 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히타이트는 이 원시적 우마차를 '전쟁용'으로 바꾸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획기적인 발상의 전환이 있었다.
허브식의 두 개의 차륜이 고정된 차축을 돌도록 만들었는데, 위 사진의 전차에서 볼 수 있듯 수메르처럼 대충 통나무를 잘라서 둥그렇게 만든게 아니라 차륜 중심부로 바퀴살이 모여드는 형태로 만들어 고정된 차축을 돌게 한 것이다.
특히 차륜(바퀴)을 주목할 만한게, 일단 바퀴살이 달린 바퀴를 쓴 덕분에 차의 무게도 훨씬 경량화되었으며, 전차가 무거운 짐을 싣고 신속하게 이동할때 바퀴의 변형을 방지하기 위하여 동력학적 밸런스를 살려 '정확한 원'의 형태로 만들었다.
그리고 전차의 기동성을 증대시키기 위하여 기존의 소가 끄는 방식에서 말로 바꿨는데, 이때 말이 차량의 무게를 일부 감당할 수 있도록 특별한 마구도 고안을 한다.
3. 히타이트의 전차
거기에 히타이트애는 최초로 '합성궁'을 제작한다.
위의 조각사진 속의 히타이트들이 들고 있는 활이 합성국인데, 앞 전의 사진에서의 이집트가 쓰던 거랑 비교하면 확연한 차이를 느낄 수 있다.
종전의 활은 탄력 좋은 어린 나무로 만들었기 때문에 나긋나긋하여 정확도도 떨어지고 온도변화가 심하면 뒤틀려버리기 일쑤였다. 때문에 그 당시에 활은 활용도가 거의 없었다.
그런데 히타이트는 이 활을 아예 새로 창조해낸다.
바로 '합성소재'이다. 나무에 동물근육, 뿔을 아교로 붙여서 활대를 만들었고 사정거리도 최대 180미터정도로 향상시킨다.
이 합성궁은 당시의 일반적인 활보다 길이도 짧았기 때문에 전차에서 활용도가 높았다
여기에 더해서 아무래도 변수가 많은 전장에서 전차를 능숙히 운전하려면, 숙달된 운전병과 흔들리는 전차 위에서도 명중률이 높은 궁수를 보유해야 하기 때문에 히타이트는 거의 최초로 정규군, 즉 '상비군'을 보유하게 되었다.
전차에 합성궁에 숙달된 병사까지 갖추게 된 히타이트는 자신들에 비해 한참 뒤떨어지는 원시적인 군제와 무기를 갖춘 주변 국가 및 부족들을 상대로 진격을 시작했고, 순식간에 중동 지역을 정복해버린다.
4. 군비경쟁의 시작
비록 히타이트에게 대패했지만 아직 수도 및 일부 영토가 온전했던 이집트는 곧 총력을 기울여서 전차를 생산하기 시작한다.
당시 지중해의 중심이었던 이집트는 곧 히타이트보다 더 많은 전차를 보유하게 되었고, 기원전 1275년 이집트의 파라오 람세스 2세는 레바논 북부지역인 '카데시'라는 곳에서 히타이트와 대접전을 벌이게 된다.
기록에 의하면 람세스 2세는 약 5,000대, 히타이트는 약 3,500대의 전차를 동원했다고 한다.
이 카데시 대전에 동원된 총 8,500대의 전차는 약 200년 전 처음으로 등장했던 전차와 거의 똑같은 기술로 제작된 거였단 것이다.
즉 전차라는 결정적 무기가 등장한 뒤로 너도나도 전차를 손에 넣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약 180년이 넘도록 그 누구도 전차를 뛰어넘는 신무기를 만들려는 노력은 하지 않고 그냥 전차로만 주구장창 싸워댔던 것이다.
당시 이집트나 중동에 그럴만한 기술이 없던 건 아니었다.
이집트는 이미 그보다 몇천년 전에 땅의 면적을 측량하는 '기하학'을 만들어서 피라미드도 만들었고, 나일강이 범람해서 땅의 경계표시가 사라지더라도 기하학으로 면적을 정확히 계산해서 토지점유권 분쟁도 해결했다.
중동은 이미 바빌로니안들이 천문학을 발전시켜서 당시 중동애들은 별자리를 보고 야간 행군도 했다.
그런데 왜 전차를 뛰어넘는 신무기를 개발하려고 하지 않았을까?
더이상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히타이트나 이집트나 이미 당시 행정력으로는 감당하기 벅찬 영토를 소유하고 있었고 전차개발은 당시로서는 초고도의 과학기술과 어마어마한 재정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했기 때문에 이집트랑 히타이트 말고는 주변에 전차를 만들 수 있는 국가는 없었다.
하지만, 그 오만은 바다를 건너온 도래인들로 인하여 산산조각 난다.
5. 철제무기의 등장
우리 조상님들이 가장 처음으로 사용했던 광석은 돌맹이었다.
전쟁시, 돌멩이나 돌조각, 그리고 뾰죽한 나무막대기 같은 걸 들었다.
시간이 흘러 구리라는 광석도 알게 되었지만 구리는 너무 가볍고 강도가 약해서 무기로는 비효율 적이었고, 동전이나 장신구 주조에 주로 쓰였다.
당시의 사람들은 구리의 강도를 높일 수만 있다면 돌멩이나 나무막대기보다 훨씬 강력한 무기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방안을 강구했다.
그러다 그들 중 누군가가 드디어 해결책을 찾는다.
구리를 주석과 같은 다른 금속과 혼합하여 합금으로 제작하면 '청동'이 된다는 것이었다.
청동은 거푸집을 이용해 도끼나 칼, 창촉으로 제작하기 쉬웠고, 녹도 슬지않고, 강도도 매우 튼튼했다.
그래서 그 당시 무기들은 대부분 청동으로 만들었으며, 기원전 1,400년경 전차가 최초로 등장했을 때도 청동제 무기가 최고를 자랑했다.
그러나 이집트랑 히타이트가 중동의 패권을 차지하고 오만에 빠져 있을때, 소아시아인들은 지표면에서 별로 깊지 않은 곳에 매장되어 있는 적갈색을 띈 광물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 광물을 채굴하여 목탄 화로에서 제련한 다음 물 속에 넣어 냉각시키고, 다시 열을 가해봤더니 전혀 새로운 금속이 만들어졌다.
철이었다.
소아시아인들은 당시 이집트나 히타이트에 비하면 가난한 약소국에 불과했기 때문에, 전차 군비경쟁에 뛰어드는 건 엄두도 내지 못하였다.
그래서 고민 끝에 전차의 등장으로 보조역할로 밀려났던 '보병'에게 철로 된 무기, 철제 갑옷을 지급한다.
소아시아인들은 철의 제련 관련 연구에 매진했고, 급기야 철을 청동보다 적은 비용으로 생산이 가능한 단계까지 다다른다.
그리고, 만반의 준비를 갖춘 소아시아인들은 기원전 1,200년경 철제 갑옷과 철제 무기로 무장하여 바다를 건너 동쪽과 남쪽으로 침략을 개시한다.
바로 이집트 벽화에 기록된 '바다 사람들'의 등장이었다.
청동보다 철이 더 강도가 높다는 건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며, 청동이나 돌조각을 들고 싸우는 쪽이랑 철제 양날 장검을 들고 싸우는 쪽이랑 누가 이길지는 말 안해도 알 것이다.
더욱이 육지뿐 아니라 바다에서도 소아시아인들은 매서웠다.
페니키아인들은 흘수선에 커다란 충각을 달아서 해전에서 충파로 적선을 부수어 버렸는데, 충파의 충격을 완화시켜 배의 손상을 막는 버팀목까지 설계를 했다.
거기다가, 노를 2단으로 엇갈려 배치해서 속도를 두 배로 끌어올려 기동성까지 적선과 비교가 되지 않았다.
이런 군사적인 혁신은 수학, 유체정역학, 야금학 분야에서 엄청난 연구와 개발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거였다.
이로써 돌도끼를 손에 쥔 사람은 아무도 없게 된다.
그리고 이 최첨단 무기이자 가장 결정적 무기인 철제무기를 손에 쥐고 역사상 최초의 '군사독재국가'를 만든 국가가 등장했다.
바로 성경에 까지 그 포악함이 기록되어 전해내려오는 '앗시리아 제국'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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